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1 - 반덕진
제3장 동양문학
수호전 - 시내암(1296~1370)
(삼국지연의) (서유기) (금병매) 등과 함께 명대의 4대기서 로 현재도 민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 중국 명대의 시내암이 역사적으로 구전되어 오던, 송강 이하 108인이 양산박 영웅들의 이야기와 전설을 모아서 편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삼국지)와 같이 역사적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본격적인 소설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에는 관료중심적이던 중국사회의 사고형식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출현하여 기존질서의 모순을 지적하고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수호전)의 성립
중국 명나라 때의 장편소설로 중국의 4대기서 중 걸작으로 꼽힌다. 북송말기인 1121년에 송강이 이끄는 대도적단이 난을 일으켰으나 패전, 투항했다는 기사가(송사)에 실려 있다. 이 송강의 난을 제재로 한 강해가 점차 발전했고, 원말과 명초에 일단의 형태를 갖춘 것이 (수호전)이다. 수호란 물가란 뜻으로, 송강이 양산박이란 호수를 근거지로 삼은 데서 유래했다. 이미 남송때에는 36인의 걸물들의 얼굴과 별명이 고정되어 노지심, 무송, 양지 등 활약이 많은 호걸들의 에피소드가 강담의 레파토리로 등장했다. 또 원대의 잡극으로도 많이 각색되어 여러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일종의 역사소설(선화유사)에는 (수호전)의 원형이라고도 할 송강 등 36인의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이 소설의 기초가 상당히 민간에 이야깃거리로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기왕에 있었던 이야기를 집대성하여 한 편의 장편소설로 꾸며진 것은 원말 명초의 시내암에 의해서인데, 그에 대한 역사기록이 없다. 또 시내암의 원작을 나관중이 보충했다는 설도 있다. 판본은 70회본, 100회본, 120회본 세 가지가 있으나 120회분이 수호설화에 가장 가깝다.
* 주요 등장인물
중국에 (수호전)에 대한 평가는 농민봉기를 그린 문학이란 평가뿐이다. 이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천자의 초안을 받고 귀순했으며 같은 농민봉기군인 방납을 토벌하는 쪽에선 송강에 대한 평가다. 그래서 봉기군의 송강과 방납토벌군의 송강이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송강 : 의협심이 있으며 호걸들과 사귀기 좋아하고 효성도 지극하다. 운성현의 하급관리를 지낸 검고 왜소한 사나이를 호한들이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로 우러러본다. 양산박의 조개등과의 연계가 탄로난 다음 첩 염파석을 죽이고 강주에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술에 취해서 반시를 읊었다. 형장에서 양산박 호한들의 구조를 받고 마침내 그들의 수령이 된다. 소설에서의 위치는 (삼국지연의)의 유비와 (서유기)의 삼장법사에 비유되지만, 양자의 선의와 무능에다가 김성탄의 (제5자서수호지)에서 사악이라고 평하는 이면성을 가진 점이 다르다. 전반의 송강과 귀순한 뒤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마지막에 독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마신 다음 모반할 가능성이 짙은 난폭한 이규에게도 마시게하여 죽음에 동행하게 한 후반의 송강은 성격에 일관성이 없다. 송강은 (수호지)의 영웅들 중에서도 드물게 여자를 가까이한 인물로 그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사람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풍채가 별로 좋지 않은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앞선 문헌에는 그런 묘사가 없다. 유비에게는 한실의 후예라는 좋은 배경이 있고 삼장법사에게는 손오공을 길들이는 긴고주가 있었지만 송강에게는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소설 후반은 전반부의 그답지 않게 활발하며 자주 폭음하면서 영웅들을 충성에 연결시키고 방랑토벌에서 일당의 해산과 수습까지 맡도록 해서 송강게 기초한 부분이 많은 전반부와 괴리가 생겼다.
이규, 무송, 노지심 : 이규는 옥졸이었으나 강호에 나서 양산박의 보병두령이 되고 성품이 직선적이고 성미가 불 같아 실수도 하지만 그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의 안위만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고 자신의 믿는 바를 두려움없이 실천하는 형이다. 생각도 없이 서둘러 모반을 외쳐서 언제나 송강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흑선풍. 무송은 호랑이를 손으로 때려잡은 행자. 노지심은 성품이 강직하고 힘이 장사인데 미녀 김취련을 구하고자 정대관을 한주먹에 요절내고 피신하여 중이 되었다가 양산박에 들어간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는 없다. 그러나 불의에 무관심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이규, 무송, 노지심은 (삼국지연의)의 장비, (서유기)의 손오공 같은 인물 인물로, 김성탄에게도 최상의 인물로 꼽히고 민중들에게도 사랑을 받는다.
오용, 주무, 공손승 :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역할을 세 사람이 분담하고 있으나, 지다성 오용의 지는 돋보이지 않고 신기군사 주무의 군사로서의 역할도 애매하며, 입운룡 공손승의 요만 지나치게 돌출해서 흠이다.
조개, 양지, 임충 : 양산박의 제2대 수령 탁탑천왕 조개, 그는 시골 부호출신으로 하급관리를 지냈으나 의로운 일을 하고 양산박에 들어가 두목이 된다. 어느 순간에 인간의 운명은 전혀 다르게 변할 수 있으나, 운명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석강에 실패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호한들 속에 낀 청면수 양지, 양지는 무과를 거쳐 제사관이 된다. 나라에 충성하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녹림객이 된다.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비록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구의 눈밖에 나서 죽음을 당할 뻔한 표자두 임충은 체제에서 쫓겨난 체제 쪽의 인물이다.
* 주요 내용
북송 인종시대, 천하에 전염이 돌고 백성들도 도탄에 빠져 있었다. 조정에서는 대장군 홍신에게 칙서를 주어 용호산 상청궁에 가서 사한천사를 모셔로게 했다. 그의 힘을 빌어 이 액운을 없애려 함이었다. 그러나 홍신은 그 현지 가까이 가서 금단으로 봉인되어 있는 복마전을 열게 했다. 그러자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한 줄기 검은 구름이 지붕을 뚫고 뻗쳐올랐다. 이리하여 갇혀 있던 36천강성과 72지살성 등 108명(한 사람 한사람의 운명이 모두 하늘의 별자리와 결부되어 있다)의 호걸들이 각지에 흩어져 파란만장을 일으킨다. 송강을 필두로 노준의, 오용, 무송, 임충 등 여러 호걸들이 각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호걸들의 전신은 관리,무관,학자,농민,상인,어부,도둑,건달 등 각계각층이었다. 이들은 휘종의 난세를 무대로 강자를 무찌르고 약자를 돕는 의협심과 반골적인 정신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부패한 관료들에게 압박을 받아 몸을 의탁할 곳이 없게 되자, 각지로부터 108인의 호걸들이 산동에 있는 양산박에 모여들었다.
그 호걸들 중에서도 노지심은 천하 대장사였다. 그는 지주의 외동딸이 산적들에게 겁탈당하려는 것을 구출해주었다. 일단 산적두목을 무찌른 데 대해 마을 사람들은 고마워하면서도 산적들이 떼로 몰려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을 했다. 그때 노지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인 양반, 걱정일랑 마십시오. 그런 녀석들 천 명이나 이 천명은 와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겠소. 내 말을 믿지 못하면 이 석장을 들어보시오.' 그 석장은 길이가 5척이나 되었다. 누구 하나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노지심은 그것을 새털이나 들듯 가볍게 들어올려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 도둑질의 제1인자 시천, 꾀에 있어서는 제갈량보다 한 수 위라는 오용 등 108명이 벌이는 사건은 형형색색이다.
그들은 송강을 수령으로 받들고 의를 맹세하며(71회까지), 진압차 온 관군을 계속 무찔러서 그 위력을 과시한 후 조정에 귀순한다(81회까지). 그후 양산박의 무리들은 북방을 압박하고 있는 요(거란)나라를 제압하는 데 공을 세우고(110회까지), 이때까지는 108명 중 희생자가 없었으나, 강남의 반란군인 방납의 진압(119회)에 이르러서는 여러 장군들이 차례로 쓰러졌으며, 살아남은 사람도 출가하여 27만명이 귀환한다. 그러나 간신의 음모로 송강이 음독살해 당하자 의를 맹세했던 형제들은 흩어지게 된다(120회). 가장 중요한 부분은 71회의 호걸들이 다 모이는 장면인데, 독자에게 인상 깊은 배역들이 차례차례로 등장하여 눈부신 스토리를 전개하고, 이어서 하나씩 교묘하게 양산박으로 이끌려들어가는 대목의 구상은 탁월하다. 수호지적인 영웅의 처절한 이미지와 잘 부합되어 이 책에서 볼 것은 거의 이 부분에서 나오고 있다. 108인 중에는 탐욕스런 고관이 긁어모은 불의의 재물을 기막힌 꾀를 써서 탈취한 일당, 체포되기 직전에 놓인 호걸을 의로써 구했으나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집요한 첩한테 시달리다가 죽이고 달아나는 하급관리 송강, 살인 등 온갖 횡포를 부리다가 도적의 무리 속에 끼어드는 호걸, 못된 상관한테 박해를 당하다가 양산박으로 몸을 피하는 무관, 토벌 나온 관군에서 몸을 빼내고 도적떼에 가담하는 용장, 근본부터 도적으로 생겨난 놈, 거기에 여자호걸까지 끼어서 다채롭게 전개된다.
그들이 천하를 횡행하면서 저지르는 사건도 가지가지이지만 두드러지는 것은 전편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살인 이야기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수호전 영웅의 본질에 뿌리박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므로 한편 (수호전)에서는 송강의 전설에 따라다니는 반관정신이 농후하게 계승되어 있어서 그들의 의협심이 강조되어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 통쾌한 민중의 영웅은 선량한 약자인 청중이나 독자에게 부드럽게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 뜻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학대받는 약자의 이상화된 영웅이라고 단순히 규정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 108인의 괴상한 호걸들이 때로는 대범하게 때로는 흉악하게 난동하는 그 세계에는 에네르기화한 즉흥성과 집단적 상상력의 불투명한 폭력이 관념의 베일로 가리는 일 없이 크게 피어나고 있으며, 허구의 방자함은 예술적으로 해방된 정신을 느끼게 한다. 특히 본서의 전반부에서는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시정의 생활을 그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영웅과는 다른 현실감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70회에 가까워지면 기왕에 존재했던 이얏기거리도 거의 바닥이 날 판이라, 108의 머릿수를 맞추기에 작가는 애를 먹는 꼴이 되어 조정에서 파견된 정벌군의 무장이 도적떼로 전향하는 부분은 어색하고 귀족스러운 냄새까지 난다. 71회 직후부터 이야기는 귀순-공업-비극적인 결말로 들어가는데, 이 부분은 전반부의 필치와 내면적으로 계속되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누르고 이미 마련된 각본대로 꾸며나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줄거리를 전개시키는 원동력이 71회 이전과는 변질되어버렸다고 해도 좋을 듯하고, 91~110회의 전호와 왕경을 정벌하는 이야기는 엉터리로서 후세에 억지로 늘인 듯한 감이 든다. (수호전)의 문장은 대체로 문어적인 간결함이 남은 구어체로 강담의 어조가 가장 여실히 보존되고 있다.
* (수호전)의 영향
(수호전)의 영향은 문학작품만이 아닌 정치,사회,군사,예술 등 온갖 분야에 걸쳐 있다. 한 예로 도적이나 반역자 중에는 (수호전)에 나오는 호걸들의 이름을 그대로 자칭한 자도 있었으며, 20세기 와서도 모택동의 게릴라 전술에 양산박 도적들의 유격전술을 그 원리 면에 있어서 그대로 답습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중국의 소설사적 견지에서 이 작품을 보면 송대에 성행한 새로운 민간문예를 배경으로 성립된 구어소설 중 정점을 이루고 있으며, (삼국지연의)와 더불어 명대 장편소설의 선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거칠면서도 순진한 평민적인 호걸상)은 역사상 획기적인 것으로, 이탁오 등 일부 반역적인 문인들의 새로운 문학관과 인생관의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 (수호전)은 그후 문학에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영웅인물의 부각 및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의 결합에 좋은 계시를 주었다.
한편 (수호전)은 민중들 속에서 널리 애독되고 유전되면서 거대하고 다방면적인 영향을 일으켰다. 우선 명청의 계급투쟁, 특히 농민봉기에 대해 크게 고무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자성 봉기, 태평천국, 의화단 봉기, 심지어 비밀리에 조직되었던 반청조직인 천지회 등은 수호전 영웅들의 반항정신에서 거대한 힘을 얻었고 풍부한 투쟁경험과 다종다양한 투쟁방법을 배웠다. (수호전)이 이와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봉건지배계급은 그것을 증오하면서 금지시키는 등 그 영향력을 극소화하려 했다. (수호전)은 도적을 가르치는 책 이며 요사한 말로 뭇사람을 유혹하니 제자들이 보게 해서는 안된다 라고 했으며, 심지어 (수호전) 작자의 후손은 벙어리가 되라 라고 저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명대의 숭정연간에는 (수호전)을 엄금한다는 황제의 명령이 내려졌으며 그후에도 엄금했다. 봉건지배계급의 여용문인인 유만춘은 소설 (탕구지)를 써서 (수호전)의 영향을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봉건지배계급은 대중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수호전)의 영향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중국의 개화 이후 여기에 그려진 호걸들의 모습은 중국 남성의 이상적인 이미지로 등장했고, 혁명과 전쟁을 거듭하는 동안에 위대한 고전문학의 유산으로 재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우리 나라의 (홍길동전)이나 (임꺽정전)도 이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