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3장 서양사상
지식의 고고학 -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
아날 학파의 역사학과 바슐라르 캉길렘의 인식론을 조화시킨 푸코 철학의 핵심적인 저서. 이전의 작품인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등에서 전개된 고고학적 탐구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서술한 (지식의 고고학)은 결국 푸코 자신에 의한 푸코 철학의 해설서이자, 현대의 반인간중심주의적 철학의 바이블이라 할 수있다. 이 책에서 정의되고 있는 언표, 언설, 언설적 실천과 언설적 형성, 실증성, 역사적 아프리오리 등의 개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은 고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생애와 작품활동
1984년 6월 25일. 20세기의 흑사병인 AIDS로 사망한 미셸 푸코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온몸으로 추구한 실천적 지성이었다. 80년대말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미셸 푸코.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푸코는 엄격한 카톨릭 집안의 해부학 교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의 푸코는 재능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특히 철학, 역사학, 문학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전도 유망한 청년으로 성장해갔으며, 대부분 프랑스 석학들과 마찬가지로 앙리 4세의 고등학교를 거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이플리트, 캉길렘, 뒤메질에게 배웠다. 여기서 철학과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에 나온 (광기의 역사)에는 이들의 영향이 보는데, 여기서 그는 인간의 이성이 이룩한 문명의 역사가 이성과 권력 의 결탁의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서구의 역사에서 새로운 문제의 부각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에서 연유한다. 당시 서구사회를 휩쓴 학생운동은 마르크시즘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을 요구하였다. 즉, 마르크시즘이 그 당시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1968년의 학생운동은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만족은 푸코로 하여금 평생 동안 일체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게 했고, 이를 통해 참된 주체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게 만들었다. 이 당시 뱅센 대학의 교수였던 푸코는 학생들의 운동을 이해하고 학생들과 함께 대학본부를 점거하여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현실문제에 대해 정기적으로 논평하기도 하고, 시위에 직접 참여하는 등 항상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항변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신성시되는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프랑스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실천하는 지식인 으로서의 푸코는 1971년 감옥에 관한 정보 수집그룹의 결성으로 더욱 빛났다. 이 그룹은 수감자와 그 가족들로부터 증언을 채위해서 팜플렛을 발간, 당시 프랑스의 감옥의 비참한 상태를 고발하고 개선을 도모하고자 했다. 이 당시 푸코의 활동결과는 그의 유명한 저서 (감시와 처벌)의 집필에 기초가 되었다. 이 작품은 정신병원, 감옥 등은 인간의 이성이 만든 사회적 장치라고 주장하고, 이들 장치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관찰함으로써 권력의 발달과 행사를 엿볼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푸코는 감옥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실천을 토대로 근대 감옥에서 가장 교묘하고 극명하게 행사되고 있는 권력을 해부하고 있다. 1970년 푸코는 가장 프랑스적인 연구교육적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어, 베르그송, 메를로-퐁티, 이플리트의 뒤를 이어 죽을 때까지 사상사 교수를 지냈다. 사망 직전까지 푸코는 6권으로 된 (성의 역사)의 집필에 몰두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인이 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가를 추적한 저작으로, 비록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처음 계획과는 달리 (앎에의 의지) (쾌락의 이용) (자기에의 배려)라는 부제의 1,2,3권만 출간되고 (육체의 고백)이라는 부제의 제4권이 노트의 형태로 남아 있지만, (성의 역사)는 푸코를 평생 지배해온 주체 의 문제를 가장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세기말의 오늘이 제기하는 권력의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시사를 던지고 있다.
푸코 철학의 지적 배경
난해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현대철학, 그중에서도 푸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가지의 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특징은 구체적인 철학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프랑스 철학의 전통과 같은 성격의 철학이 있었다면 아마 그것은 그리스 철학의 전통일 것이다. 한마디로 프랑스 철학은 과학적 기초와 사회적 실천 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그 장점이 있다 하겠다.
과학사 연구 - 우선 푸코 철학의 지주인 과학적 기초를 이해해야 한다. 그에 있어 이 기초는 바로 과학사이며, 프랑스에서는 언제나 인식론이라는 과목이 과학사의 철학적 이해로 정위되어왔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푸코 출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콩트, 쿠르노, 푸앵카레, 바슐라르, 캉길렘 그리고 오늘날의 미셸 셰르에 이르기까지의 과학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부분을 빼고 프랑스 철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마치 존재론을 빼고 그리스 철학을 이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 또 하나는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구조주의라 불리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인간과학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아날 학파의 역사학, 야콥슨 등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민속학, 라캉의 정신분석학, 마루샬 게루의 철학사 서술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부분은 특히 제반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 철학자의 사상은 그가 속해 있던 당시의 사상 아래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구조주의에 대한 이해는 푸코 철학의 이해를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풍부한 교양 - 세번째 중요한 요소는 현대의 전반적인 문학, 예술에 대한 소양이다.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푸코 철학의 이해를 위해서도 문학과 예술에 대한 교양은 과학에 대한 교양 만큼이나 중요하다.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문학적, 예술적 소양은 과학적 탐구의 장식물이 아니라, 그들이 그로부터 철학적 문제의식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로서 중요한 문학 및 예술에 대한 저작을 한 두권 남기지 않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역시 (구토)라는 걸출한 문학작품을 남기지 않았는가?
지식의 고고학의 주요내용
이책은 푸코 철학의 이해를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으로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에서 전개되었던 그의 고고학적 탐구들에 대한 방법론적 기초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위의 책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만큼 깊이가 있는 저작이다. 수묵화와 같은 언어를 통해 구체적인 예들이 거의 배제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추상적이고 정교한 인식론적 논의로 일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제1장 - 제1장에서는 푸코 철학이 속해 있는 인식론적장이 다루어지고 있다. 그에게 역사서술의 측면에서 하나의 모델을 제공해준 아날 학파, 현대과학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슐라르, 그의 제자로서 과학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메타 과학사적인 안목을 개척해냄으로써 푸코에게 가장 본질적인 영향을 기친 캉길렘, 뱌슐라르 -캉길렘의 전통 속에서 막시즘에 과학적 기초를 제공해준 아튀세르, 바슐라르-캉길렘 -푸코의 위대한 계열을 잇고 있는 미셸 셰르가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17세기 철학을 칸트와 헤겔의 예고편으로서가 아닌 각 철학자들의 건축학적 통일성으로서 기술함으로써 구조주의적 사유방식에 있어 결정적 일보를 내디딘 마르샬 게루, (저자의 죽음)을 논함으로써 현대의 반주관주의 철학의 형성에 영향을 준 문학을 논함으로써 현대의 반주관주의 철학의 형성에 영향을 준 문학 비평, 현대사상의 선구로 손곱히는 마르크스와 니체, 마지막으로 구조주의가 언급되고 있다.
제2장 - 제2장에서는 고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 있다. 여기에서 푸코는 고고학을 언설적 형성과 그의 변환에 대한 분석으로 정의하고 그 구체적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론적 구도하에서 비로소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과 같은 책들의 인식론적 구조와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언설적 형성을 대상의 형성, 언표행위적 양태의 형성, 개념의 형성, 전략의 형성으로 나누고, 각 형성들의 내용을 전개시키고 있는 이 부분을 우리는 고고학적 범주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제3장 - 제3장에서는 고고학의 기본개념들이 정의되고 있다. 이부분은 푸코 철학의 용어확립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언표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고학은 결국 과학사적 텍스트들을 다루는 학문이고, 따.라서 이텍스트들 속에 들어있는 언어들을 어떤 관점에서 다룰 것인가 하는 점은 고고학의 기본성격을 규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4장 - 제4장은 고고학적 사유의 성격을 고고학이 거부하고 있는 사유형태들과 비교함으로써 뚜렷이 하고 있다. 결국 고고학적 사유란 반현상학적, 반해석학적, 반변증법적 사유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20세기 중엽에 위의 사유들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구조주의는 이들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헤쳤던 것이다. 고고학은 이와 같은 구조주의의 연장선상 위에서 전혀 새로운 역사철학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의는 5장으로 이어져 마지막으로 주체의 개념을 옹호하는 사람들과의 논쟁 및 구조주의와 고고학의 차이점이 다루어지고 있다.
철학사적 의의
미셸 푸코는 인문과학에 있어서 하나의 인식론적 전환을 이룩한 철학자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인문과학의 중요한 문제들, 가령 인간의 지식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것은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등의 문제들을 근본적인 각도에서 제시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또한 깊이있는 업적을 남긴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문과학의 이러한 근본적인 인식의 문제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또한 억압적인 권력의 매켜니즘을 파헤치는 데 있어서 예리한 통찰력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그가 광기와 광인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첫번째 정신작업은 1954년 발표된 9정신병과 인성)인데 이 책에서 그는 정신병의 원인이 무엇보다도 사회적, 정치적 관계 속에서 밝혀져야 함을 역설한다. 그 작업의 계속으로 1961년에 펴낸 (광기의 역사)는 그를 유명한 철학자의 한사람으로 만든 책으로서, 정신의학의 허구, 더 나아가서는 서양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사고나 이성의 독단적 논리성을 파헤치고 이성과의 관계에서 희생된 비이성적 요소, 즉 광기 의 참된 의미와 그것의 역사적 변화를 밝힌 것이다. 그는 1963년에 정신병과 사회제도와의 관계를 분석한 (임상의학의 탄생)을 쓰고, 1966년에는 유명한 (말과 사물)을 발표한다. 그는 이책에서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구문화의 전개과정에서 두번의 단절이 있었음을 주장한다. 첫번째의 단절은 고전주의시대가 시작되는 17세기 중엽이며, 두번째의 단절은 근대가 열리는 19세기 초라는 것이다. 첫번째의 경우는 이렇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인식구조가 유사성의 체계로 이루어져서 그 시대의 지식은 사물들 사이의 무한한 일치나 닮음의 형태를 판독하는 것이었던 반면에, 고전주의 시대는 분석정신이 지배했던 시대로서 사물들의 닮음의 형태보다는 서로 구별되는 속성 혹은 이질성을 파악하는 것이 지식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주의적 인식체계는 사라지고, 사물의 세계속으로 역사성이 들어선다. 인간이 뒤늦게나마 역사의 주체임을 자각하는 시대인 19세기는 역사를 창조한 시대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에 만들어진 생물학, 언어학, 정치경제학에서는 역사적 인식이 부각되고, 이러한 지식의 영역 속으로 인간이 개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과학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개념이 19세기의 인식구조 속에 등장하여 인문과학의 대상으로 된다.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지식의 전개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하면서도, 그의 시각은 역사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일반적인 문화역사학자의 시각과는 엄격히 구별된다. 푸코에게는 하나의 의미로 연속된 사건들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헤겔의 역사철학, 즉 절대를 지향해가는 의식의 진행이라는 역사적 성찰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취한다.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여러가지 요소들이 뒤엉켜 있는 모순의 형태가 역사이며, 그러한 모순의 존재를 심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모순의 인식론이라고도 부를 수있는 그의 관점은 당연히 역사의 연속성이나 전체성을 보는 헤겔의 시각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정치적 용기의 표상이던 그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독특한 웃음과 율 부리너 같은 민둥머리의 모습은 실천적인 지식인이 상징으로 그가 남긴 말과 함께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진정한 자신의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모습을 발견하려고 하는 몸부림치는 현대인이여, 그러나 아직도 구원은 멀다. 일상성에 매몰된 그대의 눈은 결코 그대의 일상과 심지어 생명활동까지도 지배하는 잔인한 권력의 망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주체적이라고 믿는 모든 실천은 심지어 그대가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선봉에서 혁명을 지휘할 때조차도 그것은 권력의 효과다.
푸코의 유고, 언제 빛볼까?
출간하지 말라는 푸코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고가 파리의 한 도서관에 비공개조건으로 소장되어 있어, 그의 연구자들이 공개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1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그의 유고는 (성의 역사) 제4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아와 사랑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의 역사) 3권을 발간한 갈리마르 출판사는 94년 6월 푸코 10주기에 맞춰 후속 시리즈를 출판하려 했으나,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 직면하여 이번에도 무산되었다. 푸코의 에이즈 상대이면서 사상적 동반자이기도 한 드페르는 (성의 역사) 제4권에 수록될 예정이던 미완성 논문 (육체의 고백)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고, 상속자인 누이동생도 출판사의 요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인들의 성에 대한 태도와 그 억압 시스템을 파헤친 (성의 역사) 시리즈는 국내에서도 3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가들이 흔히 사후출판을 금지하는 유언을 남기는 것은 자신의 본래 의도가 왜곡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지만, 한 편의 논문이라도 더검토해보려는 후세의 연구자들이 언제까지나 남겨진 원고를 그대로 놔둘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로마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도 자신의 미완의 작품을 불태워버리라는 마지막 소원을 남겼으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를 저지하여 불멸의 고전인 (아에네이스)가 빛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자들께서는 (동서고전 200선)에서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