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3장 서양사상
군주론(Prince) -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27)
분열된 조국을 위해 여우와 사자라는 군주의 두 가지 역활을 강조하는 정치기술의 서, 즉 르네상승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던 중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가 몰락하기 시작한 시대적 위기에 대응하여, 이탈리아의 구원과 갱신을 당담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창건할 군주에게 요구되는 정치기술을 논하고 있다. 이 책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더 인간의 정치적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정치를 완전히 세속적인 세계이해에 기초하여 파악한 최초의 근대적인 정치이론서로서 평가된다.
생애와 작품활동
흔히 약육강식의 폭군지상주의로 인식되어 있는 마키아벨리, 그는 진정 권모술수의 대명사인가, 아니면 철저한 현실주의자인가? 마키아벨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과 동시대의 인물로, 르네상스 운동의 절정기인 1496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외교관, 정치학자. 역사학자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내부적으로 밀라노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 국가, 나폴리 군주국 등의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프랑스와 독일의 침략으로 혼란한 상황이었다, 그의 젊은 시절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지도자인 로렌초가 죽자 1494년 메디치 일가는 추방되고 피렌체는 공화제가 되었다. 그는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 되어 프랑스,독일 등 여러나라를 여행하며 각국의 권력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1512년 피렌체 공화국은 무너지고 메디치가가 복귀하자 그는 곧바로 사직 당했다. 그러자 그는 피렌체의 교외에서 그가 지난날 만났던 각국의 지도자들이 정치행태와 조국이 처한 정치상황을 관조하며, 14년동안 군주론 등의 저술작업에 몰두하다.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작품으로 군주론에서는 주권자로서의 자격와 행동원칙, 리비우스론 에서는 국가의 자유와 독립보전, 전술 에서는 군대와 병사, 피렌체의 흥성과 메디치가 사이의 관계를 밝힌 피렌체사, 자국어에 대한 찬사와 존경을 표현한 언어에 관한 대화 , 당시 사회의 모순과 비정상을 풍자한 황금당나귀, 여자에 대한 무시와경멸을 표한한 대악마 벨화골 이야기 등이 있다. 그러나 그이 문학작품 중 최대걸작은 풍자희극 만드라골라로, 보카치오에 의해 나타난 르레상스 기의 사회적 타락상을 그의 예리한 문학적 재능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연극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대적 상황과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와 그의 저서 군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처절하고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시대적 상황,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싹튼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를 전 유럽의 (화원)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정치적으로는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외부적으로는 프랑스, 독일이 각각 통일국가 형성을 위해 발전하는 것과는 달리, 로마제국 멸망후 부터 계속된 내부적 분열이 더욱 악화되어 프랑스와 독일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특히 십자군 전쟁 이후 발생한 여러 도시국가들은 혼란을 더욱 가중 시켰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피렌체도 메디치가의 독재시대로, 그가 태어날 당시에는 메디치의 손자인 로렌초가 전제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1496년은 또한 프랑스의 샤를르 8세가 분열상태의 무력한 이탈리아를 짓밝은 해였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그의 천재성을 조국 이탈리아를 구원하는 방향으로 발휘했다 그는 조국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적 해결에 있다고 보고, 그의 독창적인 정치사상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즉, 정치를 윤리, 도덕과 분리시켜 객관적, 과학적 기초위에 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통치기술로 본 것이다. 그 당시 그는 피렌체의 외교사절로서 로렌초의 사망, 프랑스 침입, 로렌초를 계승한 피에로 추방, 예언자 사보라롤라의 등장과 화형, 국가간의 무자비한 투쟁과 비윤리적인 군주를 목격하며 상호화해를위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바로 그 시기에 이탈리아 정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군주론의 주인공이 된 체자레 보르지아가 부친인 교황 알렉산더와 프랑스를 업고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목표로 세력을 확대해나갔는데, 이에 크게 당황한 피렌체 측에서는 마키아벨르를 보르지아에게 보내 수교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마키아벨리는 보르지아와 만남을 통해 그의 인격,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단호한 자세, 대담성, 세심함, 행동에 있어서의 잔인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군주론에 나타난 그의 정치적 사상은 이미 이때 확립되었던 것 같다. 여기에서 그는 보르지아 개인의 인간성이나 도덕적 행위를 정치적인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처리하는 특이한 정치철학을 구체화시켰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조국통일의 등불로 기대를 걸었던 보르지아도 1503년 부친인 교황이 별세하자 정치력을 잃어, 마키아벨리의 꿈은 수포로 돌아간다. 1512년 피렌체는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 피렌체는 다시 메디치가 의 전제시대로 들어가고, 마키아벨리는 구정권에 재직하였다는 이유로 1년간 억류생활을 한다. 그후 다시 공직에 복귀되나 다시 오해를 받아 재투옥된다. 석방된 후 일체의 속세를 멀리하고 산카시노의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저작생활에 몰두한다. 마키아벨리즘, 근대 정치사상사의 고전적 저작 중에서 군주론 만큼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없다. 급기야 마키아벨리즘 이란 새로운 정치용어와 사상까지 생겨났는데, 과연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의도인지, 아니면 후세인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아전인수격으로 왜곡한 것인지 문제제기가 불가피하다. 본서가 1532년 출판되자, 맨 먼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종교계였다, 교황의 무능과 탐욕을 비판한 구절이 문제가 되어 교황옹호파인 예수회를 중심으로 군주론 소각 등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되어, 급기야 금서령 이 내려졌다. 이 같은 감정적인 차원의 대응과는 달리 학문적인 비판도 제기 되었다. 프랑스의 법학자 이노센트 젠틸레는 군주론에 담긴 정치사상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의 오류를 열거하고 자기의 정치사상을 표명하였다. 그가 바로 군주론의 본래 의도를 왜곡해서 마키아벨리즘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자기의 권력확대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술로 둔갑하여, 이후 루이 14세 등의 독재자들에게는 복음서와 같은 역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 과연 마키아벨리가 울분을 머금고 은둔생활에서 집필한 군주론의 집필동기는 무엇이며,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은 어떤것인가. 그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내부적인 단결과 외세의 격퇴가 필요하다고 보고, 그를 위해 강력한 군대와 폭군적인 전제군주제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이 새로운 군주와 그가 영도하는 국가는 과연 어떤 정책으로 이탈리아를 구제할 것인가. 이러한 논점을 그의 다년간 경험과 학식, 그리고 천재성으로 밝혀나간 것이 군주론이다. 그는 강력한 정치체제를 위해 위대한 군주와 강력한 군대, 풍부한 재정이 필수적이며, 방법론상으로 군주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어떤 수단도 허용되며 군주의 행동에는 도덕적 요소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군주는 항상 국민의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주가 역경에 처해 있을때 아무런 자원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된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군주는 먼저 냉철한 심사숙고형이어야 하며 조국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종교나 도덕을 초월하여 지와 용으로 다스릴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선정을 위해 국민의 마음을 항시 파악하고, 이를 이용 또만 만족시킬 수 있는 총명함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군주의 행동요강이 바로 군주론에서 그가 밝히고자 한 핵심사항이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며, 이것은 전재군주에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일시적 수단방법이 그의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방법, 권모술수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즘으로 불리게 된것은 그이 저서 군주론에서 그가 이러한 대담한 주장을 하면서 부터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그의 사후에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군주론의 내용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잘 정되어 있으며 저자는 이탈리아 산문의 거장답게 아름다운 문체로 각 장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운 드문 정치철학서이다. 군주론 의 중심사상은 군주란 무엇인가, 그는 어떻게 권련을 휘득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그가 권력을 잃었다면 그 원인은 어디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이다. 군주론 은 메디치 가문에 바치는 내용의 서문과 전 26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구성을 보면 1-11장: 각종의 군주국, 특히 신흥군주국의 통치방법, 12-14장: 군주의 군대와의 관계 15-25장: 군주가 추구해야 할 행위의 준칙 26장: 군중에게 호소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본서의 하이라이트는 악명 높은 18장(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키는가)으로 마키아벨리즘의 정수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하에서는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제16장 관대함과 인색함에 대하여, 우선 군주는 밑에 있는 사람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관대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관대하려다 보면 무능한 군주가 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 군주가 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군대에게 재산이나 약탈을 나눠줄 때 군주는 관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대가 그를 배신할 가능성이 생긱기 때문이다. 제17장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하여,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받는 것 중 어느편이 나은가, 그 대답은 공포와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만일 택일하려면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최소한 미움은 받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이기주의적이 성격이 있기 때문에, 사랑에 의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면 곧 저버리게 되며, 이에 한해 공포는 처벌의 두려움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제 18장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킬 것인가,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미덕을 갖추어야 하나, 어떤경우에나 신의를 지키려다 보면 군주가 곤란에 빠질 수도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 처신하여야 한다, 특히 새로운 군주는 운명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서 여우의 지혜 와 사자의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여우는 이리에게 공격당할 수 있고, 사자는 인간이 만든 올가미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리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사자의 위엄 과 올가미를 발견할 수 있는 여우의 지혜 를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묘사하는 군주의 모습은 반인반수가 되어 인간과 짐승을 함께 부릴 수 있어야 하며, 그 이상적인 모습을 여우와 사자의 두 역활 을 하는 군주의 모습에서 찾았다. 또한 군주의 신뢰성 유지방법에 대해 사려 깊은 군주는 자기의 이익에 위배하면서 까지 신뢰를 유지하려고할 피요는 없다, 또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경우 설사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고 그 변명을 하는 군주는 실패한다. 인간은 극히 단순하여 현재의 필요한 것에 늘 대응하고자 한다. 남을 속이는 자는 속아넘어가는 상대를 찾게 마련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의 자연스런 결과로 군주에 대해 타인과의 약속은 언제나 회의적이어야 한다 고 충고하고 있다. 제19장 경멸과 증오를 피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군주는 신하나 백성으로부터 존경받지는 못하더라도, 경멸받지는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군주에 대해 군대는 강한 인상과 능력을 요구하고 백성들은 온화함과 관대함을기대한다. 이 양쪽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최소한 경멸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특히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20장 군주가 구축하는 요새 및 그 비슷한 것들은 과연 유익한가. 군주는 백성에게 무기를 줄 때 잘 생각해서 무장시켜야 한다. 특히 새로운 영토를 차지했을 때, 그곳 원주민들에게는 무기를 주어서는 안된다. 완전히 자기 편이라고 믿어지는 원주민들에게 무기를 줄수는 있지만 이때도 신중하여야 한다. 제21장 명성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주가 명성을 억기 위해서는 위대한 사업과 싸움에서의 용맹스러움을 보여주어야 한다. 위대한 사업은 영토를 늘리는 것을 말하고, 전쟁에서는 승리하는 것도 이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영토를 늘리고 지키는 과정에서 용맹을 떨치면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 군주는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군주국 안에 있는 단체들을 잘 장악해야 하고, 외국과도 적절한 동맹을 맺어서 국가를 지켜야 한다. 제22장 군주의 측근대신, 제23장 간신을 어떻게 피할것인가, 군주가 유의해야 할 일은 자기 밑의 대신들을 잘 뽑아 쓰는 일이다. 군주는 다른 사람이 행동하거나 말하는 것이 옳은지 기른지를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단 군주가 그 판단력을 가지고 선택한 신하에 대해서는 존중해주고 명예와 부를 주어 자신을 계속 따르게 해야하고, 다른 것들을 욕심내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한다. 선택할 때는 그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데해 깊이 고려해야 한다. 또 주위에 몇몇 지혜있는 사람들을 두어 바른 말을 할 수 있게 하되, 모든 백성과 대신들이 바른 말을 하게 해서는 군주의 위엄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제24장 이탈리아 군주들은 왜 영토를 잃었는가. 나라를 잃는 이유로는 운명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군주가 무능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제25장 운명은 인간사에 어느 정도 힘을 가졌으며, 그 운명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운명은 저항력이 없을 때에만 큰 힘을 발휘하고 제방이나 축대를 잘 쌓아놓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운명의 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것보다는 오히려 맹렬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운명은 내 친구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제26장 야만인들로붜 이탈리아 해방을 위한 권고, 결론적으로 강한 지도자가 와서 이탈리아 인만으로 구성된 강한 군대를 조직하여, 야만인에게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해방의 길임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미덕은 폭력에 대항하여 일어난다/싸우면 곧 이기리라/이탈리아 인의 마음속에서/아직도 그 옛날의 용맹이 사라지지 않았거늘."
정치학적 의의와 그 영향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란 작은 책에서 분열된 조국의 통일을 희구하면서 강력한 군주에의한 전제정치를 주장하여, 군주권의 우위에 의한 통치자의 지배원리를 강조하였다. 그는 역사적 수난과 정치적 암흑기를 살아가면서, 로마 제국적인 유럽질서의 회복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면서 이 최대선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바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즉 그는 법에 의한 유럽사회의 회복과, 이를 위해 잠시나마 일단 무정부상태를 수습할 수 있는 인물과 수단으로 체자레 보르지아와 그의 잔인무도한 정치수단과 방법을 빌렸을 뿐, 그의 최종목적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정에서 저자는 인간성에 대한 존경보다는 인간의 심리적인 약점을 사정없이 폭로하면서 새로운 정치의 기술을 논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 소위 마키아벨리즘의 본질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이후 그의 영향은 지속적으로 미쳤다. 17세기 영국의 정치 철학자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영향을 미쳤고, 독재자들이 애독하는 핸드북이기도 했다.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등이 애독한 것으로 전해지며, 특히 나폴레옹은 밤마다 베개 밑에 군주론 을 놓고 잤다고 알려져 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반 마키아벨리즘(1740)을 써서 마키아벨리즘의 비인도성을 비판했지만. 실제로는 대왕 자신도 마키아베리즘을 구사했다. 한동안 마키아벨리는 악마의 화신처럼 증오를 받기도 했으나. 이제 정치사상가 중에서 마키아벨리를 그렇게 격렬하게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날 마키아벨리즘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에서 생긴 필요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느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이 이루어진 시대의 역사적 환경속에서만 진실하게 이해 될 수 있다. -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랑케
인류가 타락하지만 않았어도 이 모든 기술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 마키아 벨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