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무용과 유용 - 인간세
장인 석이 제나라의 곡원 땅에 이르러 사당나무가 되어 있는 가죽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덮고,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되었다. 그 높이는 산에 이르며, 그 열 길 위에야 가지가 나 있었다. 가지는 배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수십 개나 되어, 구경하는 사람만도 저자를 이루었다. 장인 석은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제자는 이를 실컷 구경하고 나서 장인 석에게 달려가 물었다.
"제가 도기를 잡고 선생님을 따른 뒤로 일찍이 이같이 아름다운 재목을 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보지도 않으시고 걸음도 멈추지 않으시니 어째서입니까?"
장인 석이 말했다.
"그만두어라. 말하지 마라. 못 쓸 나무다. 이 나무로는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곽*을 만들면 빨리 썩으며, 그릇을 만들면 빨리 깨지고, 문을 만들면 나무진이 나오며, 기둥을 세우면 좀이 먹는다. 그것은 재목이 되지 않는 나무다. 쓸 만한 데가 없으니 그토록 오래 산 것이다."
장인 석이 돌아오자 가죽나무가 꿈에 나타나 말했다.
"너는 나를 어떻게 비교하느냐? 나를 문목*에다 견주려 하느냐? 저 아가위, 배, 귤, 유자, 등나무 등속은 열매를 뺏겨 욕을 당한다. 큰 가지는 부러지고 작은 가지는 찢어진다. 이것은 그 능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이렇지 않은 것이 없다. 또 나는 내가 쓸모없기를 구한 지 오래다. 죽음을 앞둔 지금 그것을 얻었으니 큰 소용이 되었다. 나를 쓸모있게 했다면 이렇게 자랄 수 있었겠느냐! 죽을 사람이 또 어떻게 죽을 나무를 알겠느냐?"
장인 석이 깨어 꿈 이야기를 하니 제자들이 물었다.
"쓸모없기를 서둘렀다면 사당나무가 된 것은 어째서일까요?" "조용히 해라, 말을 마라. 다만 머물러 있을 뿐, 자기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욕하는 것이다. 사당나무가 안 되었더라면 베였겠느냐? 그가 가지고 있는 바는 뭇사람들과 다르다. 의로써 기린다면 또한 멀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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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라는 목수가 제나라로 여행을 하였다. 도중에 우연히 곡원이란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는 엄청나게 큰 가죽나무가 사당나무로 제사를 받고 있었다. 그 크기로 말하면 나무 그늘 밑에 몇천 마리의 소가 쉴 수 있을 정도였다. 줄기는 백 아름은 되었고, 높이는 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땅위 7,80척쯤 되는 곳에서 겨우 가지가 갈라져 있었다. 말이 가지지, 넉넉히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큰 가지가 수도 없이 뻗어 나와 있었다. 이 큰 나무를 구경하러 찾아드는 사람들로 그 근처는 마치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웠다. 석의 제자들은 숨을 죽이고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석은 한번 거들떠보는 일도 없이 성큼성큼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간신히 뒤를 쫓아 따라온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 밑으로 찾아온 후 오늘날까지 이렇게 훌륭한 재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리셨습니다. 대관절 어찌 된 까닭입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 나무는 아무 데에도 쓸모가 없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아버리고, 널을 만들면 금방 썩고 만다. 가구를 만들면 곧 부서지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투성이가 되며, 기둥을 만들면 밑으로 금방 좀이 먹고 만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이 크기만 한 나무다. 이렇게 크게 자라나게 된 것도 사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석이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 꿈에 가죽나무가 나타나 물었다.
"너는 도대체 나를 무엇에 비교해서 쓸모없다고 하는 거냐? 결국 문목과 비교한 것이리라. 하긴 아가위나무, 배나무, 유자나무, 등나무 따위의 유실수는 너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일을 맺기에 비틀려 떨어져 욕을 당하고, 가지가 부러지고 찢어지고 한 끝에 제 명대로 못 살고 죽게 된다. 자신의 장점이 바로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즉 자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힌다. 이 세상에선 사람이나 물건이나 모두 유용한 것이 되고자 똑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오늘날까지 한결같이 쓸모없는 것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천수가 다해가는 지금에야 겨우 완전히 쓸모없는 나무가 될 수 있었다. 너희들에게 쓸모없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유용한 것이다. 만일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벌써 베어져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해 너나 나나 다같이 자연계의 개물에 지나지 않는다. 물건이 물건의 가치를 평가해서 어찌하겠다는 게냐? 가치를 평가하기로 말하면 너처럼 쓸모있는 것이 되고자 자신의 생명을 깍아내는 자야말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다. 쓸모없는 인간이, 내가 쓸모없는 나무인지 아닌지를 알 까닭이 있겠느냐!"
이튿날 아침, 석이 전날 밤의 꿈 이야기를 하자 제자들은 말했다.
"그토록 쓸모없는 것이 되고 싶다면서 왜 백성을 수호하는 사당나무가 되었을까요?" "이제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두어라. 사당나무가 된 것은 그가 바란 것이 아니라 임시로 빌린 것에 불과하다. 이러니저러니 비평해보았자 상대방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들의 잠꼬대라 흘려들을 뿐이다. 기실 사당나무가 되지 않았더라도 남에게 베이진 않았을 것이다. 뭐라고 하든 그 나무는 세간의 바람과는 반대로 쓸모없는 것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상대를 세간의 상식에 맞춰 판단하면 턱도 없는 엉뚱한 견해를 가져오게 될 뿐이다."
* 가죽나무: 재목으로 쓸 수 없는 쓸모없는 나무로서, 저와 병행하여 쓰인다. * 관곽: 관과 관을 담는 궤. 속 널과 겉 널. * 문목: 인간에게 소용이 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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