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자연에 살다 - 인간세
섭공 자고*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자 중니에게 물었다.
"왕께서 저에게 시키시는 일이 심히 무겁습니다. 제나라는 사자를 맞아 아마도 일에 극히 신중을 기하느라 빨라 처리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부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데, 하물며 제후야 어떻겠습니까? 저는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일찍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무릇 일이란 작건 크건 성사됨을 기쁨이라고 하지 않는 일이 적다. 만일 일이 이룩되지 않으면 반드시 인도의 근심이 있고, 일이 이룩되면 또한 음양의 근심이 있다. 이룩하든 이룩하지 못하든 뒤에 근심이 없는 것은 오직 덕 있는 사람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먹기를 검소하게 하고 사치를 부리지 않아서 밥 짓는 사람들이나 덥다고 할 정도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명령을 받고 저녁에 얼음물을 마시는 것은 속에서 열이 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해 보지도 않고 이미 음양의 근심을 가졌으니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반드시 인도의 근심 또한 갖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두 가지 근심을 다 가진 셈입니다. 남의 신하 된 자로서 능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니, 이에 대해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천하에 대계가 둘 있으니 그 하나는 운명이고, 또 하나는 의입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으로서, 마음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의로서, 세상은 임금의 것 아닌 데가 없으니 천지간에 벗어날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일러 대계라 합니다. 그러므로 무릇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버이를 편안케 해야 지극한 효도가 되며, 또한 임금을 섬기는 사람은 일을 가리지 않고 임금을 편안케 해야 커다란 충성이 됩니다. 스스로 마음을 섬기는 사람은 슬픔이나 즐거움 앞에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고 편안히 여기기를 운명과 같이 하는 것을 덕의 지극함이라 합니다. 남의 신하나 자식 된 사람에겐 본래 부득이한 일이 있습니다. 일을 실정대로 행함으로써 그 몸에 대한 걱정을 잊어야지, 어느 겨를에 삶을 즐기고 죽음을 싫어하겠습니까? 선생은 그곳에 가는 것이 옳습니다. 들은 바를 말하고 싶습니다. 무릇 사귀는 데에 있어 가까우면 반드시 서로 믿음으로써 따르고, 멀면 말로써 충성하게 됩니다. 말이란 반드시 누군가가 전하게 됩니다. 무릇 양쪽이 기뻐하고 양쪽이 화낼 일을 전하는 것은 어려운 노릇입니다. 대체로 양쪽이 기뻐할 일엔 반드시 좋은 말이 지나치게 많고, 양쪽이 화낼 일엔 나쁜 말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대개 무엇이 넘친다는 것은 망령된 것이요, 망령되면 그것을 믿을 사람이 없고, 그러면 전한 사람이 화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법언*에 '그 떳떳한 뜻을 전하고, 그 넘친 말을 전하지 않으면 대체로 온전하리라.' 했습니다. 또 기교로써 힘을 겨루는 사람은 항상 양에서 시작하여 음으로 끝나는데,* 심해지는 것은 기교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로써 술을 마시는 사람은 어지럽지 않게 시작하여 항상 어지럽게 끝나는데, 난동에 이르는 것은 기락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또한 그러해서 참된 것에서 시작해서 언제나 더러운 것으로 끝납니다. 시작은 간략하나 장차 그것이 끝날 무렵엔 반드시 커집니다. 말은 풍파이고, 행함은 참을 잃은 것입니다. 풍파는 움직이기 쉽고, 실상은 위태롭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분노하게 되는 것은 교묘한 말과 편벽된 말 때문입니다. 짐승은 죽을 때 아무렇게나 소리를 지르고, 기식이 불연하여 마음이 사나워지게 됩니다. 극심함이 심해지면 반드시 어질지 못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그러고도 그것이 그런 줄을 모릅니다. 진실로 그런 줄을 모른다면 어진 줄 모르게 누가 이를 끝내겠습니까? 그러므로 법언에 '영을 달리하지 마라, 성공을 서둘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도가 지나친 것은 보태는 것이요, 영을 달리해 성공을 서두는 것은 위태로운 일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 걸려 이루어지고, 악은 한번 이루어지면 미처 고치지 못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물을 따라 마음을 편히 하고 부득이한 것에 의지하여 마음을 닦으면 그만입니다. 어찌 꾸며서 하는 일로 이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명을 충실히 좇는 것만으로는 다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어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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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의 섭공은 사신이 되어 제나라로 떠나기 전에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왕께서는 제게 너무 힘겨운 일을 시키셨습니다. 아마도 제나라는 이리저리 둘러대며 일을 자꾸 미루려고만 할 것 같습니다. 필부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운데, 하물며 제왕을 설득한다는 것은 제게 너무 벅찬 일입니다. 제가 처해 있는 입장을 생각하면 몸이 타 들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언제인가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책임을 맡은 일이 실패로 끝날 경우 책임을 추궁당하게 되고, 처벌받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설사 성공한다해도 마음의 무거운 짐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으로 쓰러진다. 일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항상 무사 태평할 수 있는 것은 덕이 있는 사람뿐이다.' 저는 평소부터 극히 질소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땀이 나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사신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부터는 몸에 심한 열이 나서 얼음물을 마시지 않으면 못 견딜 지경입니다. 이렇듯 아직 제나라로 떠나기도 전에 병부터 앓게 되었습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죄를 추궁받을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되면 이중으로 화를 입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하로서 차마 못할 말이긴 하나 소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는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운명으로, 부자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의 심정이며, 누구든 이 심정을 던져버릴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규범으로,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어떤 나라에나 반드시 임금과 신하가 있기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군신 관계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이란 이 두 가지를 말합니다. 따라서 자식 된 사람은 어떤 곳에서든 부모를 좇아 부모의 안태를 도모해야만 효도라 할 수 있습니다. 신하 된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임금의 명령을 좇아 임금의 안태를 꽤해야만 충성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어났을 때의 마음을 따르게 되면 어떤 일에서든 감정을 이리저리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자식이 되고 신하가 되는 것이 내가 지닌 숙명이요 필연이라면, 자신을 잊고 주어진 조건에 따라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몸이 죽고 사는 것을 고민할 겨를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아무 생각 말고 사신으로 떠나십시오."
공자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내가 견문으로 얻은 지식을 조금 더 말하겠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사귈 경우, 이웃 나라끼리라면 직접 의사를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나를 상대할 경우엔 사로가 사신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신이 되어 양쪽이 모두 좋아할 이야기, 혹은 반대로 양쪽이 다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양쪽이 다 좋아할 만한, 혹은 양쪽이 다 싫어할 만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거짓을 섞고 진실을 감추기가 쉽습니다. 진실에 위배되는 말은 분쟁의 근원이 됩니다. 분쟁이 일어나며 사신은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심부름꾼은 진실을 옮기는 것, 심부름꾼의 허풍은 화의 근본'이라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비근한 예를 들면, 즐겁게 시작한 경기도 어느덧 열이 올라서 승리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면 좋지 못한 결과로 끝나기가 일쑤입니다. 장중한 분위기로 시작한 연회도 술잔이 거듭되면 어처구니없는 광태를 보이며 난장판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보면 만 가지를 알 수 있다고, 처음엔 신중히 나가다가도 어느 사이엔가 아무렇게나 하고 마는 것이 사람이 보통 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엔 간단한 것 같아도 어느 사이엔가 꼼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말이란 물결처럼 불안정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순간 쉽사리 변모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말을 전한 사람은 가끔 위험한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이 분노로 치닫게 되는 것은 말이 아첨이나 거짓으로 변모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죽게 되면 힘을 다해 울부짖으며 미쳐 날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지도 못했던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한번 탈선하면 그때는 그칠 수가 없게 됩니다. 격언에 '임금의 명령을 윤색하지 마라. 공을 세우려고 서둘러 꾀를 부리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말에 거짓이 섞이게 되고, 임금의 명령을 윤색하고 꾀를 부리면 일을 그르칠 뿐입니다. 큰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급히 서둘러 나쁜 결과를 가져오면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부디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운명에 거역하지 않고 자신을 자연에 내맡겨야만 참다운 자유와 도의 활동이 있게 됩니다. 그러니 선생은 결과를 생각하여 속을 썩이는 일이 없이, 임금의 의향을 그대로만 전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 섭공 자고: 성은 심, 이름은 저량. 초나라의 대부로서 섭의 현령을 지냈다. * 법언: 바른 도리로 법도가 되게 하는 말. '격언'이나 '속담'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 또 기교로서.... 끝나는데: 여기서 양은 힘으로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것을, 음은 은밀한 계략을 써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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