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3장 서양사상
실증철학 강의(Cours de philsophie positive) - 콩트(Auguste Comte, 1798-1857)
프랑스 실증주의 창시자인 콩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19세기 전유럽의 사상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학의 실증성을 강조한 콩트는 특히 사회학을 인간들간의 사회적 관계를 연구하고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역사과정 속에서 변해가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규정함으로써 사회학이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실증철학강의에서 그는 각 역사적 단계에서의 인간정신, 즉 과학이 그이전의 단계에 의존하여 진보하고 있음을 증명해보이고자 하였다. 전의 개념이 굳은 신념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점차 종래의 신학적 믿음과 형이상학적 사변은 과학적 설명과 지식으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실증주의, 실증주의란 콩트가 창시한 것으로, 가치있는 유일한 지식이란 실증적인 지식, 즉 과학에서 오는 지식 이어야 한다는 그의 해석에서 유래한는데, 공리주의와 같이 진리가 경험, 또는 자연계의 관찰에서 온다고 하는 경험주의 철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이러한 실증주의의 근본원리는 실재하는 것 즉, 실질적인 것을 문제삼고, 거기서 벗어난 영역을 일절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싫증적인 것은 오직 현상뿐이므로 실증주의는 현상계만을 그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1. 현상계를 통해서 2. 주어진 일체의 사실을 일정한 법칙에 따라 정리하며 3. 여기서 도출된 법칙을 토대로 앞으로 현상계에서 나타날 사실을 예견 하며, 그에 대해 대처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예견하기 위해 알라 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실증주의는 경험적 사실만이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한 과학만이 정당한 지식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실증주의는 경험적 사실과 과학적 방법을 초월하는 실체나 힘의 존재를 부인한다. 즉 , 과학적 방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떠한 탐구나 형이상학도 부정한다. 콩트에 의하면 철학은 과학과 다른 방법을 갖지 않으며, 철학의 임무는 모든 과학에 공통된 일반원리 들을 찾어내어 인간의 삶을 밝히고, 더 나아가 사회구성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과 더불어 실증주의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켰다. 실증주의는 과학을 넘어 윤리학, 정치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파급되어 인간지식의 모든 분야를 실증적 기반 위에서 과학적 방법에 의해 재정립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중에서도 특히 카톨릭의 신학적 종교 대신 실증적 종교를 수립코자 한 시도는 후기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자칭 인간성 종교인 인도교를 발전시켜. 이 종교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정의, 박애, 자선에 공동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실증철학 강의 의 주요내용
콩트는 1820년대 중반의 실증철학의 체계의 구상이 성숙되자. 그것을 강의형식으로 발표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다음 유명인사들을 모아놓고 모두 72회의 강연을 한 후 일반대중에게도 공개강연을 한다. 12년에 걸쳐 총 6권으로 완결된 실증철학강의 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개설 2강, 수학 16강, 천체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각 10강, 사회학 14강으로 전체가 72강이며, 그 목적은 실증철학과 사회학의 확립에 두었다. 제 1권은 전체의 서론과 수리철학, 제 2권은 천체철학과 물리철학, 제 3권은 화학철학과 생물철학, 제 4권은 사회철학과 이론적 부분, 제 5권은 사회철학의 역사적 부분, 제 6권은 사회철학의 (보족)과 전체의 결론을 다루고 있다. 인간정신발달의 3단계, 실증철학강의에서 콩트는 인간정신발달의 3단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유명한 단계의 법칙 이다.
첫번째 단계는 신학적 단계 다. 이 단계에서 세계와 세계 속의 인간의 운명은 신의 의지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인데, 이 신학적 단계는 다시 3단계를 거친다. 즉, 모든 사물이 영혼을 지닌다는 만물숭배의 (물활론)단계, 다신교의 단계, 일신교의 단계를 거친다. 두번째는 형이상학적 단계다. 여기에서는 본질, 궁극원인, 추상적인 개념들로 인간 및 세계의 운명이 설명된다. 즉 형이상학적 단계에서는 어떤 현상을 신의 의지가 아니라, 생명의 원리와 같은 추상적 개념에 의해 설명하고자 한다. 세번째는 실증적 단계다. 과학적 정신의 이 단계에서는 인간의 경험적인 관찰을 통해서, 혹은 이성적 능력을 활용해서 오직 주어진 사실을 통해서 나타나는 유사성과 계속성의 법칙만을 파악하고자 한다. 경험에 나타나는 반복되는 사실들을 관찰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변의 법칙 을 발견하고자 하며, 이 싫증적 단계에서 비로소 학문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사회학의 제창, 그는 이 최종적 단계에 도달하면 모든 현상들이 단일한 법칙으로 표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연현상의 이해에 대해서는 실증적 단계에 도달했지만, 사회현상의 이해에 대해서는 이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로 인해 사회현상에는 3가지 단계가 혼재하게 되었고, 이러한 지적 무정부 상태로 이해 혁명후의 프랑스가 정신적, 정치적 혼란을 면한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현상을 지배하는 법칙 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당한 제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칙의 발견은 신이나 추상적 사변이 아닌, 관찰을 바탕으로 한 실증철학 ;에 의해 가능한데, 이에 대해 사회학 을 제안했다.
학문의 분류, 콩트는 3단계로 인정한 실증적인 인간의 지식을 다시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의 5대 현상군에 대응시켜 5개의 기초적인 추상과학을 얻고, 거기에 기초과학으로서의 수학을 넣어 6개의 실증과학 체계를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과학의 계통을 학문의 성격상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더우 복잡한 순서, 즉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의 순서가 된다고 보았다. 이들 중 다른 것들은 실증적 단계에 이르렀지만 사회학만 뒤떨어져 있다면서 실증과학으로서의 사회학 을 수립코자 하였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싫증적 종교로서의 인도교를 제창하였다. 한편, 그는 과학의 계통에서 나중의 과학은 앞의 과학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았고, 첫번째 것이 당연히 전체 실증철학의 출발점이 되며, 마지막 것이 목표가 된다. 개별과학들도 제각기 발전의 3단계를 거치는데, 이들이 다루는 현상들의 관계가수학적 법칙의 형태를 갖추어감에 따라 실증적 차원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사회학은 앞의 모든 과학을 포함하는 가장 복잡한 성격의 학문이므로 가장 나중에 실증적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정학과 사회동학, 콩트는 사회학을 사회정학과 사회동학으로 세분하였다. 사회정학은 우선적으로 사회 내의 질서라는 측면과 관련된다. 이 질서의 개념으로는 사회현상을 파악하는데 불충분하므로 진보의 개념이 요구되며 이것은 사회동학의 탐구영역이다. 즉, 질서에 대한 사회정학 과 진보에 대응하는 사회동학 으로 구별한다. 진보 없는 질서는 결국 부패를 초래할 것이며, 질서를 산출하지 못한는 변혁은 무정부 상태만을 낳을 것이다. 전자는 사회의 형태, 조직을 논하고 있는데, 그 통일적 권위는 과학(정신적 세련)과 산업(현실적 세력)에 있다. 후자는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논하며 그 근저를 인지의 발전단계에 둔다, 즉 신학전 단계인 13세기까지는 무단적 상태(신부와 무사의 지배)다, 형이상학적 단계인 14-18세기까지는 법치적 상태(철학자와 법률가의 지배)다. 실증적 단계인 대혁명 이후에는 산업적 상태(과학자와 산업가의 지배)가 각각 놓여진다.
역사적 실례, 콩트는 카톨릭 중세사회를 안정된 질서의 사회로 보았다. 중세인들은 카톨릭 신학이 제시한 사회의 근복적 구성원리, 즉 지사의 사회제도는 절대적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수긍하였고, 이로써 중세봉건제도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세의 구질서는 그 이념적 바탕이 되었던 카톨릭의 신학적 지식이 과학의 진보로 인해, 더이상 사회내의 이념통합의 기본역활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프랑스 혁명에 의해 와해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계몽주의 새대로 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기간을 형이상학적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연권과 주권재민, 법에의한 보편적 통치를 이념으로 하는 이 시기를 콩트는 실증적단계로의 진보적 이행과정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도달점인 프랑스 혁명이 그 자체로서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이었으며, 또한 근본적 가정들에 있어 형이상학적이었기 때문에 사회를 재구성하는 어떠한 실질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의 실증철학의 과제는 사회를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긍정하는 과학에 의해 이 과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이 임무를 수행할 집단으로서 과학과 산업의 엘리트를 제시하였다. 자연과 사회의 불변적 법칙에 관한 실증적 지식을 소유한 이들에 의해 사회는 계획되고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판적 평가
위에서 본것처럼 콩트의 실증철학의 목표는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도덕적 무정부 상태에 새로운 질서와 통일을 부여하고 모든 사회활동을 지배하는 역사발전 법칙을 규명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이는 모든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이 과학적 실증방법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실증학의 최곡의 것이 사회학 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사회는 단순한 개인의 집합이상의 (인류태)이며 그 연구가 사회학의 목적이라고, 주장하여, 모든 과학을 여기에 사회학의 기초라 삼았다. 그런데 그는 새로운 사회질서가 도덕과 종교의 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카톨릭의 초월적 신이 이미 허구적인 것으로 보여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다른 숭배의 대상을 필요로 하였으며, 결국 그는 이것을 인류에게서 찾은 것이다. 사회의 기초적 실재는 개인이라기보다는 인류 라 생각하고, 개인의 이기주의는 인류에의 헌신 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시각에서 그는 대존재로서의 인류에서 중세의 종교적 숭배를 대신할 신앙의 촛점을 찻았던 것이다. 즉, 중세의 카톨릭 신앙에 의해 유지되던 개인의 정신적 고양과 사회적, 통합적 기능이, 현대에 있어서는 인류에의 종교적 헌신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볼 때 콩트의 사상은 2가지 측며에서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는 사회현상의 특수성을 발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학이 다른 학문들보다 우수한 종합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학문의 체계에서 사회학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매력적인 견해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곤 한다. 하나는 인간정신발달 3단계 법칙을 너무 좁게 서열화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겸험과학적 시각을 가지고 인간겸험의 총체적 지식체계를 완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정학과 사회동학의 이름으로 추구했던 인류진화의 보편적 법치을 발견한다는 시도는 새로운 과학인 사회학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