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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1부. 동, 서양 사상의 흐름과 고전
제1장 서양사상의 흐름과 고전 (2/2)
사회계약설과 계몽사상
경험론과 합리론은 대개 합리적인 개인만을 문제삼는 경향이 있었다. 반변에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계약설을 토대로 한근대시민사상이 대두되었다. 17, 8세기에 나타난 계몽주의 사상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는 근대 시민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홉스는 17세기 과학혁명의 정신을 그의 사상 속에 잘 반영시켰다. 근대시민사상에 사회계약설을 도입한 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극복하고 모두의 생명보존을 위한 평화상태를 창출하기 위해 국가를 성립시킨다고 생각했다. 홉스는 이러한 진리관.인간관을 토대로하여 사회계약설이라는 근대시민윤리를 도출해냈다. 그는 사회구성원들이 투쟁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자연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공공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합의나 계약에 의한 규범을 만들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홉스의 사상은 그의 <리바이어던>에 잘 나타나 있다.
명예혁명을 전후해 살았던 로크는 영국의 경험론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시민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정부론>을 저술했다. 로크는 이 책에서 정치사회의 정립이 각자의 생명.자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개인들의 사회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을 밝히고, 법치국가성.대의제.권력분립.입법권 우위.저항권을 주창하고 있다. 결국 자연상태 및 사회계약을 전제로 한 점에서는 홉스와 같았지만 그 결론은 정반대였다. 또 다른 계몽사상가인 루소는 당시대의 이성존중의 풍조에 반대하여 이성보다 감정과 본능을 중시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루소는<사회계약론>의 서두에서 사람은 태어날 때 자유로우나 현재는 어디서든지 쇠사슬에 매어사는 것을 본다 는 말로 필요악으로서의 사회를 논하였다. 루소는 근본적으로 로크의 사회계약설에 동의하였으나, 대의제나 다수결에 관해서는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의 성서라 불리며, 자유.평등.박해 의 표어도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당시 많은 지식인들의 협동작업으로서 혁명 전 프랑스 사회를 과감하게 비판한 획기적인 업적이 <백과사전>의 발간이다. 디드로를 중심으로 편찬된 이 방대한 사전은, 전통적인 권위와 사회악에 도전하여 계몽사상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었고, 사회진보를 위한 최초의 백과사전이었다.
이 당시 역사학의 발전도 주목할 만한데, 이탈리아 출신의 비코는 <신학문의 원리>에서 역사의 순환성 을 강조하면서, 역사과학의 확립을 제창했다. 영국의 기번은 이교적 문명 과 크리스트교적 야만 을 비교하면서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저술했다. 18세기의 또하나의 업적은 과학적 연구방법을 인간과 사회현상에서 적용하여, 정치학.경제학.인류학 등 사회과학이 주목할만한 발전을 했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옹호하였고, 이탈리아의 법학자 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에서 범죄를 사회계약의 위반으로 보고 그 예방수단으로서의 교육.형의 신속 등을 주장하였으나, 후에 중대한 오류도 지적되었다. 프랑스의 귀족출신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3권분립을 제창하였다. 근대후기 18, 9세기에 전개된 사상으로는 칸트를 중심으로 한 독일의 관념론과 벤담, 밀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공리주의, 그리고 콩트를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를 들 수 있다.
독일 관념론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주의를 잘 조화하면서 과학혁명의 성과를 철학적 사고에 적절히 편입시킨 인물은 근대 비판철학의 창시자라 할 칸트였다. 18세기 계몽사상의 마지막 대변자이며, 동시에 19세기 낭만주의 철학을 함께 종합한 그의 과학의 합리성, 인류를 향한 인도주의적 관심 등을 자신의 사상 속에 심화시켰고, 그의 주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철학적 사유의 발전에 새로운 장을 마련했으나 비판이 일자, 자신의 저작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 이를 재구성하여 새로 쓴 저작이 <형이상학 서설>이다. 독일의 관념론은 그후 피히테, 셀링으로 계승되어 헤겔에 의해 절정을 이룬다. 헤겔은 개인의 인격과 자율적 동기를 중요시하는 칸트와는 달리 개인과 국가성원 전체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속에서 드러나 있는 윤리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자유가 함께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공동체를 인륜(Sittlichkeit)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런 공동체는 절대정신이정립(These), 반정립(Antithese), 종합(Synthese)의 단계를 거쳐 변증법적 원리에 의해 가족에서부터 시작해서 시민사회를 거쳐 국가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하였다. 그의 주저 <역사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인간 개개인의 생각이 발전하는 것처럼 인간정신의 구체적 구현인 역사도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공리주의
근대후기에 나타났던 또 다른 사상으로 공리주의를 들 수 있다. 독일에서 칸트, 헤겔에 의해 관념론에 제기되고 있을 무렵, 영국에서는 기술혁명으로 말미암아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편의를 누릴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라는 미명하에 무절제한 자유경쟁과 개인의 이윤추구현상이 대두되자,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문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나타난 사상이 공리주의 사상이다. 공리주의 사상에서 제시되는 인간관은,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쾌락 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곧 삶의 목적이 쾌락이나 행복의 추구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개인 모두가 저마다 자기의 쾌락이나 행복만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사회는 혼란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선한 행위란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쾌락과 행복을 주는 공리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여기서 공리주의 윤리설이 표방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라는 행위원칙이 도출되었다. 이러한 공리주의 윤리설의 인물로는 벤담과 밀을 들 수 있다. 벤담은 <법과 도덕의 원리>에서 쾌락이나 행복을 양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보고, 개인의 쾌락이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이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대시키게 된다는 양적 공리주의 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법률과 같은 외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벤담이 쾌락의 양을 중시한 것에 반해, 밀은 쾌락의 질을 중시하였다. 그는 쾌락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고, 쾌락을 고상한 정신적 쾌락과 저급한 육체적 쾌락으로 구분하였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만족스러운 바보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자유론>에서 밀은 사회주의적 자유주의체제를 옹호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적 개혁 및 경제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 찬성하지만 그가 자유에의 위협이라고 본 순수한 다수의 지배 에는 반대한다. 1830∼190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인류 역사상 과학기술의 전성시대로 특히 생물학과 의학의 발전은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생물학에서의 뉴턴을 표방했던 다윈의 진화론은 코페르니쿠스 이래 다시 한번 세계관을 바꾸었고, 그가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등의 이론은 19세기 이후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골턴의 우생학과 스펜서의 사회적 다위니즘에 영향을 주어, 인종차별과 제국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실증주의
한편, 19세기경에 프랑스에서는 콩트를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 사상이 등장한다. 과학의 실증성을 강조한 콩트는 특히 사회학을 인간들간의 사회적 관계를 연구하고,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역사의 과정 속에서 변해가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규정지음으로써 사회학의 독자성을 개척했다. <실증철학강의>에서 그는 역사적 단계에서의 인간정신, 즉 과학이 그 이전의 단계에 의존하여 진보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유물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합리론과 관념론에서와 같이 주지적이고 이성적인 윤리사상에 반대하고, 인간의 현실생활 자체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상으로는 유물론.생철학.실존주의 등을 들 수 있다. 유물론은 하나의 사상이라기보다는 당시의 경제.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대두된 사회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에 의해 체계화되었는데, 그들은 자연의 물질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즉, 인간은 노동이라는 자기창조적 활동을 통해 자기자신을 실현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물론적 인간관은 후에 사회주의적 인간관으로 전개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시한 마르크스는 19세기 이후 거의 모든 학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적 배경은 19세기의 3대 지적 유산인 헤겔을 비롯한 독일의 관념철학 , 스미스와 리카도의 영국 고전경제학 , 생시몽, 프리에, 오언의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이 근간을 이룬다. 마르크스는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 종합하여 <변증법적 유물론>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설> <계급투쟁론>과 <혁명론> 등으로 발전시켰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한 권의 책인 <자본론>에서 계급갈등.인간소외.실업.빈곤.공황 등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부가시켰다.
생철학
생철학은 계몽철학의 주지주의와 헤겔의 이성주의적 관점을 비판하고, 인간의 의지를 중시한 반 이성주의적 철학사조다. 생철학자들은 생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직관적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을 통하여 생의 의의.가치.본질을 파악하였다.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반이성적 사조에 포함되는 윤리사상으로서 과학과 기술문명 속에 비인간화되어가는 현실을 고발하고, 잃어버린 자아의 각성과 회복을 강조한 철학이다. 실존주의의 선구자로는 키에르케고르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불안과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참된 실존을 회복하기 위해, 신 앞에서 단독자 로서 인간의 주체적 결단을 강조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20세기 철학의 한 주류인 생철학의 완성자요, 현대 실존철학의 창시자의 한 사람인 니체가 쓴 것으로, 서구사상의 중심이던 크리스트교를 부인하고, 새로운 사상과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권력의지, 영원회귀사상, 초인사상의 개념을 도입했다.
실용주의
한편 미국에서는 경험론의 전통을 계승하여 일상생활에의 유용성을 중시한 실용주의가 등장하였다. 대표적 사상가로는 퍼스, 제임스, 듀이 등이 있는데, 특히 듀이는 <철학의 재건>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획득한 경험적 지식에 의해 미지의 세계를 실험하면서 도구적 실용주의를 강조하였다. 이 실용주의는 20세기 미국의 국가발전에 사상적 기초로 작용했다.
현대의 사상
현대사상의 두 주류는 다음과 같다. 1. 논리실증주의와 언어분석의 2가지를 주요분야로 하는 분석철학과 2. 실존주의와 현상학의 2가지를 주요분야로 하는 유럽 대륙철학이다. 논리실증주의는 러셀과 그의 제자 비트겐슈타인이 개척한 분야로, 어떤 가치나 이념은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과학적 영역에서 증명되지 않는 한 인정될 수 없다는 순수한 과학철학이다. 이러한 사상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사고>와 <철학적 성찰>에 잘 나타나 있다. 언어분석 운동은 무어와 비트겐슈타인의 산물인데, 무어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검토하는 일, 즉 동시대인들의 잘못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철학적으로 대중화했다. 1950∼60년대의 유럽 대륙철학은 현상학과 실존주의로 구별할 수 있지만 이 구분이 엄밀한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은 두 사조에 모두 관여했던 철학자이다. 철학으로 전향한 독일의 수학자 후설은 현상학의 아버지로, 그의 현상학적 방법은 경험의 직접성을 강조하며 경험을 존재나 인과적 영향에 대한 모든 가정에서 떼어내어 그 실제적인 내재적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후설을 지지한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존재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비로소 본래적인 실존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스승인 후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특정문제에 관해서는 견해를 달리했던 프랑스 현상학의 대가인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인간의 신체와 지각에 근거하여, 타인의 앎을 설명하려는 이론을 제시했다.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에 뿌리를 둔 유럽내륙의 실존주의는 2가지 주제, 즉 존재의 분석과 인간선택의 중심성에 대한 연구를 지향한다. 독일의 야스퍼스는 한계상황 속에서의 실존을 해명하고자 하였고, 인간상실을 파멸에 이르는 병 이라 규정지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의 불안에 관심을 가지고 실존은 본질에 선행하며 실존은 주체성이라고 주장했다. 가다머는 현대해석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진리와 방법>에서 이전까지의 해석학이 감정이입의 방식을 통해 주관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비판하고 객관성의 원리를 담보하여 했다. 베르그송은 생명과 물질에 대한 실증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존재하는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파악하려 한 <창조적 진화>를 저술했다. 화이트헤드는 아주 폭넓고 일반적인 이해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조망하려 했고, 그의 이해력은 위대한 3부작 <과학과 현대세계> <과정과 실재> <관념의 모험>이 지향한 목표였다. 이상의 철학분야 이외의 사상의 살펴보면 근대서구의 자본주의 정신을 예리하게 분석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 정신이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케인즈는 1930년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공황을 극복케 하고 자본주의의 낙관론을 제시한 반면, 2차대전 후 새로운 보수주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파멸을 자초할 것이라는 <예종에의 길>을 써서, 오늘날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을 반대하는 신보수주의자들에게 고전이 되고 있다. 또한 슘페터는 소위 슘페터식 자본주의 붕괴론으로 알려진 <자본주위.사회주의.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자본주의는 결국 사회주의를 후계자로 지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 미국의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롤스는 사회계약론을 보다 일반화시켜, 그 이론 속에 함축되어 있는 정의관의 종요한 구조적 특성을 밝혀냄으로써, 새로운 정의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정의론>에서 열어놓았다. 현대 인류학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레비-스트로스는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슬픈열대>에서 철학으로부터 인류학으로 이행한 저자의 지적 열정을 기술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제반문제에 대한 깊은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루마니아 태생의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인간의 삶이 경험하는 두 차원, 즉 성속을 준거로 하여 문화를 재서술하고 있다. 1984년, AIDS의 희생자 푸코는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등 초기의 그이 저작들에 관한 자신의 해설서인 <지식의 고고학>에서 역사서술의 시각, 주체의 문제 등 굵직한 문제를 다루었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적 사회분석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가장 창의적인 저작으로 평가되는 <옥중수고>를 저술했고, 스위스의 아동심리학자인 피아제는, 프로이트가 성인의 심리를 연구한 반면 어린이의 심리를 연구하여 어린이의 프로이트 라 불린다. 그는 <아동지능의 근원>을 남겼다. 뒤르켐은 사회학의 고전인 <자살론>에서 자살이라는 사회현상을 공식적 통계에 입각해 검토하고, 자살이 사회적 결과임을 밝혔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뉴턴적인 3차원 공간이 아닌 4차원의 시공의 연속개념을 제시하여, 뉴턴보다 더 광범위한 우주현상을 설명했고, <부분과 전체>의 저자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세계가 반드시 인과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불확정성의 원리 를 제시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인간의 행위를 경정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보면서, <꿈의 해석>에서 꿈의 해석을 무의식의 이해에 이르게 하는 왕도라고 하였다. 그의 제자인 융은 스승과 의견을 달리하여 <심리학과 종교>에서 종교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미국의 쿤은 과학발전의 역사가 과학자들의 수세기에 걸친 연구업적의 단순한 누적이 아니라, 과학발전이 어느 한순간 혁명적으로 일어난다는 과학의 본질에 대한 혁명적 서술을 담고 있는 <과학혁명의 구조>를 저술했다. 또한 현대 환경의 위기에 대응하는 요나스의 윤리학적 대응이 <책임의 원리>에 잘 나타나 있다.
이상으로 서양사상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조망해보았는데, 현대에 올수록 복잡다기하게 분기되고 있다. 여러 사상들이 통합될 전망은 없어 보인다. 과학적 기질과 형이상학적 기질은 여전히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실존주의의 주관성과 논리실증주의의 객관성은 아직도 경멸하면서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의 사상계에는 다양한 분열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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