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2장 동양문학
기탄잘리 -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어느 가을날,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며 음미하고 싶은 한 권의 시집으로, 동양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타고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인도의 시성으로 일컬어지는 타고르가 1909년에 벵골어로 출판한 기탄잘리(한 묶음의 노래)는 제목 없이 번호만 붙인 103편의 종교적인 서정시모음이다. 시인 자신이 영역하고, 예이츠가 서문을 썼다. 출간과 동시에 선풍을 일으켜 1913년에 노벨상을 받게 되었고, 김억의 번역본(1923)으로 우리 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영혼의 영원한 자유는 사랑 속에, 위대함은 작은 것 속에, 무한은 형태의 구속 속에 있음을 노래한다.
생애와 작품활동
인도의 시인. 사상가. 교육가. 음악가. 화가. 사회운동가 등 실로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20세기의 기적적 인물이다. 인도 벵골의 천 년을 헤아리는 오랜 바라문 계급의 명문 타고르가의 14번째 아들로 캘커타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그의 가계에선 많은 철학자나 예술가들이 배출되었는데, 특히 그의 부친 데벤드라나트는 평생을 종교개혁에 바쳐, 근대 인도의 정신적 부흥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부친을 따라서 히말라야 산맥 또는 아름다운 명승지를 다니면서 자연에의 신비를 엿볼 수 있었던 그는 이러한 정신적. 예술적. 학문적 분위기, 아름다운 인도의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11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5세 때 형들과 함께 잡지를 편집, 17세 때 런던에 유학, 법률을 전공했으나, 1년도 못 채우고 귀국했다. 19세 때 첫 시집을 완성하였고, 1901년 부친이 명상의 장소로서 구도자에게 개방했던 볼푸르 숲 속의 샨티니케탄(평화의 집)을 물려받아, 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학원을 설립, 오랜 전통에 기초하여 개성을 일깨우는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타고르의 동서문화의 새로운 종합을 이념으로 하는 비슈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 인도 지성의 요람으로 수많은 지식인을 배출한 국립 종합대학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동화를 통한 전인교육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한 이 산타니케탄의 생활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유희하면서 이 학원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 이라고 그들의 인간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타고르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한 시집 기탄잘리와 생명의 실천이란 유명한 철학서도 바로 이 샨티니케탄에서 이루어졌다.
1913년 기탄잘리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연극. 음악에까지 발휘되어 인도의 국가도 그의 작품이며, 그 자신이 출연, 작곡하여 인도에 이른바 샨티니케 풍의 가무연극을 발달시켰다. 제1차대전시에는 매우 상심하였고, 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세계는 열광적으로 이 시성을 추앙하여, 그의 시와 사상 속에서 새로운 복음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여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다. 소련도 방문했지만 결코 유물론에 흔들리지 않았다. 제2차대전이 일어나자 간디와 손잡고 직접 반영운동을 하다가, 간디의 양해하에 그는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두 사람은 서로 인도 근대사의 위대한 영혼으로 서로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 간디의 교육정신은 타고르에게서 오고, 타고르의 평화이념은 간디의 철학과 공통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은 정치적 현실운동의 지도자요, 한 사람은 문화적 정신운동의 영원한 영도자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타고르는 1941년 80세를 이승의 고비로, 숭고한 이상이 무모한 전쟁과 유혈 속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눈을 감았다. 주요작품으로는 기탄잘리의 어린이판이라 할 수 있는 초승달, 지상에 바치는 전원적인 사랑의 시라 할 수 있는 정원사, 신에게 올리는 사랑의 기원을 담은 열매 모으기, 희곡집인 우체국 등이 있다.
시대적 상황과 그의 작품세계
타고르가 생존했던 인도는 정치적으로 영국의 식민지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인도인들은 창조력을 잃고 민족적 자유의 상실을 거의 자각하지 못하고, 문화적으로는 소수의 비타협자들을 제외하고는 서양의 모방자와, 과거의 전통과 교리에서만 위안을 찾고자 하는 보수파들이 득세하는 상태였다. 종교적으로는 힌두교가 오랜 인습에 얽매여 낡은 봉건의 탈을 못 벗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바라문 교가 새롭게 등장하여, 오래된 인습을 깨뜨리고 새 시대를 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신분제가 여전히 존속하여, 국민들 사이의 동질감과 일체감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 4성의 구별은 불교의 평등주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암흑의 세계에 드디어 한 줄기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다. 타고르의 탄생이 그것이다. 자신의 말을 빌면 자기의 삶 속에 세가지 흐름이 합류하였다고 한다. 첫째는 숭고한 지성인인 로이(Roy)에 의해 도입된 종교적인 흐름이다. 이는 매우 개혁적인 것으로, 과거의 인습과 구태의연한 형식에서 벗어나면서, 한편으로 과거의 가시덤불 속에서 이상의 싹을 찾으려는 르네상스적인 시도였다. 둘째는 벵골 문학의 개척운동이다. 그는 당시 문학이 창조력을 잃었다고 진단하고, 문학을 오랜 잠에서 깨워야 하며 문학이 새로운 힘과 운치로 넘칠 때, 그것은 아름다움의 비전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셋째는 국민운동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영국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의 사상과 전신의 힘으로 세계를 세우려는 광범위한 민족운동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그가 고민하고 열렬히 추구하고 염원한 것은 오직 인도의 자유와 민족의 해방, 동양의 발전, 나아가서 동서양의 융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보낸 그의 작품생활은 대개 4시기로 나누어진다.
제1기 15세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벵골의 셸리(Shelley)라고 일컬어진 시대다. 최초의 시집은 바누 신하 로, 익명으로 출간했으나 고전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고, 저녁의 노래, 아침의 노래를 거쳐 초기 서정시의 절정을 이루는 장조와 단조를 낸다. 제2기 부친에게서 영지인 셀리다 관리의 위임을 받아, 자연과 가난한 농민생활과 접촉하며, 사회악과 인습에 도전하는 한편, 갠지스 강 유역의 대자연의 품에 안겨 명상을 일삼았다. 이 시기를 사다나 시기라고 하는데, 여기서 내던 잡지인 <사다나>에서 유래했다. 이 시기에 희곡 제물, 치트라 등이 나오는데 초기의 서정세계에서 벗어나, 인생의 현실과 사회고발, 신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제3기 1901년부터 벵골 평론 을 내면서부터 시작된다. 1905년에 영국의 벵골 분리정책에 항의하여, 펜을 휘둘러 국민의 자각을 촉구한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고라와 힌두교의 가정생활을 비판한 운명의 난파, 시집 교차로 등이 있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시인인지라, 간디와 함께 하던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샨티니케탄으로 가서 숲속에서 고독한 명상을 하며 삶의 심층을 더듬는다. 편협한 국수주의를 지양하여 영혼을 보편의 세계로 유도하고, 삶의 다양 속에서 영원한 하나됨을 추구하는 경건한 종교시인으로서의 예술가의 길을 지향한다. 사랑과 평화의 국제주의적 이상에 입각한 교육가로서의 사업에 헌신한다. 제4기 1908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두 아들 역시 계속해서 잃는다. 실의와 무상과 고독 속에서, 그는 기탄잘리, 암실의 왕, 우체국 등으로 대표되는 샨티니케타 시대가 열린다. 1912년 2차 영국방문을 계기로 그는 동방의 시성 으로 세계에 알려지고, 다음해에 노벨상, 또 다음해에 영국왕실에서 작위를 받는다. 그러나 1919년 암리차르에서의 대학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반납했다. 그후 샨티니케탄에 세운 작은 학교를 사랑과 평화의 국제적인 문화의 중심이 도는 대학으로 키우는 데 헌신한다.
기탄잘리 의 내용
벵골인의 정서로 아름다운 영혼을 노래한 이 작품집은 1909년에 발표된 벵골 어판에는 157편이 수록되었고, 1912년 작자가 직접 영역한 영어판에는 103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영역판에는 예이츠가 서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1923년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에 의해 '읽으라, 그러나 씹어서 읽으라' 라는 역자의 말과 함께 번역. 소개되어 만해 한용운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기탄잘리라는 제목은 평화의 노래로 번역되었지만, 기트는 노래란 뜻이고, 안잘리는 합장의 뜻으로 인간과 신, 혹은 자연과의 합일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기탄잘리는 수록된 시마다 제목 대신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이 독특하다. 한편으로서의 독립된 뜻도 있지만, 일종의 연작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생과 사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시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인간의 종교적인 면의 불가피성을 노래하고 있다. 위대한 사상은 죄악의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여기 수록된 시편들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다. 이 시는 애인을 그리는 사랑의 순정으로, 신을 사모하고 신을 존경하는 감동의 서정시요, 종교적인 기도시다. 또한 영국의 속박에서 시달리는 조국 인도의 참상과 영광을 노래한 애국시요, 민족적 정열의 시다. 또 생사고뇌의 천태만상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표현한 서사적인 시요, 동시에 죽음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와 그 뜻을 나름대로 풀이하는 종교적인 철학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신앙인은 자기 신앙의 뛰어난 표현을 여기서 본받을 수 잇고, 또 모든 문화 관계자는 시상의 극치를, 일반인은 생활의 목표와 행동의 지침 및 이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으며, 전문연구가는 동양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시각을 얻을 수 있다.
1 임께서 이 몸을 무한하게 하셨나이다. 이것이 임의 기쁨입니다. 연약한 이 그릇을 비우고 비우시어, 항상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시나이다. 이 가냘픈 갈대피리를, 임은 산을 넘고 골짜기를 넘어서 가져오시어, 영원히 새로운 멜로디를 불어넣으셨나이다. 불사의 임의 손길이 닿자, 이 가냘픈 가슴은 기쁨에 좁은 울이 터져,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말을 하나이다. 임의 무궁한 선물은 극히 작은 이 손을 타고 오나이다. 세월이흘러도 임께서는 끝없이 퍼붓건만, 아직도 채울 곳은 남았나이다.
23 사랑의 여행을 하시느라, 그대는 이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도 밖에 계시나이까? 벗이여! 하늘은 절망에 허덕이는 자처럼, 으르렁거리나이다. 이 몸은 이 밤에 잠 한잠 이루지 못했나이다. 몇 번이고 문을 열어 어둠 속을 내다보았나이다, 벗이여! 제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나이다. 임이 가시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나이다. 저 푸른 강, 어느 어슴푸레한 기슭에, 저 험한 숲 어느 먼 끝에, 또 어둠 속 어느 어지러운 구렁을 지나 그대는 이 몸을 찾아오고자, 길을 더듬어 오시나이까, 벗이여?
46 얼마나 먼 옛날부터 임은 이 몸을 맞이하고자, 가까이 또 가까이 오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나이다. 임의 태양과 별은 나 몰래 영원히 임을 가리어둘 수는 없나이다. 수많은 아침과 저녁마다 임의 발길은 귀를 울려왔고 임의 전령은 내 가슴 속에 찾아와, 은밀히 나를 불렀나이다. 오늘은 어인 일로 내 삶이 이다지도 흥분하는지 알 수가 없나이다. 떨리는 기쁨의 느낌이 가슴속을 스쳐갑니다. 마치 세월이 내일을 끝마치게 하는 듯도 하나이다. 그래서 이 몸은 공기 속에서 임의 아리따운 모습의 어렴풋한 향기를 맡나이다.
95 내 처음으로 이 생명의 문을 건너던 순간을 깨닫지 못하겠나이다. 한밤중 숲속에 핀 꽃봉오리와도 같이, 이 거대한 신비로 향하여 이 몸을 열게 한 힘은 무엇입니까? 날이 밝아 광명을 바라보는 순간에, 내 이세상의 낯선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나이다. 이름도 형태도 없고, 또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나를 낳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 팔에다 나를 안았나이다. 그럴지라도 죽으면 똑같이 미지의 것이, 일찍이 알려진 바나 다름없이 나타나리다. 그리고 내 이 생을 사랑하는 까닭에, 죽음도 사랑해야 할 줄 아나이다. 어머니가 오른편 젖에서 아기를 떼어놓으면, 아기는 소리쳐 웁니다. 바로 다음 순간 왼편 젖을 찾아내어 위안을 받으며.
103 임에게 한 번 인사를 올림으로써 내 주여, 모든 내 감각이 손을 뻗쳐 임의 발 앞에 있는 이 세계를 어루만지게 하여주소서, 아직 떨어지지 않는 소나기의 짐을 지고 나직이 떠 있는 칠월의 비구름과도 같이, 임께 한 번 인사를 올림으로써 온 이내 마음이 임의 문 앞에 머리를 숙이게하여 주소서. 이내 모든 노래로 하여금, 갖가지 다른 가락들을 한줄기로 모아 임께 한 번 인사를 올림으로써, 침묵의 바다로 흘러가게하여 주소서. 임에게는 한 인사로, 낮이나 밤이나 그들의 산에 있는 둥지로 되돌아 날으는, 향수에 젖은 학의 떼처럼, 나의 온 생명으로 하여금 그 영원한 안식처로 항로를 취하게 하옵소서.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기탄잘리에 서문을 썼고, 또 감히 옥스포드 앤솔러지에 식민지 시인의 시를 넣어 편집한 예이츠의 말처럼, 타고르의 문학은 누구나 읽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세계를 깊이 파헤치고 들어가, 우리 개인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실로 인간존재의 핵심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이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근대시인에게서 보기 드문 조화와 성숙에 이르는 길잡이로서, 그의 말 하나 움직임 하나가 모두 시요, 아름다움이요, 지혜다. 그의 시혼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의 지혜의 정수에서 흘러나와, 유럽의 근대문명의 정신과 부딪쳐 일어나는 불꽃이며, 동양과 서양을 오묘하게 조화시킨 찬란한 꽃이라 할 수 있다. 최대의 자유와 무한한 개성, 나름의 철학, 또 온 세계와도 대결할 불굴의 용기와 저항의식의 호수에서 흘러나온 사상의 결정인 사리가 그의 시라 하겠다. 따라서 신비에 찬 바탕과 오묘한 음악과 뛰어난 철학에 넘치는 그의 시는 소박한 표현 속에서 가장 깊은 세계를 보이고 있다. 그가 사용한 언어에 접하면, 그의 천재적 활력은 눈부시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가 창조한 문학의 다양성과 아름다움, 박력은 실로 놀라운 감명의 샘이 된다. 몇 세기에 걸쳐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일을 그는 불과 한 생애에 이룩하여 국민에게 개화와 발전의 힘을 주었다. 그는 사상가 감정의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언어를 창출하여 동서 어느 대학에서 가르쳐도 손색없는 문학을 생산하였다. 그가 과감하게 개척하여 결실을 가져오지 못할 분야는 없었다. 그는 벵골이라는 예술의 처녀지에 세계적인 문화의 생명을 불어넣은 도화선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위대한 문학의 시금석에도 저항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임을 향한 기도의 시
이 작품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속한 현실의 세계와 임이 계신 피안의 세계를 상정해놓고, 영원의 세계에 계시는 임을 현실 속에서 갈망하는 한 성자의 육성을 담고 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예언자요, 인간과 신의 매개자였다. 그의 천재성에 접하면 무엇이든 빛을 내고 생명이 샘솟는다. 미지의 세계에 사상의 지평선을 제시하였고, 서양과 동양 사이에 가로놓인 늪에 다리를 놓았다. 1929년 타고르는 일본을 들렀을 때 <동아일보>를 통해 한국인의 가슴에 희망과 불을 던져주었다.
동방의 등불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아시아의 빛나는 황금시대에 코리아는 그 빛을 밝힌 한 주인공이었다.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동방은 찬란히 온 세계를 밝히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