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어머니 (Mat') - 고리키 (Maxim Gor'kii, 1868-1936)
한 시대의 보편적인 이념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려 했던 고리키를 만날 수 있는 작품. 노동자 출신으로 파란만장한 여정 끝에 세계적인 문호로 대성한 고리키가 1907년에 발표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효시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매사에 소극적인 한 어머니가 혁명운동에 뛰어든 아들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들의 혁명적 대의를 이해하면서 따뜻한 인간으로 변모해, 마침내 여성 혁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책이란 꼭 필요한 것이다. 과거에 많은 노동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혁명운동에 관여해왔다면, 지금의 노동자들은 어머니를 매우 유용하게 읽고 있다... 고리키의 어머니는 노동자들이 무의식적으로 혁명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이때, 진정 시의적절한 소설이다. - 레닌
카이저 수염과 사람을 노려보는 무서운 눈빛이 인상적인 막심 고리키는 볼가 강 연안에서 하층계급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 부친을 여의고 조부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12세에 구두 수선공을 시작으로 접시닦이. 심부름꾼. 수위. 부두노동자로 일하면서 학생. 지식인. 혁명가 등과 접촉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인민 민주주의(일종의 사회주의)와 톨스토이를 맛보았고 톨스토이적 사회공동체를 꿈꾸었다. 훗날 사회주의 혁명가로서의 면모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경찰의 밀정노릇을 하라는 유혹을 받기도 하고, 연애를 시도해보지만 여지없이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염세증에 걸려 자살을 기도하는 등 보통 젊은이처럼 청춘을 앓았다. 1892년 처음으로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마카르 추드라 를 발표하였고, 이어 첼카쉬 를 발표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고리키라는 말은 고통받는 자 라는 뜻으로 고난 속의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짊어지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1899년에는 그때까지 써모은 단편 등을 기록과 소설 이라는 제목으로 출판, 일약 유명작가가 되었다. 1901년에 발표하여 선풍을 일으킨 산문시 바다제비의 노래는 혁명의 횃불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희곡 소시민을 발표해 극작가로서도 높은 평판을 얻었다. 체호프의 격려 편지를 받은 것도 이때쯤이고, 멀리서만 바라보던 톨스토이도 만날 수 있었다. 구두닦이 인생에서 유명작가로 엄청난 신분상승을 했던 것이다.
그뒤 혁명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나, 톨스토이의 항의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 요양지를 찾아 전전하였다. 1902년 과학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혁명운동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황제에 의해 취소되었다. 이 해에 하층계급의 고통을 그린 밑바닥을 발표,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905년 처음으로 레닌을 만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피의 일요일에 가폰 신부가 이끄는 시위대에 적극 참가하여 체포되었으나, 국내외의 격렬한 항의로 곧 석방되었다. 1906년에는 당의 자금 모금을 위해 미국에 갔다가 귀국거부를 당해, 할 수 없이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델이라 불리는 어머니 (1907)를 발표하였다. 한때 사상적 동요를 느껴 참회록을 쓰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레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13년 대사면으로 귀국, 10월혁명에서는 볼셰비키를 지원했으나, 그 과격한 혁명방법에 대하여 <신생활>지를 통해 강하게 항의하여 레닌과 한때 결별하였다. 50세에 10월혁명이 일어나고 레닌의 혁명정부가 수립되었으며, 56세 때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자 과격파에 의해 고리키 숙청이 대두되었으나, 개인적 우정을 가진 레닌이 그를 국외로 피난시킨다. 그는 유럽 지역을 여행한 후 이탈리아 소렌토에 정착했다. 그후 1924년에 레닌이 사망하고, 그 후계자로 스탈린이 등장하자 서방세계와 스탈린은 고리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새로이 정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자신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던 고리키의 존재가 필요했는데, 결국 스탈린의 강력한 귀국요청에 굴복하여 귀국했다. 이때 스탈린은 니즈니 노브고로드 시를 고리키 시로 개칭하는 등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베풀었다.
그는 스탈린의 배려로 작가의 최고위치인 작가동맹위원장이 되었으나, 스탈린의 비위를 거스르기도 해서 해외여행 여권이 거부되기도 했다. 1936년 그는 침실에서 죽었는데, 누군가에 의한 독살로 추정되나, 장레식 때 가장 슬퍼한 자가 스탈린이었고, 영구차를 몸소 떠메기도 했다 하니, 누가 독살한 것인지 영원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밑바닥 노동자 출신으로 파란만장한 생의 여정 끝에 세계적인 문필가로까지 대성하여, 러시아 혁명기에는 레닌 및 스탈린과의 정치적 견해차이로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을 도와 소련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했다. 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인 그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고리키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중심이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완성한 작가로서 문학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고리키는 종래의 혁명적 소설가란 범주에서 벗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시대의 황금기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물려받아, 다른 문학세계로의 일대 전환점을 이룬 다음, 후배들에게 넘겨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러시아의 혁명적인 상황의 이해를 빼놓을수 없다. 당시 19세기 말은 봉건적인 차르 체제의 몰락과 함께 뒤늦게 들어온 자본주의의 위세가 점차로 강화되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사회의 부패는 심화되고 민중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가 대두하였고, 1905년 혁명 당시 프롤레타리아가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이러한 격동의 상황 속에서, 그의 문학은 강인한 주인공에 의한 사회의 부정. 부조리에 대한 공격, 인간 옹호를 목표로 하는 휴머니즘이 강한 문학이다. 그는 출신성분이 말해주듯 주로 하층민의 밑바닥을 리얼하게 그려나갔는데, 희곡 적 과 장편소설 어머니는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을 그린 전형적인 작품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잘 나타낸다. 그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혁명초기의 당성이 강하고 기계주의적인 문학 창작방법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것으로, 소련문학의 새로운 정통성을 확립하려 했으나, 그것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동지냐, 적이냐의 단순한 인물설정등 초기 우리 나라의 카프 문학의 양상과 비슷한 이전의 문학경향은 자유로운 문학의 창조를 저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선을 수정하면서 등장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먼저 현실에 충실한 역사적 구체적 묘사를 할 것, 그리고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과정 속에서 표현할 것, 마지막으로 현실의 충실과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는 예술적 표현과, 사회주의 정신에 입각한 이데올로기의 혁신과 근로자의 사상적 개조라는 과제를 일치시킬 것 등이다. 이는 주로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하였으며, 이전의 교조주의를 비판하거나 예술성을 주장하면 형식주의 반동문학으로 낙인을 찍히기도 했다.
작품의 주요내용
이 작품은 실제로 1902년 고리키의 고향 부근인 소르모보 공장에서 있었던 표트르 자로모프 모자 체포사건을 모델로 한 작품으로, 혁명적 러시아 노동계급의 성장과 한 인간 주체로서의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기념비적인 소설이다. 파벨은 20세기 초 러시아의 선진노동자의 전형으로서, 세계 문학사에 최초로 나타난 프롤레타리아 영웅의 형상이다. 공장 노동자인 파벨은 사회의 불평등에 반발하여 사회주의 서클에 참가하면서, 귀가가 종종 늦어지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이것을 걱정했으나, 아들과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그들이 옳다고 확신한다. 작가는 연못 복개공사비 사건, 5. 1노동절 시위사건, 그리고 법정연설이라는 세 가지 사건을 통하여 한 평범한 노동자가 노동자 계급의 강인한 전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파벨에게서 20세기 초 러시아의 혁명적 노동자의 몇 가지 본질적인 특징, 즉 강인한 의지, 명확한 투쟁목표, 낙관적인 정신을 재현하고 있다. 법정에서의 파벨의 당당한 연설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다. 이것은 파벨이 높은 정치의식을 지니고 이론적으로 무장한, 성숙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어머니는 사회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야수와 같은 남편에 대한 공포와 궁핍한 삶에 찌든 중년을 넘어선 여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아들을 통해서, 젊은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점차로 그녀는 아들 파벨의 혁명운동에 동조할 뿐만 아니라 지난 세월의 공포. 순종. 희생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지게 된다.
소설은 비록 혁명의 실패와 혁명적 기운의 좌절로 흐르고 있지만, 내면적으로 독자들은 혁명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한다. 파벨과 그의 동료들은 어머니를 통해서 인류애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바로 이것이 어머니의 완벽한 성공이며, 그 바탕은 고리키적 낭만주의와 리얼리즘의 문학적 조화에 있는 것이다. 자식이 체포된 뒤, 법정에서 자식의 정당함을 호소하다가 체포되어, '천벌을 받을 놈들, 피바다를 이룬다 해도 진실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고 절규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암울한 시절 우리의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민주화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이 절대권력에 대해 보인 분노한 모습이 떠오른다. 이 작품은 푸드후킨 감독이 대담하게 각색 영화화하여, 무성 영화사상 명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기도 한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책은 작가가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사명을 띠고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쓴 작품으로, 러시아 국내에서 발표된 즉시 압수되었다. 이 소설은 당시 러시아의 혁명적 상황에서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어, 할 수 없이 작가는 그 후 재판 부분을 비롯한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간행해야 했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필독서
이 소설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고전적 작품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근로자 대중과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이 이러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작가가 당시 러시아의 현실에 실재하고 잇는 혁명가들의 여러 가지 특징을 발전적으로 보편화시켜, 완전한 혁명가의 한 전형을 창조하고 혁명투쟁의 영웅성과 휴머니즘을 유감없이 보여준 데 있다.
역사발전 주체로서의 노동자
또한 이 작품 이전에도 노동계급을 등장시킨 작품은 많이 있었으나 이들 작품에서는 노동계급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희생물로서 동정의 대상으로만 묘사되었을 뿐,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불의와 맞서 싸우는, 역사발전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을 묘사하는 데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여기에 바로 역사를 정확히 관통하는 작가로서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것이다. 확실히 이 작품에 형상화된 프롤레타리아는 종전의 작품에서 보아오던 무기력한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고달픈가를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고 자각하며 역사의 변혁을 꿈꾸는 능동적인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이 작품의 흐름이 주인공의 어머니의 의식변화 과정에 맞추어져 있듯이, 인간은 변할 수 있는 존재 로서 역사변혁의 주역이 될 수 있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자연 발생적인 운동이 목적의식적인 조직적 투쟁으로 전개되어가는 과정도 묘사하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효시
이 모두는 작가가, 프롤레타리아 자신이 역사의 합법칙적인 발전을 이루어나가는 주체임을 확신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의 파켈이나 펠라게아와 같은 인물은 그다지 대중적이라 할 수는 없었으나, 이후 1917년의 10월혁명을 가능케 한 역사의 흐름을 포착하여 당대의 본질에 접근해간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고리키의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는 확인된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당대 문예 비평가로부터 고리키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리게끔 하는 것아 아닐까? 톨스토이는 고리키를 두고 고전문학과 소비에트 문학의 살아있는 다리 라고 부른 바 있는데, 이는 고리키가 러시아 고전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소비에트 문학의 개척자라는 뜻이다. 레닌도 전세계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탁월한 예술적 재능의 소유자 라고 격찬한 바 있다. 세계문학계에 지각변동을 줄 만큼 그의 어머니는 20세기 세계문학사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