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1 - 반덕진
제4장 서양문학
성(Das Schloss) -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문호의 한 사람인 카프카가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헤매는 주인공 K를 통해 단순히 차별받는 유태인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가는 인간존재의 암울함을 고발하고 있다. 즉, 측량사로서 채용되기 위한 K의 노력은 오직 제자리를 맴돌 뿐 아무런 진전이 없다. 현대사회의 소외외 부조리를 통해서 인간존재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대표적 현대소설이다.
* 생애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이자 20 세기 최고의 문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카프카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독일계 유태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럽의 진주 또는 황금의 도시 라고 불리어지는 프라하에도 유태인의 거주지인 게토라는 어두운 뒷골목은 있었다. 거기서 카프카는 태었났다. 그의 부친은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얼굴이 못생기고 괴팍한 카프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모친인 유리에는 유태교 목사집안의 경건한 부인이었다. 동생 둘은 요절했고 세 명의 누이동생은 그보다 오래 생존했으나,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개처럼 학살되었다. 카프카는 서구화한 유태인이 흔히 그러하듯이 독일어로 교육을 받았고, 프라하 대학에 법률공부를 하며 후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카프카 전집의 편집자가 된 막스 브로트와 친교를 맺게 된다. 졸업 후 노동재해보험회사에 취직하여 창작과 근무의 이중생활을 계속했다. 1908~1916년까지 여기에 근무하면서 대부분의 작품을 쓸 수 있었는데, (성)을 낳은 12페이지의 스케치인 (마을에서의 시련), 그리고 (성)과 함께 미완성의 3부작으로 되어버린 (심판) (아메리카), 또는 단편소설 (사형선고) (관찰) (소송) (변신) (유형지) (시골의사) 등이다.
1912~17년 사이에 그는 베를린 출신의 M. J라는 여자와 두번이나 약혼했다가 두 번 다 취소했다. 그후에 있었던 다른 소녀와의 약혼도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취소되었다. 그는 또 다른 여성과 일시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그 여성들은 아무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마지막 베를린 시절에 그는 도라 디맨트라는 유대교의 네덜란드 여자와 행복한 관계에 있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친인 목사가 카프카가 정통적인 유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결혼을 금했던 것이다. 1차세계대전 후의 가난으로 점점 심해진 폐결핵 때문에 1917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지요양을 했으나, 병세가 회복되기 어렵게 되자 1923년에 나머지 짧은 여생을 창작에 전념하고자 베를린으로 갔다. 그러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비엔나 교외의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 작품세계
단테나 스위프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곧 그의 생애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나 괴테와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작가론에서는 오히려 그의 생애에 대한 고찰이 많은 지면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에 작가가 처해 있던 개인적사회적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외모가 추하고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부친으로부터 받은 그에 대한 몰이해는 평생 동안 그를 괴롭혔고, 가장 가까운 것이 오히려 단절을 심각하게 할 뿐인 상황 이라고 말한 마르트 로베트 부인의 말마따나 그는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숙명적인 이방인 같은 상태에서 일찌감치 정신병에 걸려버렸다. 그리하여 어려서부터 고독감, 불만감, 억압감 같은 악감정에 시달리며 조숙 또는 민감해졌고, 드디어는 폐병에 걸려 고향과 가족과의 관계를 끊고 전지요양에 들어간다. 흔히 키에르케고르와 카프카를 정신적 쌍둥이라 하는데, 그들의 운명, 성격, 고독, 불운 그리고 인생이나 문학에 대한 관념이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중환자였다. 그는 막다른 상황에서의 돌파구로 결혼과 유부녀, 어린 소녀와의 연애를 시도해보았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거기다가 사회적으로 유태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대우는 그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했다. 당시 체코 거주 유태인들은 타고난 근면성으로 부를 축적, 프라하의 상류사회로 진출하지만, 체코 인들은 그들이 체코 어를 쓰지 않고 독일어를 쓰는 데 비해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 로 늘 적대시했고, 또 독일인들은 유태인들이 독일의 문화와 사회에 기생하는 부류라고 생각해 업신여겨왔다. 그러고 보면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고독은 아예 그의 일부였다. 성자들이 신앙 속에서 살듯이 그는 고독 속에서 살았고 드디어는 자기 작품만을 위해 자기 작품만을 먹고 살아가는 설화적인 동물의 생태를 가지게 되었고, 프루스트처럼 산 채로 그 속에 묻혔다. 단테가 14세기에 그랬듯이 카프카는 20세기를 철저히 체험한 작가였다.
* 작품의 주요내용
어느 겨울 흰눈이 내리는 날 밤에 K로 불리는 주인공은 한마을에 도착한다. 측량사로서 성에 초빙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성에서도, 그리고 성의 지배를 받는 마을에서도 측량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K가 성에 도전한 투쟁이 받아들여진 것만은 확실하고 K는 마을에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다음날부터 성에 도달하려는 K의 온갖 노력이 시작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예를 들면 성으로 가는 길이 성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 K에게 성으로부터 두 사람의 조수가 파견된다. 그러나 조수란 이름뿐이고 어리석은 수작을 부리는 감시원에 지나지 않는다. K가 호의를 갖고 희망을 걸어보는 성의 사자 바르나바스는 사실인즉 마을사람들로부터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K는 성의 관리 클람이 있는 술집 신사장에서 프리다를 애인으로 삼지만, 직속상관인 면장으로부터 이상스런 성의 지배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결국 국민학교의 사환직을 얻는다. 신사장의 앞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클람과 담판하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다음, 다른 조수들과 함께 프리다를 데리고 학교 건물로 이사온 K가 교원들과 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조수와 프리다의 관계에 의심쩍은 점이 있어서 무능한 조수 두 사람을 해고해버린다. K는 바라나바스의 집에 가서 자매인 아말리아가 성의 관리로부터 사랑을 강요당해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 집안이 몰락의 비운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자 그 사이에 프리다가 K를 배신하고조수 한 사람과 신사장으로 거처를 옮겨 버린다. 그날 밤 K는 성의 어느 관리로부터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는데, 잘못해서 비서 뷔르거의 방으로 들어갔을 뿐더러 피로한 나머지 이 비서가 도와주겠다는 제의까지도 놓쳐버린다. 이처첨 미완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브로트가 말하는 바에 의하여 주인공 K가 기진맥진하여 죽는 그 순간, 성으로부터 정식으로 마을에 거주하는 것은 안되지만 이 마을에서 잠정적으로 일하며 사는 것만은 허가해주겠다는 결정서를 전달받게 되었다고 한다.
*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의 무대가 된 프라하의 오세크 성(현재는 정신병원으로 쓰이고 있음)은 카프카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으로 어린 시절 카프카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찾아왔던 곳이며, 훗날 유태인으로서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슬픈 현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 (성)인 듯싶다. 여기에서 카프카는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헤매는 주인공 K를 통해 단순히 유태인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사회 속에서 철저히 소외되어가는 인간존재의 암울함을 고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와 같은 집단의 억압과 횡포에 대해 항거하면서 인간성 회복 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을 발표시킨 브로트에 의하면 주인공 K가 임종할 때에야 비로소 성 에서는 비록 그에게 정식으로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저 마을에서 살고 일해도 좋다는 정도의 허락을 내리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막스 브로트는 성 을 신의 은총 내지 고귀한 지혜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성에 도달하려던 K의 노력을 곧 인간계(마을) 밖을, 절대의 세계를 구하려는 노력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그의 편력은 (지옥계) (연옥계) (천국계)를 거친 단테의 편력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 K의 숙명적인 좌절상태는 실제로 괴로움을 참을 수 밖에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의 조건에 해당되면서, 단테의 (신곡)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그것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카프카 자신이면서 (성)의 주인공인 K의 존재상태는 카프카가 약혼자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다음과 같은 몇 마디 말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
저는 저의 가족 속에서 이방인처럼 아주 낯설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에게 인사말 외의 다른 말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누이들과는 절대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도널드 피어스가 말했듯이 단테의 (신곡)이 하나의 탐구서였다면 카프카의 (성)도 하나의 탐구서다. 단테가 (신곡)에서 그의 시대와 인간조건을 요약해놓았다면, 카프카는 (성)에서 20세기와 20세기의 인간조건을 요약해놓고 있다. (성)은 곧 카프카의 (신곡)이다. 사실 카프카는 생존시 무명의 작가였다. (성)도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우선 프랑스에서 그 진가가 인정되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로 세계 각국의 문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가 유명하게 된 것은 그의 사후 20여 년이 지나서였다. 그의 유고도 카프카의 유언에 따라 불태워질 운명이었으나, 막스 브로트의 극성스런 노력으로 오늘날 카프카의 붐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또는 순수 문학적으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점점 브로트와 같은 종교적인 해석보다는 개별적비유적인 요소에 구애받지 않는 문학적 해석이 유력해지고 있다. 따라서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작품의 영향을 말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인 듯한 감이 있으나, 종교적인 면에서는 단테와 비유되고 철학적인 면에서는 실존주의로 해석되며 방법론상의 비유의 문제는 특이하고도 완벽한 상징주의로 해석되고 있다. (이방인)을 쓴 카뮈가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실제로 카프카 내지 (성)에 대한 해석이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문학적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