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내편
포인과 시축 - 소요유
요*가 허유*에게 천하를 사양하며 말했다.
"해와 달이 나와 있는데 횃불을 끄지 않으면 그것이 빛을 발하기 어렵지 않겠소? 때 맞추어 비가 왔는데도 물을 준다면 또한 헛되지 않겠소? 선생이 천자가 되면 천하가 잘 될 것이오. 내가 다스리는 것은 나 스스로 보기에도 모자라오. 청컨대 천하를 맡으시오." 허유가 말했다.
"선생이 다스리니 천하는 이미 다스려졌소. 그런데도 내가 선생을 대신한다면 나는 장차 이름만을 바라는 것이 될 것이오. 이름이란 실상의 부수물일 뿐인데, 내가 장차 부수물이 되겠소? 뱁새는 깊은 숲속에 집을 짓지만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고, 두더지는 하수를 마셔도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소. 돌아가시오. 내게는 천하가 소용이 없소. 포인이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시축*이 술통과 도마를 넘어가 대신하지는 않는 법이오."
******************************************************************************
요가 허유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태양이 떠올라 있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는 것은 헛된 짓이오. 또 때맞추어 비가 땅을 흠뻑 적셔주었는데도 논밭에 물을 주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 아니겠소? 선생 같은 분이 나타났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천자의 지위에 앉아 있겠소? 천자의 자리를 받아주시오."
"지금도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있소. 그러한 지금 내가 새삼스러이 천자가 된다면 나는 천자라는 이름을 바라는 것이 되지 않겠소? 이름이란 실상의 부수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나더러 부수물이 되라는 말씀이오? 뱁새는 넓은 숲속에 집을 짓지만 나뭇가지 한 개를 필요로 할뿐이며,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만 차면 족한 것이오. 부디 분부를 거두어주시오. 천하가 주어져도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소. 비록 음식을 만드는 포인이 제사 음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시축이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나가지는 않는 법이오."
* 요: 태고의 성제로서 전설상의 인물. 아들 단주가 어리석어 순에게 양위하였다고 한다. * 허유: 전설상의 인물.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귀가 더러워졌다 하여 영천의 물에 귀를 씻고 기산에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 시축: 시는 '신주' 또는 '맡아 한다'는 뜻이다. 축은 '빈다'는 뜻도 되고, '제사 음식 차리는 일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흔히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로 풀이한다.
요순도 발톱의 때 - 소요유
견오*가 연숙에게 물었다.
"접여*의 말을 들으면 황당하고 앞뒤가 없소. 나는 그 말이 놀랍고 두려웠소. 마치 하수의 끝이 없는 것 같았고, 큰 격차*가 있어서 인정에 가깝지가 않았소." 연숙이 물었다. "그 말은 어떠하였소?" "'묘고야란 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빙설 같고 부드럽기는 처녀와 같다. 곡식을 먹지 않고 바람을 호흡하며, 이슬을 마신다. 구름을 타고 비룡을 몰아 사해 밖에서 논다. 그 신이 뭉쳐 만물을 병들지 않게 하고, 그해 곡식을 익힌다.'라고 합디다. 이 때문에 나는 그가 미친 것으로 생각하고 믿지 않았소." 연숙이 말했다. "그렇소. 장님은 색깔을 볼 수 없고, 귀머거리는 쇠북소리를 들을 수 없소. 어찌 형체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겠소? 정신에도 또한 그런 부류가 있으니, 그 말이 지금 그대를 두고 한 말 같소. 신인의 덕은 장차 만물을 뒤덮을 것이오. 일세를 난에서 건진다 한들 누가 천하를 문제 삼겠소? 물질은 신인을 상하게 할 수 없소. 큰 홍수가 하늘에 닿아도 빠지지 않고, 큰 가뭄에 쇠와 돌이 녹고, 흙과 산이 타도 뜨거워하지 않소. 바로 먼지와 때와 쭉정이와 겨로도 요와 순*을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이오. 어찌 물건을 가지고 문제 삼겠소?"
*****************************************************************************
견오가 연숙에게 말했다.
"접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떻게나 떠벌리는지, 어디까지가 이치에 닿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소. 정말 질리고 말았소. 마치 구름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뿐이라서, 보통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요." "대체 어떤 이야기였소?" "어디 한번 들어보겠소? 그의 과장은 이런 정도요. '묘고야란 산에 신인이 사는데, 살결은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처럼 나긋나긋하다. 바람을 받아들이고 이슬을 마실 뿐, 곡식 같은 것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어떤 때는 구름을 타고, 또 어떤 때는 용을 타고 우주 밖에서 노닌다. 별로 하는 일은 없지만, 신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입거나 병이 든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온갖 곡식이 다 잘 익는다.' 그의 말은 모두 이런 식이오. 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서 도저히 곧이 들리지가 않았소." 연숙이 말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소. 속담에 '장님에게는 아름다운 색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는 아름다운 가락이 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선생이 바로 그렇구려. 신인이라 불리는 사람의 덕은 이 우주를 뒤덮고 있소. 보잘것없는 천하를 다스리면서 아둥바둥하는 인간과는 근본이 다르단 말이오. 또 신인은 어떤 것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존재요. 물이 하늘까지 닿을 듯한 홍수에도 신인은 빠지지 않소. 쇠와 돌을 녹이고 땅을 태울 만한 열도 신인에게 화상을 입히진 못하오. 세상 사람들이 성군이라고 칭찬하는 요나 순 같은 이는 신인의 '발톱의 때'만 가지고도 만들어낼 수 있소. 과연 상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 견오: 전설상의 인물로서 상고의 현인, 혹은 태산신이라고 한다. * 접여: 성은 육, 이름은 통. 초나라의 은자로서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 격차: 원문은 경정. 경은 '작은 길'이라 좁고, 정은 '뜰'이라 넓다는 뜻으로, 현격한 차이를 비유하는 말이다. *순: 전설상의 성군. 성은 요, 이름은 중화. 요임금에게서 선양받은 후 나라 이름을 우라 했고, 뒤에 우에게 선위했다.
소용없는 상품 - 소요유
송나라 사람이 장보관*을 사가지고 월나라로 갔다. 월나라 사람은 단발 문신이라 쓸데가 없었다. 요는 만민을 다스려 해내의 정사를 고르게 했다. 묘고야 산에서 네 사람을 만나본 뒤 분수* 남쪽에서 멍하니 천하를 잊고 있었다.
******************************************************************************
어떤 송나라 사람이 장보라는 관을 많이 사가지고 월나라로 장사를 떠났다. 그런데 월나라에 가서 보니 그곳 사람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몸에는 먹물로 그림을 그리고 지냈다. 따라서 문명한 나라 사람들이 쓰는 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는 선정을 베풀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었으므로 의기양양하게 묘고야란 산 속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신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요는 거꾸로 신인들에게 압도되어, 서울 교외에 있는 분수가 돌아와서도 정신이 멍해 세상사를 아득히 잊었다.
* 장보관: 은나라 때 만들어진 관의 이름. 모양이 좋아서 주대에까지 쓰여졌다. * 분수: 황하의 한 지류. 요임금이 도읍을 차렸다는 평양 부근을 흐르고 있다.
큰 표주박의 용도 - 소요유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내게 큰 표주박 씨를 주었네. 그것을 심어 열매를 맺게 되었는데, 닷 섬들이나 되었네. 물을 담았더니 너무 무거워 혼자 들 수가 없고,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편편하고 얕아서 들어 갈 곳이 없쟎겠나? 크기는 하나 소용이 없어 부숴 버렸네.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원래 큰 것을 쓰는 데 서투르네.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이 트지않는 약을 잘 만드는 자가 있었는데, 대대로 실*을 빨아 바래는 일을 해왔네. 한 나그네가 이를 듣고 그 비방을 백 금에 사겠다고 청했네. 가족을 모아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대대로 실을 빨아 바래는 일을 해왔으나 몇 금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하루아침에 재주를 백 금에 팔라고 하니 팔아버리자.' 나그네는 이를 얻어 오왕을 설득했네. 월나라와 싸우게 되자 오왕은 그를 장군으로 임명했네. 겨울철이었는데, 월군과 수전을 벌여 크게 이겼으므로 땅을 쪼개 받고 후로 봉해졌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한 사람은 봉지를 얻고, 한 사람은 실을 빨아 바래는 일을 면치 못했네. 쓰는 바가 달랐던 것이지. 자네는 닷 섬들이 표주박으로 어째서 큰 통을 만들어 강호에 띄울 것을 생각지 못하고 너무 커서 쓸 곳이 없다고 걱정한단 말인가! 이는 곧 자네에게 속된 마음이 있는 것일세."
*****************************************************************************
혜자가 이런 말로 장자를 비꼬았다.
"전에 위왕으로부터 큰 표주박 씨를 얻은 일이 있었네. 그것을 심어 열매를 맺게 되었는데, 표주박이 어찌나 큰지 닷 섬이나 들어가지 않겠나? 거기에 물을 가득 담으면 무거워서 들 수도 없었다네. 그래서 반을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커서 물독에 들어가지 않았네, 크기는 컸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지라 그만 부숴 버리고 말았다네."
그 말을 장자는 이렇게 받아넘겼다.
"자네는 정말 큰 것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군그래. 이런 이야기가 있네. 송나라에 대대로 실을 세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네. 직업이 직업인만큼, 그의 집에는 손이 트지 않는 신기한 약을 만드는 비방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네. 어느 나그네가 소문을 듣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 약 만드는 비방을 백 금에 사겠다고 하였네. 그래서 주인은 온 가족을 모아놓고 상의를 했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실을 빨아주고 생활을 해왔으나 벌이라고는 일년에 고작 오륙 금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 약의 비방을 백 금에 팔 수 있게 됐다. 어떠냐, 청을 들어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 한편 약 만드는 법을 배운 나그네는 오나라로 가서 왕에게 약의 효과에 대해 설명했네. 그때 마침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해오자 오왕은 이 사람을 장군으로 기용했네. 그리하여 한겨울에 일부러 월나라 군사를 물 위로 끌어내 싸웠네. 손이 트지 않는 약 덕분에 오나라는 월나라를 크게 이길 수 있었지. 오왕은 그의 공을 가상히 여겨 땅을 떼어주고 제후로 봉했네. 이제 알아듣겠나? 약의 효과는 똑같지만 한 사람은 봉지를 얻게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여전히 빨랫군에 불과하다네. 모든 것은 사용하기에 달린 것이야. 다섯 섬들이 표주박이라면, 왜 그것을 배로 만들어 양자강이나 동정호에 기분 좋게 한번 띄워볼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너무 커서 물독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불평만 늘어놓고 있다면, 자신이 상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란 것을 자인하는 것밖에 더되겠는가?"
* 혜자: 성은 혜, 이름은 시. 장자와 같은 시대의 사상가로서, 양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사상적으로는 명가에 속하며, 장자의 의논 상대인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 위왕: 양나라의 혜왕을 가리킨다. * 실: 원문은 광으로서, 헌솜이나 삼, 혹은 고치라고도 해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