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은자의 독백 - 인간세
공자가 초나라로 갔다. 초나라 광접여*가 그의 문앞에서 놀며 말했다.
"봉이여, 봉이여, 덕이 쇠한 걸 어찌하랴! 오는 세상은 기대할 수가 없고, 지나간 세상은 돌이킬 수가 없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은 이룩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살아갈 뿐이다. 지금 이때에는 형만 면하면 그만이다. 복은 깃털보다도 가벼운데 이를 들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화는 땅보다 무거운데 이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말지어다, 말지어다, 남을 대하기를 덕으로써 하는 것을.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땅을 그어놓고 달리는 것은. 미양*, 미양하면 내 가는 것에 상하는 일이 없고, 내 가는 것이 각곡*하면 내 발을 상하는 일이 없다. 산의 나무는 스스로를 해치게 되고, 기름불은 스스로를 태우게 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어지고, 옻은 쓸 수 있기 때문에 찢기게 된다. 사람은 쓸모있는 것만을 쓸 줄 알고, 쓸모없는 것은 쓸 줄을 모른다."
* 광접여 : 광접여는 본이름이 아니다. <논어> '미자편'에는 공자가 당시의 은사들에게서 비판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접여도 그 중 한사람이다. 광은 그가 미치광이 행세를 하고 다닌 데서 붙인 이름이고, 그가 공자가 탄 수레 옆을 함께 따라가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편의상 '접여'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공자를 봉에다 비유한 것으로 보아, 때를 만나지 못한 공자의 외롭고 고달픈 생애를 못내 안타까워했던 것을 알 수 있다. * 미양 : 밝은 곳을 찾아다니다. * 각곡 : 각은 '피하다', '물리치다'라는 뜻. '각곡'은 비틀비틀하는 힘든 걸음걸이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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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초나라에 유세하던 어느 날, 광접여라 불리는 은자가 공자가 머무는 집 앞을 지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봉새여, 봉새여, 어찌하여 덕이 그 모양으로 쇄했느냐? 내일에의 희망은 덧없는 것, 어제의 영광은 지나간 꿈, 지금은 다만 오늘을 살아갈 뿐. 도가 있는 세상은 성인이 다스리는 곳, 도가 없는 세상은 성인이 숨는 곳. 이토록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무사 태평으로 지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행복은 깃털보다도 가벼운데, 행복을 잡는 사람은 왜 그리도 적은 것일까? 화는 땅덩이보다도 무거운데, 화를 피하는 사람은 왜 이다지도 적은가? 내가 가는 길을 인의로 좁히고 내가 가는 길을 남에게 강요하니, 아아,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지혜를 버리고 바보가 되어 세상의 허무 속에 몸을 맡겨라. 그러면 내 몸은 상하는 일이 없다. 산의 나무를 베는 것은 쓸 곳이 있어서이고, 기름이 말라 없어지는 것은 불이 타기 때문이다. 육계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잘리고, 옻은 칠할 수 있기 때문에 찢기게 된다. 쓸데있기를 찾는 사람은 땅에 가득한데, 무용지용을 깨달은 사람은 왜 이다지도 적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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