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마음의 재계 - 인간세
안회가 말했다.
"단정하고도 겸허하며, 근면하고도 순일하면 되겠습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아니다. 어떻게 되겠느냐? 위왕은 정기가 꽉 차 있어 심히 잘 변한다. 얼굴빛이 일정하지 않아 보통 사람으로 여길 수가 없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느끼는 바를 짐작하여 그의 마음을 충족시키려 한다. 이를 가리켜 한 점의 덕도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 것인데, 하물며 큰 덕을 이룰 수 있겠느냐? 그는 장차 변하지 않을 것이며, 겉으로는 동의해도 안으로는 고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저는 안으로 곧고 밖으로는 굽히며, 말을 하되 하늘에 견주어 하겠습니다. 안으로 곧다는 것은 하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천자나 저나 모두 하늘의 자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남이 좋아하기를 바랄 뿐, 남이 싫어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른바 사람들이 말하는 어린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늘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꿇어앉으며 팔을 굽히는 것은 남의 신하 된 사람의 예로서, 모두가 하는 일을 어찌 감히 하지 않겠습니까? 남이 하는 대로 따르면 사람들이 헐뜯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 사람과 함께 한다고 합니다. 말을 하되 하늘에 견주어 한다는 것은 옛사람과 함께 함을 말합니다. 그 말은 가르침과 꾸짖는 내용이지만, 옛날부터 있던 것이지 제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비록 고친다 해도 병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일러 옛사람과 함께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괜찮겠습니까?"
중니가 말했다.
"아니다, 어떻게 괜찮을 수 있겠느냐? 너무 정법*이 많아서 편치 못할 것이다. 하기야 거북한 대로 죄는 없을 테지만 이에 그칠 뿐, 그것이 어찌 교화시키는 데까지 미치겠느냐? 너는 아직도 네 마음에만 매달려 있다."
안회가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방법을 여쭙고자 합니다."
중니가 대답했다.
"재계해라. 내가 네게 말하겠는데, 마음으로써 하는 일이 그리 쉽겠느냐? 쉽다고 하는 자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본래 저희 집이 가난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매운 것을 먹지 않은지가 여러 달째 됩니다. 이러한 것을 재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제사 때의 재계지, 마음의 재계는 아니다."
"감히 마음의 재계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중니가 대답했다.
"너는 뜻을 하나로 해라. 듣기를 귀로써 하지 말고 마음으로 해라. 또한 듣기를 마음으로써 하지 말고 기로 해라. 듣는 것은 귀에서 끝나고 마음은 부*에 그친다. 기라는 것은 텅 빈 채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는 오로지 빈 것으로 모이니, 빈 것이 곧 마음의 재계다."
안회가 물었다.
"제가 일찍이 가르침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참으로 스스로가 저 자신이었습니다. 가르침을 얻고 나니 비로소 저 자신을 떠난 것 같습니다. 이를 허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충분하다. 내가 네게 말하겠다. 네가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 뛰논다 하더라도 그 이름을 느끼는 일이 없게 해라. 들어오면 울고, 들어오지 않으면 그친다. 문도 없고 담도 없으며, 부득이*라는 한 집에 살게 되면 그에 가까이 가게 된다. 자취를 끊기는 쉬워도 땅을 걸어다니지 않기는 어렵다.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면 거짓을 행하기가 쉽고, 하늘이 시키는 바에 따르면 거짓을 행하지 않게 된다. 날개 있는 것이 난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날개 없는 것이 난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앎이 있음으로써 안다는 말은 들었으나 앎이 없음으로써 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저 빈 것을 보건대 빈 방은 흰 것을 낳으며, 길상은 빈 것에 머문다. 그것이 아직 비어 있지 않음을 일러 좌치라 한다. 귀와 눈의 내통에 따라서 마음의 지를 밖으로 하면 장차 귀신도 와서 머물러 할 터인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만물의 조화다. 우와 순이 이를 바탕으로 하고, 복희와 궤거가 평생 동안 행한 바가 이것인데, 범인이야 더할 나위가 있겠느냐?"
******************************************************************************
"저는 절대로 지조를 굽히지도, 위왕을 업신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명예와 이익에 이끌리는 일없이 오로지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나. 위왕은 정기에 가득 찬 인물로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기분이 자주 변하여 신하들이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형편이라고 들었다. 그것을 다행으로 아는 위왕은 더욱 신하들의 의향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폭군을 상대로 그런 방법을 쓴다면 큰 덕을 이루기는커녕 작은 덕조차 이룰 수가 없다. 네가 뭐라 하든 위왕은 자신의 행동을 고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설사 네 말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외양뿐, 진심으로 반성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어떻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속으로는 본성을 해치는 일이 없고, 겉으로는 위왕을 거역하지 않으며, 직접적인 비난은 피하고 모두 옛사람의 말을 빌어서 의견을 표현하겠습니다. 이런 방법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속으로 본성을 해치는 것은 하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늘을 따르면 왕이나 저나 원래 구별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 의견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왕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달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늘을 따른다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겉으로 위왕을 거역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속을 따르는 것입니다. 홀을 잡고, 무릎을 꿇고 깊숙이 머리를 숙이는 것은 신하가 지켜야 할 예의로서, 신하 된 사람이면 누구나 하고 있는 일입니다. 저도 여기에 따를 작정입니다. 누구나 다 행하는 것이니 비난받을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속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옛사람의 말을 빌어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옛사람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임금을 비난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말이라도 옛사람의 말을 빌어 표현하면 형식적으로는 제 발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 과감한 발언을 한다 해도 시비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옛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래도 역시 안 되겠습니까?"
"그것 역시 좋지 않다. 너무 마음씀이 지나쳐서 잠시도 편할 때가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런 방법이라면 죄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교화한다는 중요한 목적은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 마음을 괴롭혀서 지혜를 짜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재계를 하는 것이 좋다. 알겠느냐?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성취시킬 수 없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배반하는 것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가난한 탓으로 저는 벌써 몇 달이나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미 재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사를 지낼 때의 그런 재계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마음의 재계다."
"마음의 재계란 무엇입니까?"
"일체의 유혹에서 벗어나 마음을 순일하게 갖는 것이다. 귀로 듣는 것보다 마음으로 듣는 것이 좋다. 또한 마음으로 듣는 것보다는 기로써 듣는 것이 좋다. 귀는 소리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뿐이고, 마음은 사상을 지각하는 데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로서 듣는다는 것은 모든 사상을 있는 그대로 무심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는 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히 나타나게 된다. 마음의 재계라는 것은 무심의 경지를 내 것으로 하는 일이다."
"저는 지금까지 너무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 앞에 서니 하찮은 저 따위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군요. 이제야 가르침을 받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 경지를 무심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그렇다, 그것으로 좋다, 회야. 세속에 동화되어 있으면서도 세속에 있음을 잊는 것이다. 위왕이 귀를 기울일 때는 마음껏 의론을 전개하는 것이 좋다. 또 위왕에게 그럴 생각이 없으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 좋다. 마음의 벽을 없애버리고 무를 내 마음으로 하여 오로지 자연에 몸을 맡기고, 자연대로 행동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걷지 않고 발자취를 남기지 않기는 쉬운 노릇이다. 그러나 걸으면서 발자취를 남기지 않기는 어렵다. 평범한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작위를 떠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하늘을 따라 자연에 몸을 맡기면 작위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날개가 있기에 새는 하늘을 난다. 그러나 날개를 버림으로써 참다운 앎을 얻을 수 있다. 앎이 있기에 인간은 앎에 의지하려 하나, 그것을 버려야만 참다운 앎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방이 텅 비어 있을수록 많은 빛이 들어치듯이 마음이 무심에 가까울수록 도의 활동이 높아진다.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는 한 잠시도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외계의 사물은 들리고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것을 앎에 맞추어 따지려 해서는 안 된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귀신조차 움직일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을 감동시키는 것은 말할 여지도 없다. 그리하여 만물은 그 덕에 감화되는 것이다. 우와 순, 복희씨, 궤거 같은 성인들도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평생을 두고 노력했는데, 하물며 성인이 아닌 한낱 범인이 무심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정법: 남을 바로잡으려는 말. * 부: 밖의 움직임에 부합시키는 것, 즉 마음으로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 부득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 즉 '자연' 또는 '자연의 법칙'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