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아는 것과 모르는 것 - 제물론
설결*이 왕예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만물이 똑같이 옳다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느냐?" "선생님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느냐?" "그러면 만물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느냐? 그러나 시험 삼아 말해보겠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한 내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겠느냐? 시험 삼아 또 네게 묻겠다. 사람은 습기찬 곳에서 자면 허리가 병들어 한쪽을 못 쓰게 되지만 미꾸라지도 그렇더냐?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면 무서움에 떨고 두려워하지만 원숭이도 그렇더냐? 셋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거처임을 알겠느냐?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달다고 하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즐긴다. 넷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맛인지 알겠느냐? 원숭이는 편저를 암컷으로 삼고, 고라니는 사슴과 사귀며, 미꾸라지는 고기와 논다. 사람들은 모장*과 여희*를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고기가 보면 깊이 숨고, 새가 보면 높이 날아가며, 사슴이 보면 급히 달아난다. 넷 중에서 어느 것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아름다움이겠느냐? 내가 보기에는 인의의 근본이나 시비의 불분명함이 어수선하게 한데 섞여 있어서 어지럽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가릴 수 있겠느냐?"
설결이 물었다.
"선생님은 이해를 가릴 수 없다 하시는데, 그렇다면 지인은 원래 이해도 모르는 것입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지인은 신이다. 큰 계곡이 불타도 그를 뜨겁게 하지 못하고, 하수와 한수가 얼어도 그를 차갑게 하지 못한다. 격렬한 우뢰가 산을 허물고,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그를 놀라게 하지 못한다. 지인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몰아 천지 밖에서 노닌다. 생사도 그를 변하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이해를 따지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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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결이 스승인 왕예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만물이 모두 한결같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시면, 적어도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것만은 알고 계시는군요."
"그것도 모르지." "그러면 일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계십니까?"
"그것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지나치게 판단에 집착해 있는 모양이니,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런대로 말을 해보겠다. 대체로 인간의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며, 모른다고 단정한 것이 실은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험 삼아 네게 물어보겠다. 사람은 축축한 곳에서 자면 허리를 앓아 반신 불수가 되고 말지만, 미꾸라지는 어떻더냐? 또 사람은 높은 나무에 올라가면 무서워서 덜덜 떨지만 원숭이는 어떻더냐? 이 셋의 거처에 대해 어느 것이 올바른 거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소나 돼지의 고기를 맛있게 먹지만 사슴은 들판의 풀을 좋아한다. 지네는 뱀을 진미로 알고 있지만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는다. 그러나 이 넷의 맛에 대해서 어느 것이 올바른 맛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또 있다. 원숭이는 편저라는 손이 긴 원숭이를 암컷으로 하고, 고라니는 사슴과 사귀며, 미꾸라지는 물고기들과 어울려 논다. 모장과 여희가 사람의 눈에는 절세의 미인으로 보이지만 물고기는 이들을 보면 무서워서 물 속 깊숙이 숨어버리고, 새는 놀라 하늘 높이 날아가며, 사슴은 허둥지둥 달아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 넷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느 것이 올바른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보기에는 인의를 논하고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애매하기만 하니 어떻게 구분할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
"선생님은 시비나 이해를 가릴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럼 지인(도에 도달한 사람)은 원래 이해 같은 것을 모르는 존재입니까?" "지인은 영묘한 존재다. 큰 계곡이 불타도 뜨거움을 모르고, 큰 강물이 얼어붙어도 추운 것을 모른다. 산을 가를 듯한 우레나 바다를 뒤집을 듯한 폭풍에도 놀라지 않는다. 지인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몰아 이 세상 밖에서 노닌다. 그의 몸이 생사를 초월해 있는데, 하물며 하찮은 이해 득실을 따지겠느냐?"
* 설결: 요임금 시대의 현자로서, 왕예의 제자. * 모장: 춘추 시대 월왕의 총희. * 여희: 춘추 시대 진나라 헌공의 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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