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입묵을 없애다 - 대종사
의이자*가 허유를 만났을 때였다. 허유가 물었다. "요는 너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의이자가 대답하였다. "요는 저에게 반드시 인의를 실천하고, 옳고 그름을 밝히라고 하였습니다." 허유가 물었다. "너는 무엇을 하러 왔느냐? 요가 이미 네 몸에 인의를 새기고 시비로써 코를 베었는데, 너는 장차 무엇으로 요동하며 자유롭게 변화하는 길에서 노닐 수 있겠느냐?" 의이자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놀고 싶습니다." 허유가 말했다. "안 된다. 장님은 눈썹과 눈과 안색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을뿐더러 푸르고 노란 옷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의이자가 물었다. "무장*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량*이 그 힘을, 황제가 그 앎을 잊은 것은 모두가 다시 달구어 만든 것입니다. 제게도 저 조물주가 먹물을 없애고 코 밴 것을 붙여, 완전한 형상을 갖고 선생을 따를 수 있게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허유가 대답했다. "아아, 알 수는 없도다. 그러나 너를 위해 그 대략을 말하겠다. 내 스승은, 내 스승은 만물을 바로하고도 의롭다 하지 않고, 은택이 만세에 미쳐도 어질다고 하지 않는다. 상고보다 오래되어도 늙었다고 하지 않고, 하늘을 덮고 땅을 실어 뭇 모양을 새겨도 훌륭한 솜씨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 노니는 바다."
* 의이자 : 가상의 인물. * 무장 : 고대의 미녀로, 도에 관해 들은 후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았다고 한다. * 거량 : 장사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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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이자가 허유에게 배움을 청하자 허유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요에게서 배웠다던데, 무엇을 배웠느냐?" "인의의 실천에 힘쓰고, 시비와 선악을 분명히 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뭣하러 새삼 나를 찾았느냐? 요가 이미 네 이마에 인의를 새겨넣고 시비라는 말로 코를 잘라버렸는데, 자유롭고 거리낌이 없는 큰 길로 어찌 너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의이자는 굽히지 않고 말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설사 도에는 이르지 못해도 근처에는 가고 싶습니다." "안 된다. 장님은 앞에 미인이 서 있어도 볼 수가 없으며, 곱게 수 놓은 비단을 들고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 너는 이미 도와는 인연이 없어졌다." "옛날 무장이 그의 아름다움을, 거량이 그의 힘을, 황제가 그의 지혜를 잊은 것은 모두 도의 불길에 녹아 다시 단련된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며 조물주가 나에게도 입묵을 녹여 없애고, 코를 처음대로 붙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끔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소원대로 잘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토록 소원이라면 말해보겠다. 내가 스승으로 삼은 도는 만물을 있게끔 해주고, 한없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무심하여 자신이 은혜를 베푼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유구한 과거에서 영겁의 미래에 걸쳐 하늘과 땅을 덮고, 삼라 만상을 쉴새없이 만들어내면서도 힘을 자랑하지 않는 위대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도 이 스승을 따라 무의 경지에서 놀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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