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본성과 자유 - 마제
말은 발굽으로 서리나 눈을 밟고,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발을 들어 뛴다. 이것이 말의 진정한 본성이다. 비록 장려한 거처가 있어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백락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말을 잘 다룬다."
털을 지지고 낙인을 새겨 고삐를 매어서 외양간에 집어넣었느나 죽는 말이 열에 두세 마리나 되었다. 배를 곯리고, 목마르게 하고, 힘껏 달리게 하고, 갑자기 뛰게 하고, 정렬하여 세우기도 했다. 앞에서는 재갈에 끈을 달아 근심케 하고, 뒤에서는 채찍을 쳐서 위협했다. 이래서 말은 반이 넘게 죽어갔다. 도자는 말한다.
"나는 찰흙을 잘 다룬다. 둥글게 하면 그림쇠 같고, 모나게 하면 곡척과 같다." 장인은 말한다. "나는 나무를 잘 다룬다. 구부리면 갈고랑쇠에 맞고, 곧게 하면 먹줄과 같다."
무릇 찰흙이나 나무의 본성이 그림쇠나 곡척, 갈고랑쇠나 먹줄처럼 되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세상에서는 백락은 말을 잘 다루고, 도장은 찰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과실 또한 이와 같다. 내가 천하를 잘 다스린다고 말하는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백성들에게는 상성이 있는데, 짜서 옷 해입고 밭을 갈아먹는 것이다. 이것이 동덕*이다. 합쳐서 하나가 되고 편벽되지 않은 것을 천방*이라고 한다.
* 동덕: 덕, 즉 타고난 성질이나 모양이 같다. * 천방: 되는대로 자연에 맡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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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발굽은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고, 그 털은 바람과 추위를 막아준다. 말은 또한 풀을 먹고 마시며, 발걸음도 날쌔게 뛰어다닌다. 이것이 말을 본성이다. 고대 광실 따위는 그에게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백락은 이렇게 호언 장담했다.
"나는 말을 잘 다룬다."
그는 말의 털을 태우거나 깎고, 발톱을 깎아 낙인을 찍은 다음 고삐를 매어 마구간에 넣어 길렀다. 그 결과 열 마리 중 두세 마리가 죽었다. 또 훈련을 시킨다면서 굶기거나 목마르게 하고, 힘껏 달리거나 때로는 대열을 지어 달리게 했다. 재갈에는 끈을 달고, 뒤에선 채찍으로 위협했다. 그 결과 죽는 말이 반을 넘게 되었다. 옹기장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찰흙을 잘 다뤄서 둥근 그릇으로 만들면 그림쇠를 댄 것 같고, 각진 그릇을 만들면 곱자에 들어맞는다." 또 목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무를 잘 다뤄서 둥글게 깍으면 갈고랑쇠에 맞고, 곧게 하면 먹줄을 친 듯하다."
그러나 찰흙이나 나무의 본성이 어떻게 그림쇠며 곡척, 갈고랑쇠며 먹줄과 같겠는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부터 백락을 말의 명인이라 하고, 옹기장이와 목수에게 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고 칭찬한다. 천하의 위정자들 역시 그와 같다.
천하를 잘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백성들에게도 그들의 본성이 있다. 그리하여 추우면 길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고, 배가 고프면 농사를 지어먹게 마련이다. 이것을 자연의 본성이라 하며, 각자가 천성을 좇아 순전한 것을 자유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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