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3장 서양사상
신논리학(Novum Organum) - 프렌시스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
고대 이래의 철학과 지식의 폐단을 통감한 베이컨이 이를 비판하고 자신의 새로운 방법론을 개진한 책, 당시까지의 지식의 폐단을 종족, 동굴, 시장, 극장의 이른바 4개의 우상으로 분석, 정리하였으며 근대과학의 실험적 방법의 기초가 된 자신의 새로운 방법을 귀납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 즉 오르가논에 대해 새롭다는 의미에서 이 같은 제목을 붙였다.
생애와 작품활동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철학자. 정치가, 수필가로 귀납적 방법에 의한 경험론의 기초를 마련했다. 런던에서 대법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지식욕이 왕성하여 엘리자베스 여왕의 귀여움을 받았는데, 여왕은 그를 어린 궁정대신 이라 불렀다. 1573년에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스콜라 철학을 강요하는 학교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자퇴한 후, 부친의 권유로 프랑스에서 3년간 문학과 과학을 공부했다. 1579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법률공부를 시작했다.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 영역은 법률, 정치, 철학, 역사, 문학 등 폭넓은 것이었으며 능력도 뛰어났다. 그는 이미 인간지식의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584년 23세의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는데, 그의 처녀 연설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불쾌하게 만들어, 의회와 궁정저치에서 보인 줄기찬 봉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발탁되지 않았다. 그는 가난했지만 관리가 되려는 그의 열망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편 그는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리턴 스트레이치는 그를 가리켜 보기에 따라서 색이 변하는 양색비단 같은 사람 이라고 평했고, 매콜리에 의하면 그는 직함, 후원, 권위의 상징물, 관직, 대저택, 멋진 정원 등을 갈망했던 사람이었고, 강한 애정을 느낄수 없으며, 큰 위험에 맞설 수도, 위대한 희생을 할 수도 없는 사람 으로 묘사했다. 그는 여왕의 애인이자 총신이었던 에식스백작의 가까운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식스 백작이 여왕의 총애를 잃고 반란을 기도했을 때, 그에게 반란죄로 사형을 구형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은망덕하다는 비난을 받았음은 물론 여왕 재식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그는 비로소 왕의 다음 자리인 대법관이 되었는데, 그의 일생에 오점을 남긴 사건이 일어났다. 소송 당사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의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런던탑에 4일동안 감금되었다 풀려났다. 재판관이 피고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은 당시의 관행이었는데, 이 점에서 그 역시 시대를 초월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두고 나는 50년이래 가장 공정한 재판관이었다. 그러나 이 판정이야말로 200년이래 의회의 가장 공정한 판결이었다 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후 고향에서 조용히 학술연구와 저술에 몰둥하였다. 얼마 후 국왕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뉴 아틀란티스 라는 유토피아 문학을 저술했는데, 이는 국가와 우수한 학자군에 의하여 통치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국가와 비슷한 것이다.
1626년 3월 런던에서 하이게이트로 가는 도중, 고기를 눈 속에 묻어두면 얼마 동안이나 썩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는 이것을 당장 실험해보고 싶어졌다. 한 농가에 들어가 닭 한 마리를 사가지고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눈 속에 묻었다. 그러는 동안 오한과 피로가 겹쳐 가까운 저택으로 옮겼다. 죽어가면서 실험은 .... 훌륭하게 성공하였다고 썼는데 이것이 그의 최후의 글이 되었다.
저술배경과 학문의 대혁신 구상
베이컨 이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카톨릭 교회의 교리로 채택되면서 중세학의 절대적 귄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베이컨이 생존한 16~17세기는 바야흐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운동이 유럽 각국에서 새로운 지적탐구의 기운을 일으키고, 베이컨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의 3대 발명은 학문상 실제적으로 빛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의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의 절대왕정하에서 약육강식적인 초기 자본주의가 본원적 축적을 강행하며, 선진강국인 스페인에 대항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기운 속에서 제임스 1세의 대법관이었던 베이컨은 오랫동안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 철학에 억눌려 부진한 상태에 있었던 학문의 세계를 개혁하기 위해 학문의 대혁신 이라 일컫는 장대한 체계적 저술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는 학문의 대혁신을 위한 시도로 6부로 된 대작을 구상하였다. 제1부는 우리 인간의 지식의 현황을 비판하고, 제2부는 새로운 과학적 탐구방법을 기술했으며, 제3부는 경험적인 테이터의 수집법, 제4부는 실용적인 새로운 과학적 방법의 해설, 제5부는 가상의 결론을 제시하고, 마지막 6부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얻어진 지식을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야심적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실현된 것은 3부까지인데, 특히 1부인 학문의 진보, 2부인 신논리학 이 유명하다. 제1부인 학문의 진보에서 베이컨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아는 것이 힘이다.' '자연은 복종함으로써만 정복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자연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잘못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2부 신논리학에서는 4개의 이돌라(우상)을 설명하고 자연의 해석방법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귀납법 을 취하는 경험론을 제시한다, 그는 신논리학에서 종래 편중되어온 연역법을 없애고 귀납법을 학문의 진정한 방법으로 학립할 것을 제창하였다. 중세학문은 신학중심이었기 때문에 신을 가장 보편적인 존재라고 한 교의를 제1원리로 하여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문에 논리학에 있어서도 보편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을 추론하는 연역법이 그 반대인 귀납법보다 존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이컨의 생각에는 연역법이 새로운 진리발견에결코 합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연역법을 대표하는 3단논법이 그 대전제 가운데 이미 포함되어 있는 진리를 추출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문의 임무는 이미 낡아버린 쓸모없는 논리에 집착하지 말고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새로운 진리의 발견을 목표로 해야 한다.
신논리학 의 내용
베이컨의 저서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신논리학은 신기관이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인 오르가논이 연역법인 것에 대항하여 새로운 연구방법이라는 의미의 신기관으로 명명하고 귀납법을 주창하였다. 본서는 2부로 나누어지는데, 전편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한다. 지식이 힘이지만 인간이 지식을 추구할때 편견이나 선입견이라는 장애물이 놓여있다. 그는 이 장애물을 우상(이돌라)라 부르고, 4개의 우상을 지적하고있다.
종족의 우상 : 인류라는 종족에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선입견으로, 모든 사물을 인간 본위로 생각하는 데서 오는 편견이다. 감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든지, 자기가 기쁘다고 꽃이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등이다. 동굴의 우상 : 종족의 우상과는 달리 개개인이 자기 나름대로의 성격, 습관, 경험 등의 특수성을 기준으로 모든 사물을 인식하고자 하는 데서 생기는 편견이다. 그가 자라온 환경이나 그가 받은 교육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를테면 배금주의자가 모든 사람을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처럼, 자기의 편견에 빠지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처럼 마치 그것은 좁은 동굴안에서 넓은 세계를 보려는 일이나 다름없다. 극장의 우상 : 자기 자신의 주관보다 기존의 전통이나 권위, 학설,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데서 비롯된는 선입견이다. 이를테면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가공적인 이야기를 맹신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역사상 드러난 독단적인 학설들이 그러한 경우다. 시장의 우상 : 사회생활에서 언어를 잘못 사용하거나 참뜻을 잘못 이해하는데서 생기는 선입견으로, 인간의 언어가 교류되는 과정에서 개념적 속이 틀리거나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말을 사용함에 따라 파생되는 혼란들이다. 예를 들자면 세상 소문이 사실로 믿어지는 경우 이다.
귀납법 : 그는 위에서 지적한 편견들을 제거함으로써 지식의 확대에 기여하지 못하는 연역적 3단 논법을 배격하고, 새로운 진리탐구방법으로실험과 관찰에 기초를 둔 귀납법을 제2편에서 중시했다. 열의 형상에 관한 예로써 귀납법을 설명한다. 먼저 태양광선, 유성, 불꽃 등과 같이 열을 발산하는 열의 목록표 를 만든다. 그 다음 달빛이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물고기 등과 같은 다른 조건은 비슷하나. 열이 존재하지 않는 사례를 모은 열의 부재표 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조건의 변화에 따라 여러가지 정도로 열이 발견되는 사례에 관한 정도표를 작성한다. 예를들어 말라리아의 열, 동물의 신체부위에 따라 다른 체온, 타는 석탄이나 목탄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열 등을 제시한다. 그런 다음 이 3가지를 기초로 열이란 중심에서 주변으로 퍼지며, 위로 급하게 움직이는 일종의 운동 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모든 현상이 명백한 결론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므로, 특수한 사례를 수집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비판적 평가
기존의 학계에절대적 귄위를 유지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르네상스 이후 일기 시작한 지적 탐구의 기운으로 새로운 학문적 분석도구를 필요로 하였고, 이에 귀납법을 통한 신논리학 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베이컨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호를 개방하고 일체의 편견을 배격하였다. 그이 이러한 학문적 자세는 영국의 왕립학술원과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백과전서 의 집필자인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또한 경험론에 입각한 그의 윤리사상은 홉스를 거쳐 공리주의 윤리사상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이 이래로 과학적 추구에 있어서 이론과 실제의 결합은 존중되어왔으나. 베이컨만큼 의식적으로 그 점을 강조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신논리학 에서 실험을 통하지 않은 이론, 체계적 이해가 없는 실험은 다 같이 무용한 것이라 고 경고하고, 위대한 진보는 이론과 실제의 결합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담하고 솔직하게 종래의 사변적 학문을 파산선고하고. 실증적 학문의 권위를 고양시킴으로써 막 싹트기 시작한 근대자연과학의 길을 개척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베이컨의 말처럼 지난 수천 년 동안 실험가들은 개미 와 같이 논리적 뒷받침 없는 사실의 수집을 하였고, 철학자들은 거미 와 같이 실험을 무시한 사색에만 열중하였던 것이다.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과학자들은 사고와 사실, 논리와 실험을 함께 결합시키는 꿀벌 과 같은 작업을 하여 위대한 성과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아는 것이 힘이다.' '자연은 복종함으로써 정복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목적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방법의 확립에 있었는데.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본 그의 자연관은 최근에 와서 데카르트나 뉴턴에게 퍼붓는 유기체적 세계론자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수학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자연 속의 보편적 법칙을 양적 관계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데카르트와 비교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