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1 - 반덕진
제1부 독서일반론
제1장 독서,왜 필요한가?
사대부 사흘만 글을 읽지 않으면 거울보기가 민망하다 - 황산곡(소동파의 친구)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이전에 비해 크게 다양화되어가고 있다. 특히 문자 이외의 라디오.텔레비전.비디오.컴퓨터 등 정보의 전달수단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자를 통한 독서가 인간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도전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에 비해 책이 주는 유익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선 독서를 통해서는 나만의 절대적인 공간 속에서 저자와 대화를 하여 그들의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고,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인생에서 직면하게 되는 여러 문제나 의문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자기도 모르게 확대된다. 또한 선악의 2분법적인 인간관에서 해방되어 폭넓은 인간 이해력이 가능해지고,욕구불만이나 갈등을 참고 그것을 승화시켜나가는 정서순화력도 값진 소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매체에 비해서 독자가 가지는 자유의 허용 폭이 넓다는 것이다.즉 읽다가 잊어버린 내용은 다시 찾아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고,읽다가 이해되지 않으면 멈추고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유도 허용된다. 이러한 자유는 독자 내면에 은밀한 공간을 마련하고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읽기를 중단하고 내용을 반추해볼 수도 있고,이미 읽은 결과를 종합하고 비판해 볼 수도 있다.
또한 책은 언어가 가지는 시간적.공간적 세약성을 뛰어넘는다. 이러한 간접성을 통해 유성언어의 제약성을 벗어나고 문화의 전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독서는 대화의 광장에 나서지 않고도 의식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점에서 독서를 현상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화적 실천의 한 양상으로 파악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공헌한 사람들 중에는 평소 책을 가까이한 경우가 많다. 이는 책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는데, 한 개인의 독서체험이 그의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다. 즉,운명적인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광범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친 성격은 몰론이고,다윈의 <진화론>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 등은 한 권의 책이 인류역사를 바꾼 경우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독서현실은 어떠한가? 그간 우리의 학교교육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질적으로 향상되어왔음에도,특히 장기간에 걸쳐 중등교육이 대학입학시험을 위한 준비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고 대학의 교양교육도 대부분 피상적이고 명목적인 수준에서 행해져왔다. 이에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대학 수학능력시험과 논리적 사고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본고사 논술시험이 실시됨에 따라 사고력 신장을 위한 독서능력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으며,대학에서는 그간 지나치게 전문교육을 중시함에 따라 참된 인간성을 결여한 전문가들을 양성해온 데 대한 자기반성으로 전인적 인간상을 위한 평생교육 차윈에서 독서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독서취향에 있어서도 그동안 우리 사회의 독서는 지나치게 정신주의적인 경향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실용주의 경향을 띠어 왔다. 이러한 양극적인 대립현상은 경코 바람직하지 않다. 독서는 통합적인 정신작용이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이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고 지혜를 터득하여 삶의 가치를 감동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실용성과 정신적인 가치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목적은 개별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수행된다. 때문에 독서가 실제적인 것이라는 실용성을 벗어나 독서 자체가 삶의 한 과정이고 실천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그러므로 독서를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는 생각도,지식의 획득과 정보의 습득을 위해 이루어지는 노동이라는 생각도 각각 일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독서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1.인간과 자연에 존재하는 참된 진리를 발견하여 삶의 지혜를 체득
요즘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인 어떤 책에서 작가는 <<만약 내가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책 속에 묻혀 있는 진리를 모르고 저 세상으로 갈 뻔했다. 나를 5년 동안이나 감옥에 보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고 술회하고 있다. 감옥에 가지 않고 사회생활을 계속했더라면 독서의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책 속에 이런 저런 지혜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상당히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가슴에 무언가 와닿는다. 그렇다. 책 속에는 무한한 진리가 묻혀 있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책을 펴는 자에게 진리의 궁전은 개방되어 있다. 그러기에 역사적으로 독서를 국가적 차원에서 권장한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의 최고의 학술기관인 집현전(홍문관)에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20여 명의 소장학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개인적으로는 산사에서 장기간 독서에 몰두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이것을 <사가독서제라 하는데,아마도 번잡한 서울생활에서 벗어나 모든 잡념을 멀리한 채 오직 책 속에 묻혀 있는 진리탐색에 몰두하게 하여 국가경영의 철학과 지혜를 얻고자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가 책에서 얻는 지혜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지혜에 참여한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고 인간정신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고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도를 따르는 이들은 지혜를 얻기 위해 고행을 한다. 독서인의 경우 그러한 고행까지는 요구되지는 않는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책에서 얻어낼 수 있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위대한 지혜의 소유자인 선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단지 저자의 의도를 파악 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저자의 지혜를 내 사유의 내용으로 삼는 가운데 저자의 자아와 나의 자아의 뜨거운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자아를 손상시키지 않고 나의 자아를 주체적으로 세워나갈 수 있다. 이처럼 간접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사유방법이란 독서 말고는 그예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이해의 차윈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체험의 양태라 해야 옳다. 그렇게 우리는 책에서 감동을 발견하게 되고 지식과 지혜는 감동을 통해 우리의 인격으로 정 된다.
2.인류 문화유산에 대한 계승과 새로운 정보와 사상의 습득
우선 우리는 책에서 지식을 얻는다. 지식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경제지식.경영지식.법률지식 등 실제적인 지식을 우선 들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어떤 일을 하는 데 그 효용이 직접 나타난다. 과거에는 학문이나 교양을 위한 독서에 치우쳤으나 현대에는 그에 못지않게 실용적 목적의 독서도 증가하고 있는데,주로 신간서적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문학.철학.사상 등의 지식처럼 실용성에 있어 서는 직접적이 아닌 경우도 있는데 이는 교양적인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양에 속하는 지식은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어떤 사태를 판단하는 데 준거가 된다. 이러한 지식은 도구적인 속성보다는 지식 그 자체를 갖추는 것이 목적이 되기도 한다. 이는 독서의 실용적 목적과 교양적 목적을 함께 갖춘 것으로 볼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개인의 사색을 통해 본래의 차원을 능가하여 지혜의 차원으로 상승된다.
현대인에게 있어 교양은 단순한 역사적인 지식에 관한 교양이 아니고 하나의 결단,하나의 행위가 수반되는 교양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여기 있다. 현대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대의 삶의 욕구에서 출발하여 동시에 현대를 영원의 과제로 인도하기 위한 능동적인 규범으로서의 교양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인격형성이나 학문적 연구의 다양한 단계에 있는 젊은이들이 학문에 있어서 확정된 성과보다는 도리어 철학이나 문학에 있어서의 여러 문제에 직면케 하여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면, 그 결과로 이 젊은이들에게 한편으로는 학문연구 그 자체를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연구의 시야를 확대시켜주고,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세계를 정복하게 될 때에 그들이 사용하게 될 지적 장치,즉 교양에 대해 일련의 추진력을 부여하게 할 것이다.
3.삶의 가치의 발견과 삶의 질의 향상
독서를 통해 우리는 삶의 깊이와 폭을 확충한다. 이는 독서 가운데 느끼는 감동의 차원이다. 그러한 감동을 통해 우리는 삶의 깊이와 폭을 확충한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가운데 감수성을 확대해나간다. 현대문명의 위기 중 하나로 감수성의 분열을 들곤 한다.감수성의 분열이란 영국의시인이며 비평가인 엘리어트의 주장인데, 시인의 감정이 정연한 형식으로 형상화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감수성의 분열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주체가 내세우는 감정의 논리와 감정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개인의 자아 개념이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분열을 통합해줄 수 있는 방법가운데 하나가 독서이다. 독서를 통해 감수성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의 논리적인 삶에 정서적인 삶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삭막한 시대일수록 한 편의 서정시가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식은 상상력이나 감정이 결부되지 않고서는 전달되지 않는다. 지식에는 주체를 통한 역동적 작용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수립해준다는 점에서다. 현대인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데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어서 고민하고 방황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조직화되면서 개인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거대한 조직사회의 한 부품으로 인간의 가치가 전락한 것이다. 그 결과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있는 삶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확실한 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다른 말로 정체성의 위기라 한다.
인간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의 질곡에서 벗어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독서다. 인간존재의 의의를 확인하고 내 자신이 그러한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힘은 독서가 인간형성을 위해 기여한다는 그 이상의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자기존중의 감성이 성숙되어야 인간이 인간을 무시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그러한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독서가 삶의 질을 높여주려면 부단한 자기실현이 요구된다. 삶에서 실천이 없이 다만 책을 읽기만 한다고 해서 올바른 독서를 했다고 하기 어렵다. 독서는 근본적으로 남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쇼펜하우어가 남이 쓴 책만 읽고 사색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고 한 것은 독서가 남의 생각을 내가 대신하는 그러한 특성을 지적한 것이다. 주체의 적극적이고 자박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작가의 생각이 나의 생각의 도가니 안에서 녹아 하나가 되었을 때 진정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독서행위가 일방적인 수용이면서 독자 자신의 창조적인 정신작업이라는 것은 독서과정에서 주체와 객체의 통일인 정신적 융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독서가 학교교육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평생의 과업이라는 점이다. 학교교육이 끝난 다음에는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읽을 책을 택하고 책 읽는 방법을 모색하는 가운데 점점 독서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다른 말로 독서의 자기교육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거나 완결된 것이라기보다는 교육받은 사람 스스로 그러한 교육을 자신을 향해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과정적이다. 이는 독서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리로 작용한다. 스스로의 독서는 몰론 다른 사람의 독서를 부추기고 다른 독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독서의 깊이가 확보되고 폭이 넓어진다.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결국 독서를 통한 문화사회를 이룩하자는 이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는 인류사회의 과업이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