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성인을 경계하라 - 거협
그러므로 성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큰 도둑이 없어지고, 옥을 내던지고 구슬을 부수면 작은 도둑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절을 불태우고 옥새를 부수면 백성이 소박하고 검소해지며, 말을 깨고 저울을 꺾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또 천하의 성법을 모조리 없애버리면 백성이 비로소 함께 논의하게 된다. 6률을 뽑아 흐트려버리고, 생황과 금을 녹여 끊어버리고, 사광의 귀를 막으면 천하 사람들의 귀가 비로소 총명해진다. 문장을 없애고 오채를 흐트려버리며, 이주의 눈을 붙여버리면 천하 사람들의 눈은 비로소 밝아진다. 먹줄과 자를 버리고 부수며, 공수*의 손가락을 꺾어버려야 천하 사람들의 손이 비로소 공교로워진다. 그러므로 '크게 공교로운 것은 서툰 것과 같다.'고 말한다. 증삼과 사추의 행실을 깎아내리고, 양자와 묵자의 입을 막아 인의를 물리치면 천하의 덕이 비로소 같게 된다.
사람 저마다가 그 밝음을 지니면 천하는 어지럽지 않게 되고, 사람 저마다가 그 총명을 지니면 천하는 곧 번거롭지 않게 된다. 사람 저마다가 지혜를 지니면 천하가 현혹되지 않으며, 사람 저마다가 그 덕을 지니면 천하는 편벽되지 않는다. 저 증삼, 사추, 양자, 묵자, 사광, 공수, 이주는 모두 그 덕을 밖으로 세움으로써 천하를 어지럽힌 자들이니 그 법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대 홀로 지극한 덕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가? 옛날 용성씨, 대정씨, 백황씨, 중앙씨, 율륙씨, 여축씨, 헌원씨, 혁서씨, 존로씨, 축융씨, 복희씨, 신농씨 들의 당대 백성들은 줄을 매어 쓰고, 음식을 달게 먹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풍속을 즐기며 안락하게 살았다. 이웃 나라가 서로 보이고 닭과 개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내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때를 잘 다스려졌을 때라 한다.
지금은 드디어 백성들로 하여금 목을 빼고 발뒤꿈치를 쳐들어 '어느 곳에 현자가 있는가?' 하면서 양식을 싸들고 달려가게 하기에 이르렀다. 즉 안으로 그 어버이를 버리고 밖으로 그 임금의 일을 버린다. 발자취가 제후의 지경까지 닿고 수레바퀴의 흔적은 천 리 밖에 이어지니, 이것은 곧 위에서 지혜를 좋아하는 탓이다. 위에서 진실로 지혜를 좋아해도 도가 없으면 곧 천하는 크게 어지러워진다. 무엇으로 그 까닭을 아는가? 저 활과 쇠뇌*와 필익*과 기변의 지혜가 많으면 새는 위에서 어지러워지고, 구이, 망고, 삼태그물, 통발의 지혜가 많으면 고기가 물에서 어지러워진다. 또 깎은 말뚝과 그물과 덫의 지혜가 많으면 짐승은 들판에서 어지러워진다. 지혜로 속이는 것과 보이지 않게 해치는 것, 다루기 힘든 것과 견백, 해구, 동이의 변설이 많으면 세속의 분변을 현혹한다. 그러므로 천하는 그때그때마다 크게 어지러워지니, 죄는 지혜를 좋아한 데 있다.
* 공수 : 요나라의 뛰어난 목수의 이름. * 쇠뇌 : 여러 개의 화살이나 돌을 잇달아 쏠 수 있는 큰 활. * 필익 : 그물과 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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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인의 지혜를 버리게 되면 큰 도둑이 자취를 감추고, 보물을 부숴 없애면 좀도둑이 사라진다. 부절을 태우고 옥새를 부수며, 말과 저울을 망가뜨려 버리면 민중은 소박한 본성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성인이 정한 법을 완전히 버린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을 되찾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음계의 구별을 없애고 악기를 태워버리며, 사광의 귀를 막아버려야만 사람들은 자기 귀로 들을 수 있다. 장식을 버리고 색채를 잊으며, 이주의 눈을 막아버려야만 사람들은 참으로 자기의 눈을 가지고 볼 수 있다. 먹줄을 끊고 자를 꺾으며, 공수의 손가락을 못 쓰게 만들어야만 사람들은 참으로 자기의 손으로 만들 수 있다. '너무 공교로운 것은 서툰 것과 같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 증삼과 사추의 덕행을 배격하고, 양자와 묵자의 변설을 막아 인의를 뿌리째 뽑아버려야만 사람들은 진실한 덕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참다운 총명을 지니고 있으면 외부 사물에 현혹되는 일이 없고, 참다운 지혜를 지니고 있으면 미망에 빠지는 일이 없다. 참다운 덕을 지니고 있는 한 자신을 잃는 일 또한 없다. 저 중삼, 사추, 양자, 묵자, 사광, 이주, 공수의 무리들이 자신들의 덕을 자랑하여 세상에 모범을 보이려 했기 때문에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에서 취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참다운 덕이 유지되었던 태고 시대는 어떠했던가? 용성씨로부터 대정씨, 백황씨, 중앙씨, 율륙씨, 여축씨, 헌원씨, 혁서씨, 존로씨, 축융씨, 복희씨를 거쳐 신농씨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세월을 통해 사람들은 글자를 만들지 않고, 줄을 매듭을 지어 기억을 도왔다. 누구나가 있는 그대로의 생활에 만족하여 아무 욕망도 품지 않았다. 그러므로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이웃 나라가 가까이 있어도 사람들은 서로 내왕하는 일이 없었다. 이런 시대야말로 참으로 세상이 잘 다스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지혜를 좇고 이익을 추구하여 잠시도 편할 날이 없다. 현자의 소문을 들으면 먼 길도 마다 않고, 부모를 버리고 임금의 명령을 팽개쳐 버리면서까지 달려가려 한다. 사람들은 현자를 찾아 각국을 두루 돌아다니느라 수레의 흔적이 천 리에까지 미치는 형편이다. 그이유는 지배자들이 지혜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지배자가 지혜만 소중히 알고 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를 잃고, 세상은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진 것이다.
새를 잡기 위해 우리들이 쇠뇌와 주살 따위의 기구를 만들면 새는 그만큼 자연 속에서 편히 살 수 없는 법이다. 또 낚싯바늘이니 어살 따위의 어구를 만들면 만들수록 고기는 물속에서 편안히 살 수 없다. 또 그물이나 덫 따위의 사냥 도구를 만들면 만들수록 짐승은 자연에서 편안히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의 경우도 똑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인위적인 일에 힘쓰고 궤변을 희롱하며, 슬기를 자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를 잃고 만다. 세상이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워지고 만 것도 그 근원을 캐고 보면 지배자가 지혜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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