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참다운 자유 - 제물론
구작자*가 장오자에게 물었다.
"저는 다른 선생님께 '성인은 속된 일에 종사하지 않고,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해를 피하려 하지 않고, 구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며, 도덕 규범을 따르지도 않는다.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것이 있고, 말을 하여도 말하려는 바가 없다. 성인은 이렇게 속세 밖에서 노닌다.'고 들었으나 선생님은 그것을 꿈 같은 말이라고 부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성인의 영묘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오자가 대답했다.
"그 말은 황제*가 들어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물며 공자가 어찌 이를 알겠느냐? 또 너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다. 달걀을 보고 닭*을 요구하며, 활을 보고 올빼미 구이를 찾는 것과 같다. 내 시험 삼아 너에게 망령되이 말하겠으니 너도 그렇게 듣거라. 성인은 해와 달을 이웃하여 우주를 옆에 끼고서 노닌다. 또한 만물과 하나가 되어 그 혼돈 속에 몸을 맡기고, 천한 것도 존귀하게 여긴다. 뭇 사람들은 잘난 체하지만 성인은 오히려 어리석다. 만물을 있는 그대로 모두 옳다며 붙들어 포용한다. 삶에 집착하는 것이 잘못이 아님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일찍 고향을 떠난 사람이 돌아갈 곳을 모르는 것이 아님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여희는 애에 사는 봉인의 딸로서, 진나라에 처음 갔을 때는 너무나 울어서 옷깃을 흠뻑 적셨다. 그러나 임금의 처소에서 임금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고기를 먹게 되자 그 전에 운 것을 후회했다. 죽은 사람이, 그가 죽기 전에 가졌던 삶의 애착심에 대해서 뉘우치지 않을 것을 내가 어떻게 알 것인가? 꿈에 술을 마신 사람이 아침에 울부짖으며, 꿈에 울부짖으며 운 사람이 아침에 사냥을 나가기도 한다. 꿈을 꿀 때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꿈속에서 그 꿈의 길흉을 점치지만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안다. 오직 크게 깨달은 뒤에야 인생이 긴 꿈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귀한 것이니 천한 것이니 한다*. 답답한 일이다. 공자와 너는 다 꿈을 꾸고 있다. 내가 너에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이다. 이 말은 매우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대성인을 만세 뒤에 만난다면 오히려 일찍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나는 너와 논쟁을 벌였다. 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너를 이기지 못한다면, 과연 네가 옳고 내가 그른 것이겠느냐? 내가 너를 이기고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과연 내가 옳고 네가 그른 것이겠느냐? 혹은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은 그른 것이냐? 또는 다 옳거나 다 그른 것이냐? 나와 네가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면 누가 바른 판정을 내리겠느냐? 너와 같은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너와 같기 때문에 올바를 수 없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나와 같기 때문에 또한 올바를 수가 없다.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또한 올바를 수 없다.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 판정케 하면 이미 우리와 같기 때문에 바르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면 나와 너와 제삼자가 모두 알 수 없게 된다. 그러한 판정을 기다린다는 것은 변화하는 말소리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만약 기대하지 않을 바에는 천예로서 화합하고, 이것에 의해 무한한 변화에 몸을 맡긴다. 대립이 없는 무아의 경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느냐?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 그런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옳은 것이 만약 진실로 옳은 것이라면, 옳은 것은 옳지 않은 것과 다름을, 그런 것이 진실로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다름을 말할 필요가 없다. 세월과 옳음을 잊고 무경에서 노닐면 일체가 무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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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작자가 장오자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성인은 속된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 이익을 추구하거나 손해를 회피하지도 않는다. 애써 구하려 하지 않고, 세상의 도덕을 따르지 않는다. 말함이 없이 말하고, 말을 해도 생각이 없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을 초월해 있는 존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이를 인간이 동경하는 것 중 하나일 뿐,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부정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의 이러한 모습이 영원한 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오자가 대답했다.
"황제 같은 현인도 혼동할 터인데, 공자 따위가 무엇을 알겠느냐? 너는 생각이 단순한 것 같다. 그 정도의 설명으로 벌써 도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구나. 달걀을 보고 닭을 찾으며, 활을 보고 올빼미 구이를 달라는 것과 같다. 내가 망령되이 말하겠으니 들어보아라. 성인의 큰 덕은 일월과 같이 우주를 옆에 끼고 노니는 정도다. 만물과 한 덩어리가 되어 몸을 혼돈 속에 내맡기고, 귀천과 상하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식에 얽매여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성인은 재주와 지혜를 버린다. 성인은 유구한 천지의 운행에 몸을 맡기나 변하지 않으며, 만물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여 자기 안에 포함한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모습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삶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나그네가 고향에 돌아감을 잊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봉인의 딸 여희가 처음 진나라로 갔을 때는 눈물로 나날을 보냈으나, 후궁이 되어 임금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자 전에 울었던 일이 어리석게 생각되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 역시 일찍이 삶에 집착하였던 일을 어리석었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또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실컷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서 소리 내어 울고, 꿈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사냥을 즐기는 일도 있다.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꿈속에서 꿈의 길흉을 점치는 일도 있지만, 잠이 깬 뒤에는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인생도 긴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같으며, 참된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만이 그것이 꿈인 줄 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사람들도 그들이 깨어 있다고 믿기에 사소한 지식을 과시하고, 귀천의 차별을 일삼는 것이다. 나의 말이 무척 이상하게 들릴 것이나 당연한 일이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대성인은 수십만 년에 한 사람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도 믿을 수 없다. 지금 내가 너와 논쟁하고 있지만, 만일 네가 나를 앞서게 된다면 너의 말이 옳고 내 말이 그른 것이 되겠느냐? 반대로 내가 앞선다면 나의 말이 옳고 네가 그른 것이냐?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 것이겠느냐? 양쪽이 다 옳거나, 아니면 양쪽이 다 그른 것이냐? 당사자인 우리 두 사람이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제삼자에게 부탁한다 해도 그 역시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만일 판정하는 사람이 너와 같은 의견이라면 그는 벌써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쪽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판정을 내리게 하면 양쪽이 다 부정될 것이 틀림없다. 또 양쪽 모두와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면 판정을 내리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건 간에 옳고 그른 것의 판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구에게 판정을 기대하겠느냐? 결국 어느 것이 옳고 옳지 못하다고 논해보아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런 바에야 이러한 일체의 대립을 그대로 방치해두고, 대립이 없는 경지에 내맡겨두는 것이야말로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참다운 자유가 아니겠느냐? 옳으니 옳지 않으니, 그러니 그렇지 않으니 하고 구별할 것이 아니라, 일체를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옳은 것은 어디까지나 옳고,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는 없다. 생사와 시비를 초월하여 무한한 천지의 운행에 몸을 맡기는 것만이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 구작자: 장자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 장오자 역시 마찬가지다. * 황제: 성은 공손. 소전씨의 아들로 복의씨, 신농씨와 더불어 삼황이라 일컬어진다. * 닭: 원문은 시야이다. 닭이 밤이 새는 것을 알리는 데서 비롯되었다. * 귀한 것이니 천한 것이니 한다: 여기서 군은 귀한 것을, 목은 천한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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