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돈 키호테'(Don Quixote) -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
동시대의 작가 셰익스피어가 우유부단한 햄릿형의 인물을 창조한 반면, 세르반테스는 저돌적인 돈 키호테형 적 인간을 그려냄으로써, 이후 문학사에 전형적인 두 성격 유형을 각인시킨 작품, 중세 기사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대착오적 편력기사의 모험과 좌절,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초래된 가치질서의 위기와 변화에 대응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돈 키호테의 모험과 좌절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체험하는 인문주의적 인간의 자기발견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생애와 작품활동
하나님이 인간의 오만과 타락에 대해 이를 심판하려 하자,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래도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쓰지 않았습니까 라고 항변하면서 인간이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이 작품을 꼽았다 한다. 스페인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가족과 함께 각지를 전전하며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길가에 떨어진 종이에 글자가 적혀 있으면 반드시 주워서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한다. 22세 때 이탈리아로 가서 추기경의 시중을 들었으며, 이때 르네상스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음해에는 세계 3대해전 중의 하나인 터키와의 레판토 해전에 참가하였다. 이 해전은 그야말로 처절하여 그 자신도 훗날 역사상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은 기념할 만한 숭고한 싸움 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전투에서 가슴에 총상을 두 번 입었고, 세번째 입은 총상으로 평생 왼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레판토의 외팔이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바른손의 명예를 앙양하기 위해 왼손의 자유를 잃었다' 며 끝까지 이 명예로운 부상을 자랑으로 여겼다. 실제로 군인은 도망쳐서 무사한 것보다 전장에서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자세였다. 이 해전에서 보여준 그의 용감성은 주위를 감동시켰음이 그의 상관의 증언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양한 후에 동생과 함께 전공을 세우고 스페인으로 귀환하던 중 터키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알제리에서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는 노예생활 중에도 절망하지 않고 탈출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시도하였다. 도중에 네 번의 탈출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여 숨긴 자는 사형에 처한다 는 방까지 붙을 정도였다. 친구의 화를 염려한 그는 자진 출두하여 친구의 무죄를 주장하자, 성주도 그의 당당함에 감복하여 관대하게 대했다. 포로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던 그는 잔인한 성격의 성주까지도 반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33세 때 특사가 되어 11년만에 스페인으로 귀국하였지만, 여기서 세르반테스의 영웅적 시기는 막을 내린다. 귀국 후 그는 문필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몇 편의 작품을 썼지만 주목받지는 못했고, 1584년에는 18년 연하의 처녀와 결혼하여 그녀의 지참금으로 잠시 안정된 생활을 하였지만, 부친의 죽음으로 가족을 부양하게 되어, 1587년 펜을 버리고 세빌랴로 가서 무적함대의 식량징발계원이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기도 하고 세빌랴에서 감옥생활도 하는 등 굴욕의 세월을 보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그의 이름을 영원케 한 돈 키호테 (원제목: 재기발랄한 향사 돈 키호테 데 라 만차)가 탄생했다. 본래 그는 16세기 서구사회를 휩쓸던 중세 기사들의 허황된 무협 연애담을 희화화하고 조롱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즉, 그는 기사소설을 사실로 믿고 날뛰던 당시 풍조가 사실과 거짓을 뒤섞고 왜곡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포함해 이런 환상에 빠져 있는 무리들을 진실로 돌아오도록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출판과 함께 큰 호평을 받아 판을 거듭했지만 판권을 싼 값으로 팔아넘겼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주로 금전문제로 여러가지 의혹을 받으면서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년의 그의 문학활동은 매우 활발하였다. 12편의 중. 단편을 모은 모범소설집 과 1615년에는 돈 키호테 2부를 출판한 뒤, 1616년 4월 23일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에 별세했다.
인간정신의 두 유형: 돈 키호테와 햄릿형
투르게네프의 분류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동시대 작가로, 셰익스피어는 큰 고생을 하지 않고서도 비극적 작품을 썼다면, 세르반테스는 감옥생활과 노예생활을 하는 등 비극적 삶을 살았지만 낙천적인 작품을 남겨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작가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두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햄릿과 돈 키호테 에서 제시되는 우유부단한 사색형과 저돌저긴 행동형 의 대명사로, 이후 문학사에 뚜렷한 자리 매김을 한다. 깊은 철학적인 사색과 비상한 관찰력으로 당대 지식인의 양심을 대변하고 있던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1818-1883)는 가장 새로운 영혼의 가장 뛰어난 작품 을 이미 250년 전에 쓴 위대한 두 작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그리고 그들의 조국인 영국과 스페인을 찬양하면서 두 작품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하였다. 오늘날 인간정신의 두 유형으로 일컬어지는 햄릿형 과 돈 키호테 는 그의 분석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돈 키호테형
두 작품은 우연하게도 17세기 초기에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다. 돈 키호테는 철저한 이상주의자로 그는 이상을 위하여 모든 것을 걸거나 생명을 바칠 각오마저 되어 있으며, 자신의 생명을 이상의 구현, 진리의 확립, 지상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자기자신만을 위해 살며 자신의 일을 걱정한다는 것을 그에게는 치욕이다. 그는 다만 자기자신 이외의 것을 위해 산다. 그는 자기의 이웃과 형제들을 위해 살며 악을 근절시키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에고이즘 이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그 자신은 바로 자기희생의 화신인 것이다. 그는 이처럼 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코 주저하는 법이 없이 저돌적으로 일을 추진한다. 그는 겸허한 마음과 위대한 영혼을 지닌 용감한 인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의 투철한 신념은 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그의 의지는 불굴의 의지,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목표에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추구해나가는 그의 자세에서 우리는 그의 사상이 단조롭다는 것과 그가 지닌 지혜의 편협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고목과 같이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자신의 목표를 쉽게 바꾸지도 않는다. 여기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보다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키호티즘 (quixotism)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햄릿형
반면 햄릿은 에고이즘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햄릿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며 따라서 그는 철저한 에고이스트다. 이는 햄릿의 사색이 그 해답을 얻지 못한 채, 그가 자기 영혼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삶의 의의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그는 회의론자이며,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자기자신의 문제로 가득 차 있다.햄릿은 과장될 정도로 자신을 힐책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하고 자기 내부를 주시하는 것을 큰 만족으로 여긴다. 부왕이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하나 햄릿은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며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구실을 찾는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세상에는 햄릿형의 인간이 존재하며, 이런 유형의 인간은 사색적이고 뛰어난 지각력과 나아가서는 깊은 통찰력을 지니지만, 동시에 실천력의 결여로 인해 세상과 민중에 대해서는 기여하는 바가 하나도 없다. 반면 얼마쯤은 광인이라 할 수 있는 돈키호테형의 인간은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하며, 때로는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실재하지 않는 경우조차 있지만, 이들은 그 목표 이외의 것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들이 인류 역사발전에 기여하고 민중을 이끌어간다고 투르게네프는 생각했다.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면 햄릿형은 자연의 근원을 이루는 구심력(에고이즘)을 대변해주는 인물로 자기자신을 중심체로 간주하며 자기 주변의 다른 생물체는 다만 자기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구심력 없이 자연은 존재할 수 없듯이 자연은 또 하나의 힘인 원심력이 없이는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원심력이란 모든 생물체는 다만 자기 이외의 다른 개체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법칙인데, 복종과 헌신의 이 원심력에 대해서 우리는 위에서 본 것처럼 돈 키호테형의 인물이 이 원칙을 표한다. 침체와 활동, 보수성과 진보성으로 대변될 수 있는 각기 상이한 이 두힘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을 이루는 힘이다. 이 두 힘은 우리에게 꽃나무가 꽃을 피우는 원리를 설명해주며, 민중의 위대한 힘이 뻗어가는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주요 등장인물
돈 키호테는 허황된 기사도 정신을 따르는 인간의 부정에 대한 저항과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돈 키호테 : 라 만차 지방의 귀족으로 기사도 이야기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상인 체로,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방랑의 길을 떠나 황당무계한 일을 일으키는 이상적이고 저돌적인 인물. 산초 : 돈 키호테를 보좌하고 다니며, 주인을 궁지에 몰아넣거나 희망을 주는 현실주의적 인물. 둘시네아 델 토보소 : 돈 키호테가 토보소에 산다고 믿고 있는 이상적이고 영원한 여인. 둘시네아는 달콤하다 의 뜻이다.
작품의 주요내용
돈 키호테 는 총 52장으로 되어 있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나온 속편은 총 74장으로 이루어진, 실로 방대한 분량을 가지고 있으며, 등장인물만도 600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은 슬픈 용모의 편력기사 돈 키호테와 그의 시종인 산초 판사, 돈 키호테가 동경하는 구원의 여인인 둘시네아다. 돈 키호테 는 주인공 돈 키호테에 대한 소개로부터 비롯된다. 라 만차 지방의 시골귀족인 알론소 엘 부에노가 기사소설을 지나치게 탐독한 나머지 제정신을 잃게 된다. 그는 불의와 악에 대항하여 싸우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국가에 봉사하고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자 결심한다. 그는 옛날의 훌륭한 기사들의 흉내를 내어 자신이 사랑하던 한 마을 처녀를 둘시네아 델토보소라는 숭배의 여인으로 명명하고, 말라빠진 말은 로시난데라고 이름짓고, 헛간에서 옛날의 갑옷과 투구를 꺼내 손질한 후 우스꽝스런 모습의 기사 돈 키호테 가되어 7월의 어느 아침, 집을 나서 벌판으로 향한다. 해질 무렵에 한 여관에 도착하여 여관을 성으로, 여관 주인을 성주로 생각하는 기사에게, 여관주인은 편력기사가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해 충고해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노상에서 몇 가지 사건을 접하고, 결국 기사의 첫번째 가출은 한 무리의 상인들에게서 몽둥이 찜질을 다하는 것으로 끝난다. 집에 돌아와 몇몇 마을 사람들(신부, 이발사 등)의 치료를 받은 후에 두번째의 가출을 한다.
이번에는 현실주의자인 산초 판사를 시종으로 하여 두번째 편력행각에 나서는데 여기서부터 이 소설을 큰 변화를 가져온다. 돈 키호테로부터 섬의 총독 자리를 약속받은 산초는 외모와 정신적인 면에서 그의 주인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두 사람은 여러가지 사건에 접하게 되는데, 풍차의 무리들을 만나자 거인들이라면서 창을 겨누고, 로시난테와 함께 돌진하여 때마침 돌기 시작한 풍차에 부딪쳐 쓰러지고 만다. 산초가 다가오자 저것은 요술사가 우리의 승리를 방해하기 위해서 거인을 풍차로 둔갑시킨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는 또 양떼를 교전중인 군대로 생각하고 덤비는가하면,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한편, 산초 판사는 주인과는 반대로 어떠한 경우에도 현실과의 타협을 잊지 않으며, 게으르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주인에게는 충실하다. 돈 키호테는 그 자신이 흠모해 마지않는 기사 아마디스를 모방하여 둘시네아를 위한 고행의 표시로 시에라모레나에서 머무르는 등 크고 작은 모험을 벌인다. 결국 그를 고향으로 데려오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하던 신부와 이발사의 계책으로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된다.
돈 키호테 2부는 주인공의 세번째 출정으로 시작된다. 돈 키호테는 같은 마을 사람인 학사 삼손 카르라스코를 거울의 기사 로 착각하여 혼을 내주고, 사자들에게 대항하기도 하며, 몬테시노스의 동굴을 방문하여 무너뜨리려 하는 등 몇몇 사건에 접하다가 공작의 궁전에 당도하게 된다. 여기에서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클라빌레뇨라는 목마에 관련된 사건을 비롯하여, 산초가 바라타리아 섬의 총독에 임명되는 등의 일을 겪게 된다. 돈 키호테는 바르셀로나로 가서 이번에는 백월의 기사 를 가장한 카르라스코와 겨루다가 패배를 맛본 후, 고향으로 되돌아가라는 그의 명령에 굴복하고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돈 키호테와 산초는 숱한 우롱과 조소로 슬프기만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기사 돈 키호테는 드디어 병상에 눕게 되었고 겨우 현실로 돌아와 본래의 이름인 알론소 엘 부에노의 이름을 되찾게 된다.
그는 자신의 우매한 나날들을 성직자에게 고백하며 참회를 하게 된다. 참다운 기사도 정신을 꿈꾸었던 재기의 선비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러나 끈질기게 돈 키호테와 행동을 함께해온 현실주의자 산초는 이번에는 거꾸로 주인을 격려하는 돈 키호테적인 인물로 변하여 자기들은 다시 기사의 편력길에 오르겠다고 하자 이 모든 편력은 영원히 다 지나가버렸어,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구나. 난 이제 돈 키호테가 아니야. 난 사람들이 한번도 그렇게 불러준 적이 없는 선량한 알론소로 되돌아온 것이야. 알론소 엘 부에노로 말이야 하고 말한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세르반테스가 이 작품을 쓸 무렵의 스페인은 세계 도처에 대 식민지를 건설했다가 1588년 무적함대 가 영국군에 격파당하는 바람에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스페인 왕정은 계속 전쟁준비를 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여 원성을 사는 등 사회가 불안했는데, 이것이 돈 키호테 탄생의 배경이 된다. 당시 부조리를 고발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 돈 키호테를 매우 우스꽝스러운 인물로묘사한 것은 왕정으로부터 정치적 압력을 피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을 것이다.
시대풍자
세르반테스는 항간에 풍미하고 있는 기사도 이야기의 이기를 누르기 위해 소설을 쓴다 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그는 처음에 당시 스페인에 크게 유행했던 기사도 이야기의 패러디를 쓰려고 했다. 그러나 감흥이 솟는 대로 일정한 계획도 없이 써나가는 동안 처음의 의도를 잊고 돈 키호테와 산초의 성격을 창조한다는 새로운 주제에 열중, 마침내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대작을 썼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확실히 첫번째 편력을 묘사한 처음의 6장은 기사도 이야기의 패러디라는 느낌이 오나, 산초 판사와 둘시네아가 등장하는 두번째 편력부터는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대화를 중심으로 하여 단순한 패러디 이상의 폭과 깊이가 더해지며 극히 전위적인 근대소설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어디까지나 자기 이상에 충실하려는 돈 키호테와 현실적으로 확인되는 것만 믿으려는 우직한 산초 판사는 세르반테스가 이 작품에서 창조한 두 사람의 전형적 인물로, 돈 키호테 의 재미는 두 사람이 되풀이하며 벌이는 대조적인 행동의 묘미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희극적인 인물 돈 키호테는 언젠가 수심어린 얼굴의 기사 로 바뀌고 최후에는 작가인 세르반테스의 고결한 뜻을 지니면서도 고난을 짊어진 생애와 겹쳐져우리들을 감동케 한다.
근대소설의 효시
이 소설 속의 대립적인 두 인물,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이상과 현실, 정신과 물질, 환상과 사실의 충돌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두 인물은 서로가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의지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중의 두 사람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성격을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여행중에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돈 키호테가 차츰 현실적인 세계로 접근하는 반면, 산초 판사는 도리어 돈 키호테적인 세계관을 동경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이야기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패러디와 시문과 유머의 바닥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당시까지의 줄거리 중심의 이야기를 부정하고 인물의 창조나 성격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에서 이 소설을 근대 소설의 효시로 불린다. 즉 이 작품은 운문 중심 문학에서 산문 중심으로 전환시켜 산문 중심적 근대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 초라한 갑옷을 입은 채 로시난테라는 앙상한 말을 타고, 시종인 산초와 함께 불의와 싸우기 위해 먼길을 떠나는 돈 키호테, 자신의 과오를 적당히 합리화해 잊어버리고 항상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는 낙천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돈 키호테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 인류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