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혼돈씨의 생활법 - 천지
자공이 남쪽의 초나라를 노닐다가 진나라로 돌아와 한음*을 지날 때, 한 노인이 채소밭에 두렁을 내는 것을 보았다. 굴을 뚫어 우물로 들어갔다가 물독을 안고 나와 밭에 부었다. 끙끙대며 힘을 많이 쓰기는 하나 결과는 보잘것이 없었다. 자공이 말했다.
"여기 하루에 백 두렁을 적실 수 있는 기계가 있소. 힘을 쓰는 것은 매우 적으나 공을 보는 것은 많은데, 노인장께선 이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포자*가 그를 쳐다보고 물었다. "어떻게?" 자공이 대답했다. "나무를 깎아 기계를 만들되,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게 합니다. 물이 끄는 것을 뽑아올리는 듯하고, 빠르기가 끊는 물 같습니다. 그 이름을 고라고 하지요."
포자는 성난 듯 얼굴빛을 바꾸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리 스승에게 들으니 '기계가 있는 자는 반드시 그런 일이 있고, 그런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런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이 가슴속에 있으면 순백을 갖추지 못한다. 순백을 갖추지 못하면 잡념이 생겨 안정이 되지 않고, 잡념이 생겨 안정되지 않는 자는 도를 받아들일 곳이 없다.' 했소. 내 이를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부끄러움을 사지 않기 위해서요."
만연해진 자공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못하자 잠시 후 포자가 말했다.
"당신은 무얼 하는 사람이오?" 자공이 대답했다. "공구의 제자입니다." 포자가 말했다. "당신은 박학으로 거룩한 체하고, 탄식하는 말로 뭇사람들을 덮으며, 외줄로 슬프게 노래하며 그 명성을 천하에 파는 자가 아니오? 당신은 이제 당신의 신기를 잊고, 당신의 형해를 버리는 것이 어떻소? 당신 몸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리겠소? 내 일을 방해하지 말고 그만 가시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빛을 잃었다. 어쩔 줄 모르고 30리를 간 뒤에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아까 그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님은 무슨 까닭으로 그를 보고 난 후 얼굴이 변하고 얼굴빛을 잃어, 종일토록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십니까?"
자공이 말했다.
"처음엔 나는 천하에 오직 한 사람뿐인 줄로 알았다. 그런 사람이 또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내가 스승께 듣기로는 '일은 옳은 것을 구하고, 공은 이룩됨을 구하라. 힘을 적게 들여 많은 공을 보는 것이 성인의 도이다.'라고 하셨다. 이제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도를 지닌 자는 덕이 온전하고, 덕이 온전한 자는 얼굴이 온전하며, 얼굴이 온전한 자는 신이 온전하다. 즉 신이 온전한 자가 성인의 도다. 삶을 의지하여 백성들과 함께 걸어가나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말로는 그 마음씀을 헤아리지 못한다. 분명 그자의 마음에는 공리심과 작위가 없다. 그와 같은 사람은 마음에 없으면 가지 않고, 마음에 없으면 하지 않는다. 비록 온 천하가 옳다고 칭찬하며 취하려는 말이라도 오만하여 돌아보지 않고, 온 천하가 그 말이 잘못이라 비난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하의 비난이나 칭찬이 유익하거나 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전덕의 사람이라 한다면 나는 풍파의 백성이라 할 것이다."
노나라에 돌아와 공자에게 아뢰었더니 공자는 말했다.
"그는 혼돈씨*의 길에 가탁해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며, 그 안은 다스리지만 밖은 다스리지 못한다. 무릇 명백하여 깨끗하고 무위로 순박해지며, 자기 정신으로 세속을 노니는 사람이었다면 어찌 네가 놀랄 수 있겠느냐? 혼돈씨의 길이라면 나나 네가 아는 것으로 어찌 미칠 수 있겠느냐?"
* 한음 : 한수의 남쪽. 강물은 남쪽을 음, 북쪽을 양이라고 한다. * 포자 : 밭을 관리하는 사람. * 혼돈씨 : 태고의 제왕. 무위로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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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자공이 초나라 여행을 마치고 진나라로 가던 중이었다. 한수 남쪽에 이르러서 보니 한 노인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밭에 파둔 우물의 밑바닥에까지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올라와 밭에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했지만 좀처럼 표가 나지 않자, 보다 못한 자공이 말을 건넸다.
"노인장, 힘드시지 않습니까? 이런 수고를 하시지 않더라도 하루에 백 두렁의 밭을 적실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그걸 쓰시면 힘들이지 않고도 일을 빨리 할 수 있으니 그걸 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오?" 노인은 얼굴을 들며 물었다. "무자위(양수기)라는 것으로서, 통나무에 가로로 막대기를 걸친 뒤 앞쪽엔 두레박을, 뒤쪽 끝엔 무거운 돌을 매단 것입니다. 상하로 움직이기만 하면 마치 물을 빨아올리듯 길어올릴 수 있고, 끓어오르는 기세로 물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노인은 정색을 했으나 이윽고 가엾다는 듯 웃음을 띠며 말했다. "나는 스승님으로부터 이렇게 배웠소.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데서 작위가 생긴다. 작위가 생기면 어느덧 타고난 마음을 잃어버려 잡념이 끊이지 않는 법이고, 마음이 잡념으로 어지러워지면 도를 얻을 수 없다. '나 역시 무자위를 쓸 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거기까지 타락하고 싶지 않기에 쓰지 않을 뿐이오."
노인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 자공은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조금 뒤 노인이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노나라 공자의 제자입니다." "뭐, 공자라구? 그럼 당신도 박식을 자랑하고, 성인인 체하며 거만한 몸짓으로 세상 사람을 현혹시키고, 멋대로 비장한 소리로 이름을 팔며 돌아다니는 패겠군. 도라는 것은 말이오, 그런 슬기를 버리고 겉형식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으면 체득하지 못하는 거요. 천하와 국가를 논하는 틈틈이 조금은 자기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소? 일에 방해되니 그만 돌아가보시오."
자공은 완전히 기가 죽어 얼굴빛을 잃고 정신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30리를 걸어도 자기가 걷고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온 자공에게 제자가 물었다.
"그 노인이 어떤 분이기에 그토록 마음이 산란하셨습니까?" "나는 지금까지 천하에 우리 스승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없는 줄로 믿어왔는데, 그같이 훌륭한 노인이 계시는구나. 나는 스승님에게서 이렇게 배웠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을 성취하도록 해라. 행동하는 이상 최대의 효과를 올려라. 이것이 성인의 도란 것이다.' 그런데 성인의 도가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았다. 도를 따르는 자는 온전한 덕을 갖추게 된다. 온전한 덕이 갖춰지면 타고난 대로의 본성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러면 무심의 경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고, 이것을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성인의 도인 것이다. 그 노인처럼 무심의 경지에 달한 사람은 세속 안에 살고 있으나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날 때부터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작위도, 공리심도 없다. 언제나 자기의 본성에 따라 행동할 뿐, 세상의 칭찬이나 비난 따위에 일절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래야만 비로소 온전한 덕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 같은 존재는 동요해 마지않는 '풍파의 백성'밖에 안 된다. 정말 부끄럽구나."
노나라로 돌아온 자공은 즉시 공자에게 그 노인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공자는 자공을 타일렀다.
"그 노인은 태고의 득도자인 혼돈자로 자처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그는 도의 일면밖에 모르는 것 같다. 그러기에 마음의 순일을 지킬 줄은 알지만 현실 사회에 등을 돌리려 하는 것이다. 만일 그 노인이 참으로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여 날 때부터의 순박함을 지닌 채 세속에 동화되어 있었다면, 네 눈에 그것이 보일 리 만무다. 혼돈씨가 사는 방법은 나나 너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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