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궁지에 물린 공자 - 도척
공자는 급히 나갔다가 자리를 피하고 도로 물러나 도척에게 두 번 절했다. 도척은 크게 화가 나 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앉아 칼을 어루만지고 눈을 부릅뜨며, 젖 먹이는 호랑이 같은 소리로 말했다.
"구는 앞으로 나와라. 네가 말하는 것이 내 뜻에 맞으면 살고, 내 마음에 거슬리면 죽을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저는 천하에는 세 가지 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장대하고 아름답기 짝이 없어 소장 귀천이 보고 다 기뻐하는 것이 상덕입니다. 지혜는 하늘과 땅을 이으며 능력은 만물을 분별하는 것이 중덕이고, 용감하고 과감하여 뭇 사람을 모아 군사를 거느리는 것이 하덕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이면 족히 남면 칭고*할 수 있습니다. 장군은 지금 이 셋을 겸하고 있습니다. 신장은 여덟 자 두 치에 얼굴과 눈에는 광택이 있고, 입술은 붉은 색을 칠한 듯합니다. 이는 조개를 가지런히 한 것 같고, 목소리는 황종*에 어울립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도척이라 불리니 저는 장군을 위하여 속으로 부끄러워하는 바입니다. 장군이 신의 말을 들으실 뜻이 있다면, 청컨대 남으로는 오와 월에, 북으로는 제와 노에, 동으로는 송과 위에, 그리고 서로는 진과 초에 심부름을 가겠습니다. 장군을 위하여 수백 리의 큰 성을 만들고 수십만 호의 고을을 세워, 장군을 높여 제후를 삼도록 하겠습니다. 천하와 더불어 다시 시작하여 군사를 파하고 병졸을 쉬게 하며, 형제를 거두어 기르고 함께 선조를 제사하는 것이 성인과 재사의 행실로서 천하가 바라는 바입니다."
도척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구는 앞으로 오너라. 무릇 이로써 달래고 말로써 간할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은 백성일 뿐이다. 내가 장대 미호하여 사람들이 보고 기뻐하는 것은 우리 부모가 끼친 덕이니, 네가 비록 칭찬하지 않는다고 내 스스로 알지 못하겠느냐? 또 나는 면전에서 남을 칭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돌아서서 헐뜯기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지금 네가 내게 큰 성과 많은 백성을 들어 말한 것은 나를 달래려고 함이며,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느냐? 성이 아무리 커도 천하보다 더 크지는 않다. 요순이 천하를 가졌으나 자손은 송곳을 세울 땅도 없었고, 탕무는 천자가 되었으나 후손이 끊겨 없어졌다. 이로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 남면 칭고 : 남면은 임금의 지위, 고는 왕후의 겸칭으로, '군주가 된다'는 뜻이다. * 황종 : 중국 12음률 중 기본이 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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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재빠른 걸음걸이로 도척 앞으로 나아갔다가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 정중히 인사를 했다. 도척은 노여움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두 발을 힘차게 딛고, 칼자루에 손을 걸쳤다. 그리고 새끼를 감싸는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가 공구냐? 앞으로 나서라. 말하는 바가 내 마음에 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목숨이 남아 있지 못하리라."
공자는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릇 사람에게는 세 가지 덕이 있다고 합니다. 당당한 체구와 아름다운 얼굴을 지녀서 젊은이나 늙은이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보고 좋아하는 것이 상덕이고, 천지를 덮는 영지와 온갖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 중덕, 용맹 과감하여 많은 무리를 동원하고,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것이 하덕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은 임금이 될 자격이 있다. 했는데,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을 모두 지니고 계십니다. 당당한 체구와 빛나는 얼굴, 붉은 칠을 한 듯한 입술에 조개를 세운 듯한 치아, 황종 가락에 맞는 목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도척으로 불리고 있으니, 이것은 장군을 위하여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장군께서 만일 제 의견에 따르시겠다면, 저는 남쪽으로는 오와 월, 북쪽으로는 제와 노, 동쪽으로는 송과 위, 서쪽으로는 진과 초에 사자로 가서 이들을 움직여, 장군을 위해 사반 수백 리에 이르는 성을 쌓고, 수십만 호에 이르는 나라를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장군은 제후로서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그치고 형제들과 함께 살면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것이야말로 성인이 할 일이며, 또 만백성의 염원인 것입니다."
도척은 격노했다.
"에잇, 듣기 싫다! 어리석은 백성이라면 혹 모르지만 내가 이익에 동요되고 달콤한 소리에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느냐? 내가 당당한 미장부로서 모든 사람의 흠모를 받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으로,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벌써부터 알고 있다. 남이 보는 앞에서 아첨하는 자 치고 숨어서 험담하지 않는 자가 없다. 성을 주고 큰 나라를 주겠다는 소리는 더욱 귀에 거슬린다. 이익으로써 내 마음을 움직여보려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바로 나를 어리석은 백성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 요순은 천하를 지배했지만 자손은 송곳 하나 세울 땅이 없었다. 탕왕과 무왕은 천자가 되었지만 그들은 자손이 끊겨 멸족하고 말았다. 큰 이익일수록 잃기 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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