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1 - 반덕진
제1부 독서일반론
제2장 독서,어떻게 할 것인가?
독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하나,우선 거시적인 독서계획에 관한 문제 (독서단계)와 미시적인 독서의 기술(독서방법)에 관한 문제로 나누어볼 수 있다
1.거시적 측면: 장.단기 독서계획
독서단계론적 측면에서 보면 일생 동안의 장.단기 독서계획이 중요하다. 독서는 일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어린 시절부터 문학이나 문자에 흥미를 갖고 그것에 의해 좀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독서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나 선생님이 독서를 지도할 때는 개인적 독서체험이 필요한데, 학생의 흥미나 개성이 다양하므로 똑같이 지도하기는 곤란하며, 세밀한 개별지도가 필요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그간 입시교육의 영향으로 국민학교 시절에 보는 아동문학과 위인전기 등이 고작이고, 중.고등학교에 오면 학과공부에 밀려 사실상 교양독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최근에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의 부활로 일선고교에 독서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이 정작 독서를 하려 할 때우선 당면하는 문제가 책의 선택과 시간의 문제다.이 문제에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육부나 대학당국,각 학교에서는 청소년에게 알맞은 체계적인 독서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 그 방법을 학생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공교육에 치우친 나머지 1학년에 이수하는 교양과정은 그 운영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고교시절에 입시라는 부담 때문에 독서는 대학으로 유보하지만,정작 자유로워져도 지적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소화력을 가진 시기에 적절한 영양분의 섭취를 위한 훈련과 절제는 필요하고도 유익한 일인데도 말이다. 대학생이 되어 지난 시기의 유보와 억제에서 해방된 학생들은 유보된 정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는 독서를 통해 인간의 역사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었던 정신들을 만나보며. 이정신들이 헤쳐나갔던 인간 삶의 구비와 역사의 굴곡들을 함께 하는 일이다. 책 속에는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비애,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철인의 지혜가 있다. 이 무궁한 세계로의 여행이 무거운 의무일 수는 없다. 그것은 양보할 수 없는 정신의 권리이자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될 삶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읽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옛날의 독서단계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사서오경을 4서부터 보고 나서 5경을 보며 그후에야 사서를 본다.
독서의 순서에서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먼저<소학>을 읽고,이어서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읽도록 하고 다음으로 <시경> <예경><서경> <역경> <춘추> 등의 5경을 읽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근사록> <가례> <이정전서> <주자대전> <어류> 등을 읽고 난 다음 여력이 있으면 사서를 읽도록 했다. 정약용의 경우고 이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서 그의 아들에게 보냄 편지에서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사서5경,또는 13경의 자구해석과 내용,이치를 분석하는 학문)공부를 하여 기초를 다진 후 사서를 섭렵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책의 수가 기하학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러한 추세는 계속될 전망인데,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책을 얼마만큼 읽어야 할 것이가 하는 경제적인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다시 말하면 한정된 시간과 예산 속에서 최소의 시간과 경비로 효율적인 독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 게도 그에 대한 분명하고 일률적인 대답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독자의 지적 관심과 직업적 필요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제약조건 하에서 자신의 절실한 지적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책부터 선택을 시작하여 점차 고전을 폭넓게 섭립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은 될수 있을 것이다.
2.미시적 측면: 구체적인 독서기술에 대하여 살펴본다
전통적인 독서방법이 대개 그렇듯 이이와 정약용 모두 정독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책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현대에는 모든 책을 정독할 수는 없다. 독자의 시간이나 책의 종류에 따라 적당한 방법을 취하면 되는데,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 중.고등학생들의 경우는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보다는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상의하여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대학생이나 일반인의 경우도 선배나 독서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자신의 시간과 경제력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유익하다. 독서의 방법은 책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있는데,여기서는 독서를 위한 텍스트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고전에 해당하는 책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그것은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다. 또한 고전 (고전의 개념에 대해서는 후술)은 가치를 인정받은 책이다. 너무 유명하여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착각하는 책이 고전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책이 어느 영역에 속하든 관계없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책이라면 일단은 고전의 가치를 인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고전의 독서를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우선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고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간다.
우선 그책의 서문이나 머릿말.그리고 목차를 주의 깊게 읽어서 그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순서의 배열을 조망해본 다음 본격적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읽어가는 도중에도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이 이 책의 전체구성 중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를 점검해가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그때그때 잘 모르는 용어가 나와 독서속도가 늦어지거나 중단하는 경우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면 중요한 문맥에 반복하여 나오게 마련이다. 문맥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면 어느덧 그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책에 나오는 중심개념은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된다. 단어,즉 용어는 읽어나가면서 표시를 해두었다가 나중에 정리하는 것도 편리한 방법이다. 그리고 어떤 논문에서는 중요개념을 논문앞에 미리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장치가 없는 경우는 독자가 표를 해두었다가 나중에 정리할 수도 있고,독서과정에 점차 개념이 명확해지면 전체를 파악하는 과정에 포함되어 이해된 것이기 때문에 중요개념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포착된 것으로 보아도 좋다. 중요개념은 대체로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를 문장론에서는 주제문이라 한다. 주제문에 해당하는 문장에는 밑줄을 그어두는 것이 기억의 재생을 위해 도움이 된다. 또한 주제문의 핵심개념이나 다른 주제문과의 관계를 간단히 메모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서관이나 다른 사람에게 빌린 책을 읽을 때는 따로 공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번거로움을 피하려면 자신이 책을 사서 읽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2) 책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독서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어떤 책이든지 내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다. 글을 써가는 방식 자체가 내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역사를 서술하자면 구체적인 자료를 모아 객관성있는 서술을 하고 나중에 사가의 의미부여가 이루어진다. 시를 쓰는 경우는 어떤 대사에 대한 직관적인 파악이 앞선다.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러한 직관을 운율이나 이미지를 통한 표현한다. 과학적 영역의 책은 자료의 수집과 검토,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가설의 수립,가설에 대한 검증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사고과정이 책의 내적인 논리다.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도 이러한 내적 논리에 충실하게 읽는 것이 원칙이다. 시집을 읽을 경우와 과학이론을 읽을 경우는 반법이 다르다. 각각 영역의 내적 논리에 따라 독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글의 양면성.즉 논리와 정서를 함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의 행동에 어떤 동기가 있는 것처럼 책에도 어떤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선 책을 쓴 사람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있고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글을 읽는 동기가 있다. 그러한 동기가 바닥에 깔리지 않는 순수한 논리나 이론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실 어떤 윈리를 발견하여 글로 쓸 만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거기에는 커다란 기쁨이 안으로 술렁이게 마련이다. 인간의 그러한 정신영역을 일반적으로 정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글을 정서적이다. 논리적이다 하는 식으로 양분하는 사고에 젖어 있다. 그러나 책은 흔하지 않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학국역사> 첫머리는 응혼한 기상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술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도 같다. 정서와 논리 두 요소는 어떤 책에도 함께 나타나게 된다. 논리만으로 구성된 책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작자의 진리추구의 열정이라든지 양심의 실천에 드러나는 고뇌를 통해 정서적인 감동을 얻게 된다. 책의 그러한 양면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독서에 성공하는 길이다. 그런데 정서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이 이따금 소홀히 취급되는 것을 볼수 있다.이것은 독서가 지나치게 실용주의로 기울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서는 책을 읽어가면서 주제를 투여하는 훈련을 거쳐 성장한다.
(4)객관적 사실과 저자의 주관적 판단을 구분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책은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데에 따라 읽는 목적도 달라진다. 지식을 얻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정신차원의 문제를 음미하고 그 결과를 나의 삶을 방향짓는 데 견주어 볼수 있는 책도 있다. 또는 주로 상상의 즐거움을 겨냥하는 문학작품 같은 책도 있다. 책이 성격에 따라 그 내용을 정리해나가야 한다. 사실을 중심으로 한 책은 지적인 작업으로 내용을 정리해나가야 한다. 허구적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책은 주제를 허구적인 양상으로 투여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정신병의 초기증세라고 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다든지 사실과 허구를 혼동한다면 이는 독서의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책의 성격을 파악하고 이해할 부분과 해석할 부분을 바르게 가려내는 작업이 책읽기 방법의 중요한 요건이라 할 수 있다.
(5)독서 후에는 반드시 핵심적인 내용을 메모해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읽었던 내용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망각되게 마련이다. 독서후에는 반드시,그것도 즉시 햄심적인 내용을 메모해두는 일이 필요하다. 메모해도면 나중에 다시 보아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필자의 독서체험으로 볼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책을 읽을 때는 형광펜을 들고 중요하고 공감이 간다거나,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체크하곤 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해두는 습관을 들였는데, 아마 이책이 나오게 된것도 이러한 메모하는 습관 덕분에 아닌가 한다.
제3장 독서,무엇을 읽을 것인가?
우선 고전이란 무엇인가? 즉 고전의 개념을 정의해보자.
1.고전의 정의
<고전>이란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그 가치가 검증된 작품> 또는 <고유의 탁월한 성질 덕분에 문학사나 사상사에서 오랫동안 널리 공인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최상급의 작품>을 말한다.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은 그 작가의 당대나 그가 살았던 지역에서만 높이 평가되어온 것이 아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진가가 검증되어왔으며, 그 어떤 새로운 작품들에 의해서도 대체가 쉽지 않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고전의 선정기준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합의를 볼 수 있는 기준이 있으리라 본다.
2.<동서고전 200선>의 선정경위
고전 200선 선정의 동기에 대해 서울대학교즉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간 우리의 학교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질적으로 향상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알맞은 교양교육은 오히려 소홀히 취급되어왔으며 그 상당한 원인이 고전교육의 부재에 있었음을 직시하고 고전읽기의 활성화를 통해 대학의 교양교육을 내실화하고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을 확대하는 데있다.>> <<그리고 장차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할 학생들에게 읽혀야 한다고 여겨지는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선정하고자 했과,나아가 우리 나라 독서운동을 위한 지표로서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목적이 있다.>>
3.<동서고전 200선>의 선정절차
고전 200선 선정절차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200선의 목록작성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일련의 세미나를 통해 고전에 대한 원론적 문제와 고전읽기에 관계되는 실제적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세계의 유수한 고전총서 목록과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적성된 고전목록을 두루 수집하고,교내의 각 분야 교수님들에게 널리 설문지를 돌려 필독고전의 목록을 추천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종목록 <동서고전200선>은 위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연구위원들이 10여 차례의 회의와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선정한 것이다. 단, 그후에 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발표한 목록이 최종목록이 아니어서 목록의 변경은 추후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4.고전읽기의 중요성
우리는 현재 과학의 무한한 확대와 세분화,근대산업사회의 능률 제일주의의 구현 등으로 자아확장에만 열을 올리는 테크놀로지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주의적 교양은 그 역할과 기능을 잃는 지 오래인데,이 시점에서 왜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 다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고전은 시공을 초월한 인류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고전은 역사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를 함께하고 있다. (2) 고전은 인간경험의 다양한 폭과 깊이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를 다양하게 넘나들면서 선인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3)창조적 사유체계 형성에 도움을 준다. 창조적 상상력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기능으로, 이 기능은 모든 위대한 사상과 문학의 근본이며 또한 고갈될 줄 모르는 원천이다. 대학생들은 스스로 학문을 개척해나가기 위한 기초를 닦는 단계에 있으므로 특히 창조적 과업을 위한 사고과정을 이해할 내용을 지닌 고전은 유익하다. (4)고전과의 만남은 인간의 삶의 방식에 의해 우리가 지녀왔던 선험적 전제에 물음을 던져서 우리가 빠져 있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하고, 극에서 극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유형과 이들이 보여주는 사고와 행위 등을 적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5)지적 성장을 위한 자극이 된다. 고전내용 그 자체가 직접적인 학습의 소재를 이루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 이 하나의 범례 또는 암시를 제공함으로써 이를 통해 그 어떤 깨달음의 계기가 마련된다면 이것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교육적 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6)인간이 주어진 조건에서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고 구현하려는 체계적인 경험을 제공해준다. 과학적 사고의 폭과 깊이를 체득하고 폭넓은 사물이해의 방식을 얻는다.
이처럼 우리가 고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풍부한 교양은 과거의 정신적 창조와 연결되어 있으며 살의 내면적인 풍요의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한 의식은 내면의식의 확정에 대한 정열적인 노력이며 하나의 새로운 인간형.인간성의 이상을 창조하는 데 대한 노력이다.
5.고전에 대한 관심의 역사적 실례
그렇다고 고전에 대한 독서가 어느 한 개인의 자기함양을 위한 방편이나 집단의 가치판단을 위한 준거로만 원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혹은 한 민족이 벌이는 분예운동 및 일반 문화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 을 할 수 있다. 그 전형적인 사례를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을 수 있다. <르네상스>라는 낱말의 어의에서 암시되어 있는 대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의 <재생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그들에게 정신적.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된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고전들이었다. 이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1천여 년에 걸친 기독교 정신의 지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늘에 묻혀 있어야 했던 고대의 고적들을 발굴해내어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자기들의 정신적 지주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므로 서양의 역사에서 인본주의적 근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오랫동안 인간의 의식 위에 군림해왔던 신본주의가 이 시대에 이르러 인본주의의 사상으로 전향함에 있어서 당대의 학자들이 열심히 찾아서 읽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은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 풍미하고 있던 인간중심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시대의 시인. 화가. 건축가들은 당대의 사람들이 고전의 연구를 통해서 확립한 인간관과 세계관을 각각 자기 나름대로 원용하면서 예술적 창작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배경이 있었기에 서양의 역사에서 가장 신명나는 <문예부흥>이라는 문화운동이 성립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18세기 말 괴테나 훔볼트 등의 인문주의자들은 그들의 삶의 모범을 고대 그리스 인에 두었다. 계몽사상의 합리주의와 기게적인 세계관에 대한 반항으로서,그들은 고전적 교양의 존중,인간성 및 인간적 본서의 존중,그들의 교양이상은 인간의 전면적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고전고대인 속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 당시 고대전성기의 예술과 문학이 연구되었으며 이 연구에 의해 얻어진 이상형으 인간상과 문화상을 규범으로 하여 현대인의 삶과 문화를 변혁하려는 의도를 그들은 갖고 있었다. 고대고전을 모범으로 삼음에 있어서 그들은 모든 역사적 과정은 불문에 부치고 고대와 현대 사이의 방대한 시간차를 뛰어넘는다. 괴테는 2천 년의 시간차를 어넘어 직접 호메로스를 호홉했고. 그에 의해 호메로스는 언제나 우리 앞에 새로운 존재로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각계각층에서 드러나고 있는 도덕의 타락 및 규범의 와해를 예방하거나 바로잡는 길잡이로 고전의 전범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형식 우위주의 표피문화, 허위의식, 경박한 도피주의, 건전한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감각주의, 물질주의, 배금주의, 상업주의 같은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데에도 여기에 있는 고전들은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은 폭력으로 인간의 육체를 억압시킨 자보다 진리의 힘으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