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오이디푸스 왕(Oedipus Tyrannus) -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정신분석 용어의 원산지가 된 이 작품은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에 의해 씌어진 서양문학의 대표적인 분석극으로서, 친부살해, 어머니와의 결혼 등을 소재로 한 운명비극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힘을 초월해 있는 운명의 힘과 그 장난, 자신의 파멸을 예견하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오이디푸스의 확고한 의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그의 자세를 볼 수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아테네 교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29세 때 처음으로 비극경연대회에 나가 우승한 이래, 18번 우승을 차지하고 2등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한다. 그는 처음으로 제3의 배우를 사용했고, 무대배경을 개량하였으며, 합창단의 구성원 수를 12명에서 15명으로 늘리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용모와 재능은 물론,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로 아테네의 우상이었으며, 정치가로서도 재무장관 등의 고위직을 지내고, 만년에는 신관까지 지낸 덕망있고 행복한 생애를 보냈다. 그가 죽은 다음 아테네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의 비극작가로서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가를 알 수 있다. 기원전 480년 적군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에서, 소년 소포클레스는 소년 합창단을 지휘하였다. 이때 아이스킬로스는 이 전쟁에 병사로서 직접 참전하였고, 에우리피데스는 그리스 군이 승리를 쟁취하던 날 태어났다 한다. 죽기 직전인 90세까지 창작활동을 계속하여 총 120여 편의 작품을 썼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7편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식어버린 남편의 사랑을 되돌리려다 반대로 남편을 죽이게 되자 자신도 목숨을 끊는 트라키스의 여인들, 겉보기에는 행복한 왕이 진실을 모르는 채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의 남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파멸하는 오이디푸스 왕, 죽음을 당한 아버지를 위해 동생과 함께 복수를 하는 엘렉트라 외에도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이 있다. 이중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등은 사실상 그의 3부작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축복받은 신의 총아 소포클레스는 인간 고뇌의 극한까지 묘사하여, 온화하고 명랑한 인물에게서 가장 순수한 비극성이 생긴다는 역설을 성립시켰다. 소포클레스는 죽음과 고뇌는 인간존재의 실상이고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죄없는 사람들의 고뇌를 그대로 묘사하였다. 주인공은 결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타협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대결하며, 굴욕적인 삶보다는 죽음과 파멸을 선택한다. 이처럼 강하고도 고귀한 인간이 고뇌하는 데에 비극적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있다. 극의 줄거리는 신화 그대로여서 관객은 사건의 진전과 결말을 알고 있다. 앞일을 모르고 있는 극중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이 진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과 대조를 이루어 극적 효과를 크게 하는 수법은 소포클레스적인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우리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통해 오이디푸스 왕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에 친숙하고, 그의 제자인 C. G. 융으로 인해 아가멤논의 딸인 엘렉트라보다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물론 이 말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하는 오이디푸스 왕과 엘렉트라의 비극적 운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왕이 생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 근거한 것으로, 남자아이는 특히 3~5세에 오이디푸스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적의를 품고 어머니에게는 애정을 구하고자 하는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지금까지 꿈속에서 자기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한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라는 유명한 대사는 프로이트의 이론보다 2천 년이나 앞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성적 욕망이 일어나는 시기를, 오이디푸스기 또는 남근기라고 한다. 아버지에게 적의를 품기 때문에 남자아이는 그 보복으로 거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를 갖는다고 한다. 이 공포가 계기가 되어 아버지처럼 되려고 하는 동일자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극복되고, 점차 잠재기로 이행되어간다. 또한 사춘기에 이르면 성적 충동이 강해지고 오이디푸스적 욕망은 되살아나는데, 이 욕망은 다른 이성에게로 옮겨져 극복된다.
프로이트는 도스트예프스키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강하게 느꼈던 듯,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친이 마을 사람들에게 죽자,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 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강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은근히 부친의 사망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화됐기 때문에, 자기가 실제로 범인인 양 착각하게 되어, 훗날 그에게 나타난 낭비벽과 도박병 등의 이상한 행동양식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스탕달 역시 이런 경향이 농후했는데 어머니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의 키스를 방해하러 올 때는 몹시 얄미웠다 는 그의 자서전의 한 구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엘렉트라 콤플렉스
여자아이는 반대로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에게 애정을 가지는 성향을 띠게 된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 후 귀국하여 그의 아내에게 살해되는데, 그의 딸인 엘렉트라가 남동생과 협력하여 모친을 죽이고 복수한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끌어내어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융이 명명하였다.
주요 등장인물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한 운명의 힘 앞에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무력한가, 또 인간의 욕망. 공명심. 오만이 얼마나 허망하고 보잘것없는가를 생각케 하는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오이디푸스 : 버려진 자식으로 자라나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자신의 눈을 뽑은 뒤 방랑의 길을 떠나는 비극의 주인공. 이오카스테 : 불길한 예언을 지니고 태어난 아들을 버리고,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아들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어 자살한다. 라이오스 :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로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오이디푸스의 지팡이에 맞아 죽게 되는 인물.
작품의 주요내용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는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아이가 태어나자 하인에게 명령하여 못으로 아이의 발꿈치를 뚫어 키타이론 산에 버리게 한다. 이로 인해 오이디푸스(부어오른 발)란 말이 생겼다. 하인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맡겼고, 양치기는 왕자가 없던 코린토스 왕에게 넘겼다. 그곳 왕가에서 왕자로 성장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어느 연회에서 그가 왕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진실을 알기 위해 델포이를 방문한다. 그는 똑같은 내용의 신탁을 듣고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결코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방랑길을 떠난다. 도중에 어느 삼거리에서 낯선 노인 일행과 싸우게 되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인다. 그런데 그가 죽인 노인이 그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였다. 그가 도착한 테베에서는 괴물 스핑크스가 버티고 있어, 스핑크스가 제시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의 먹이가 되었다. 수수께끼란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약한 것이 무엇이냐 였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인간으로 문제를 풀자 스핑크스는 자살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위와 왕비를 얻는다. 생모인 이오카스테를 왕비로 맞이하여 안티고네 등 4명의 아이까지 낳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이 시점에서 시작되어 과거의 무서운 진실의 폭로를 향하여 전개된다. 테베를 휩쓸고 있는 역병은 선왕을 살해한 자를 벌하여야 없어진다는 신탁에 따라, 살해자 수사가 급선무가 된다. 선왕 라이오스가 살해되었을 당시 곁에 있던 심부름꾼의 말과, 테베에서 가장 믿을 만한 예언자의 말을 들으면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가 델포이에서 들었던 신탁이 자신이 예전에 들었던 신탁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이디푸스가 더 이상 비밀을 캐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비밀을 한겹 한겹 벗겨나가고 결국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게 된다. 진실이 밝혀지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한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내로 맞이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처남이자 삼촌인 크레온을 섭정으로 남기고,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의 두 딸의 안내를 받아 방랑의 길을 떠난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과실에 의해서 파멸하고 마는데, 비록 인간적인 결함을 갖고 있긴 하나, 대체로 영웅적이고 고상한 동기에 의하여 움직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포클레스는 이상적 인 인간을, 에우리피데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린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가 그렇게 말한 까닭도 필경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 극의 대화들은 단순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그의 이상주의적 주인공들의 성격에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 나오는 서정적 부분들은 아이스킬로스의 그것들만큼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매우 우아하고 장엄한 편이다. 서양문학의 대표적인 분석극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친부살해와 어머니와의 결혼이라는 극의 중요한 사건들은 극이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고, 극 자체는 단순히 비극적 분석 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분석은 극의 서두에서 인자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던 오이디푸스가 거리에서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과 동일인이고, 오이디푸스가 아내라고 믿었던 이오카스테가 다름아닌 그의 어머니이고, 생부가 살해되던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가 오이디푸스를 갖다버린 인물이며, 선왕의 살인범을 찾아내겠다는 오이디푸스의 성실한 노력이 오히려 그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과 같은 비극적 아이러니 를 통하여 관중이나 독자를 숨막히게 하고, 짧은 시간에 극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고조시키는 분석극 특유의 효과를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흔히 그리스 비극을 운명비극이라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결코 운명의 단순한 제물은 아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맹목적인 생존을 위하여 인간의 존엄을 포기할 수 있었다면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파멸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비극이란 신 또는 외부로부터의 의지와, 인간 또는 내부로부터의 의지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절망적이고 가망없는 투쟁 속에서도 타협을 거부하고, 파멸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위대함과 존엄을 지키고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