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도망친 신무 - 응제왕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무가 있었다. 사람의 생사 존망과 화복 수요를 맞추는데, 해와 달과 순일까지 틀림이 없어 귀신 같았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모두 피해 달아났다. 열자가 보고 심취하여 돌아가 호자*에게 말했다.
"지금껏 저는 선생님의 도를 지극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보다 더 지극한 사람이 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그 글은 다했으나 실상은 다하지 못했는데, 어째서 진실로 도를 얻었다고 하느냐? 뭇 암컷이 수컷이 없으면 어떻게 알이 생기겠느냐? 네가 도로써 세상과 맞서 그들의 신용을 얻으려하니 남이 너의 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험 삼아 함께 와서 나를 보여봐라."
이튿날 열자와 함께 호자를 보고 나온 계함이 열자에게 말했다.
"슬프다, 당신의 스승은 죽을 것이오. 살아나지 못하오. 열흘을 견디지 못하겠소. 나는 이상은 것을 보았소. 젖은 재를 보았소."
열자가 들어가 눈물로 옷깃을 적시며 호자에게 고했더니 호자가 말했다.
"아까 나는 지문*을 보였다. 터질 듯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는 상이지. 그자는 내 생기가 꽉 닫힌 것을 본 것일 게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와라."
이튿날 또 그를 데려와 호자를 보게 하였더니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다행이오. 당신 선생은 나를 만나 병이 낫게 되었소. 완전히 살아났소. 꽉 닫힌 것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소." 열자가 들어가 호자에게 고하니 호자가 말했다. "내가 아까 보이기를 천양으로 했다. 이름과 실상이 들어가지 않고, 기가 발꿈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마 내게서 생성의 기운을 본 것일 게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오너라."
이튿날 다시 데려와 호자를 보게 하였더니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 선생은 한결같지가 않아 상을 볼 수가 없소. 좀 진정시킨 뒤에 다시 보리라."
열자가 들어가서 호자에게 말하니 호자가 말했다.
"나는 아까 태충막승*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아마 내게서 절대의 조화를 본 것일 게다. 소용돌이치는 물도, 고요한 물도, 흐르는 물도 못이 된다. 못에는 아홉 가지 이름이 있는데, 이것은 세 가지에 해당한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오너라."
이튿날 또 데려와 호자를 보게 하였더니, 앉기도 전에 선 채로 그만 정신을 잃고 달아났다. 호자가 말했다.
"쫓아라."
열자가 이를 쫓았으나 붙잡지 못하고 돌아와 호자에게 보고했다.
"이미 사라져버려서 붙잡지 못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아까 나는 미시출오종으로 했다. 즉 마음을 텅 비우고 현상의 변화에 그대로 따라 분별을 못하도록,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고, 물결치는 대로 흔들리기에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다."
그런 뒤에 열자는 스스로 배움이 모자람을 깨닫고 돌아가 3년간 나오지 않았다.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기르듯 하며, 일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었다. 새기고 다듬는 것에서 소박함으로 돌아가 괴연히 홀로 그 모양대로 서 있었으니, 만물을 있는 그대로 두고 간섭하지 않은 채 일생을 마쳤다.
* 호자 : 이름은 임. 열자의 스승이다. * 지문 : 땅의 무늬, 혹은 산과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모양. * 태충막승 : 태충은 허, 또는 허심을 뜻하며, 일체의 사물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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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통한 무당 관상쟁이가 있었다. 사람들의 생사와 길흉을 귀신같이 알고 있어서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짜까지 정확히 알아맞혔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불길한 예언을 들을까봐 정신없이 도망쳐 달아나는 형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계함을 만난 열자가 그의 재주에 반하여 스승인 호자에게 와서,
"저는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도만이 최고의 것인 줄 믿고 있었습니다만, 세상에는 그보다 더한 것도 있는 모양입니다."하고 계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호자는 조용히 타일렀다. "나는 지금껏 너에게 도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왔지만 그것은 말뿐으로, 도 그 자체는 아직 보여준 일이 없다. 그런데도 너는 도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아무리 암탉이 많아도 수탉이 없으면 생명이 있는 알을 낳지 못하는 법이다. 생명력이 없는 그 같은 도를 자랑으로 생각해서 사람들과 겨루어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니까 관상쟁이 따위에게 속을 들여다보이게 된 것이다. 아무튼 말보다는 실지로 시험해보는 것이 좋으니, 한번 관상쟁이를 데리고 와서 나를 점쳐보게 해라."
이튿날 열자는 계함을 데려와 호자의 상을 보게 했다. 호자의 얼굴을 두루 살피고 난 계함은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당신 선생님은 얼마 안 가 죽을 것 같소. 고작 오래가야 열흘일 거요. 얼굴에 이상한 기운이 나타나 있소. 마치 물에 젖은 재처럼 생기없는 기색이...."
열자는 놀라서 방으로 달려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호자에게 알렸다. 그러나 호자는 태연했다.
"그렇겠지. 내가 아까 그자에게 지문상을 보여주었으니까. 지문상이란 움직이지 않는 대지의 상을 말한다. 그는 내 생기가 꽉 닫혀져 있는 것을 본 것이겠지. 어디 다시 한번 그자를 데리고 오도록 해라."
이튿날 열자는 다시 계함을 데리고 와서 호자의 상을 보게 했다. 방에서 나온 계함은 열자에게 말했다.
"운이 참 좋았소. 당신 선생님은 나를 만난 탓으로 완전히 원기를 되찾게 되었소. 이제 아무 걱정 없소. 꽉 닫혀져 있던 생기가 새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분명히 보였소."
열자는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이를 즉시 호자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호자는 태연했다.
"그럴 테지. 나는 아까 그자에게 천양의 상을 보여주었다. 뭐라고 이름 지어 부를 수도, 잡을 수도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움직이기 시작한 생기가 발뒤꿈치 근처에서부터 올라오는 상을 말이다. 그것은 흡사 하늘과 땅이 서로 사귀어 만물을 만들어낼 때와 같은 것이다. 그는 내게서 그런 생성의 움직임을 본 것이다. 시험 삼아 또 한번 그자를 데리고 오너라."
그 이튿날 열자는 또다시 계함을 데리고 왔다. 전과 마찬가지로 호자의 얼굴을 살피고 난 계함은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하게도 당신 선생은 만날 때마다 상이 변하고 있소. 이래 가지고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알아낼 도리가 없소. 먼저 조용히 생각을 할 필요가 있소. 그러면 내가 앞일을 말할 수 있을 거요."
열자가 이 말을 전하자 호자는 이렇게 말했다.
"음, 그렇겠지. 나는 아까 그자에게 태충막승의 상을 보여주었다. 모든 대립과 항쟁이 사라진 태허의 상을 말이다. 그 녀석은 나에게서 모든 것이 절대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아본 것이다. 내 마음은 강물의 못과 같은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물,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는 물, 쉬지 않고 흐르는 물,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조용하고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못을 이룬다. 무릇 못에는 아홉 가지 상이 있다. 내 마음도 온갖 상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나는 그자에게 아직 세 가지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시험 삼아 다시 한번 데리고 오너라."
이튿날 열자는 다시 계함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계함은 호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뒤를 쫓아라."
호자의 말에 열자는 곧장 뒤를 쫓았으나 모습이 금방 사라져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맥없이 돌아와 말했다.
"벌써 그림자도 볼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뒤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 괜찮다. 나는 아까 그자에게 미시출오종의 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무심히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르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상을 말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고, 물결이 밀어닥치면 물결을 따라 떠다니는 식으로 상대방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놈은 자기의 본색이 드러날까봐 겁이 나서 도망친 것이다."
열자는 자기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고향집으로 내려가 몇 해 동안 한 발짝도 대문 밖을 나오지 않고 수행에 힘썼다. 아내를 대신해서 부엌에 가서 밥을 짓기도 하고, 돼지를 사람과 똑같이 기르는 등 일절 차별을 두지 않았다. 허식을 버리고 소박한 것에 돌아가 초연히 세속을 떠나 산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만물을 있는 그대로 맡겨두고, 인위적인 노력을 더함이 없이 마음 편안히 일생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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