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내편
<내편>은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의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편>은 장주 사상의 진수로 전해오는데, '양생주'의 경우 각 절이 독립되어 있어 연관성이 희박하며, '인간세'와 '응제왕'은 내용에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 장주 사상의 정수는 '소요유', '제물론', '덕충부', '대종사'의 4장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것은 장주 사상의 통일성을 찾기 위해 추구된 결과일 뿐, 결코 <장자> 전권의 가치를 부인할 만큼 중대한 결점은 아니다. 각 장의 제목은 그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
큰 것과 작은 것 - 소요유
북명*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인지 모른다. 변해서 새가 되면 붕*이라고 하는데, 붕의 등은 몇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세차게 날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곧 남명으로 옮겨간다. 남명은 천지다. <제해>*는 이상한 것을 기록한 책으로, 그 책에는 '붕이 남명으로 갈 때는 물 3천 리를 치고 바람을 타고 오르기를 9만 리나 하여, 여섯 달을 난 뒤에 쉰다.'고 씌어 있다.
땅에는 아지랑이와 티끌과 생물들의 숨결이 뒤섞여 있다. 짙푸른 하늘빛은 틀림없이 하늘의 빛일까? 멀어서 끝이 없어서일까? 그곳에서 아래를 굽어보아도 또한 그러할 뿐이다. 또 무릇 물이 얕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물 한 잔을 마룻바닥 오목한 곳에 쏟으면 겨자씨는 띄울 수 있으나, 잔을 놓으면 바닥에 닿고 만다. 물은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약하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다. 9만 리는 되어야 바람을 아래에 둘 수 있다. 그런 뒤에야 바람을 타고 등에는 푸른 하늘을 지게 되어 가로막을 것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남명을 향해 날게 되는 것이다. 매미와 발의새가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결심하고 날아야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가 닿고, 때로는 닿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어째서 9만 리나 남쪽으로 날아갈까?"
교외에 가는 사람은 세 끼 밥만 먹고 돌아와도 아직 배가 부르다. 백 리를 가는 사람은 저녁에 양식을 찧는다. 천 리를 가는 사람은 석달 양식을 모아둔다. 그러니 벌레 두 마리가 무엇을 알겠는가? 소지는 대지에 미치지 못하고, 소년은 대년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것이 그런 줄을 알겠는가? 조균은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는 봄 가을을 모른다. 소년이기 때문이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란 나무가 있는데, 5백 해로 봄을 삼고, 5백 해로 가을을 삼았다. 또 상고에 대춘이 있었는데, 8천 년으로 봄을 삼고, 8천 년으로 가을을 삼았다. 그런데도 팽조*가 특히 오래 산 것으로 알려져 뭇사람들이 짝을 이루려 하니 슬픈 일이 아닌가!
탕왕*이 극*에게 물은 것도 바로 이것이다. 궁발 북쪽에 어두운 바다가 있는데, 그것이 천지다. 거기에 있는 고기는 그 너비가 몇천 리에 달하며, 길이는 아직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 이름은 곤이라고 한다. 새가 있어 이름을 붕이라고 하는데,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바람을 치고 9만리를 올라 구름의 기운을 끊고 푸른 하늘을 업은 다음, 남쪽을 향하여 남명으로 가려 한다. 참새가 비웃으며 말한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나는 날아 올라가도 몇 길을 채 못 가서 내려와 쑥대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것 역시 날 만큼 난 것인데, 그는 또 어디를 가려는 것일까?"
이것이 대소의 구분이다. 그러므로 무릇 지식이 한 벼슬을 감당하고 행실이 한 고을에 뛰어나며, 덕이 군주에 합당하여 일국을 대표하는 사람도 자기를 보는 것은 이와 같다. 그러나 송나라의 영자*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세상이 칭찬을 한다 해서 더 부지런할 것도 없고, 그르다 해서 더 막히지도 않으며, 안팎의 구분이 있고 영욕의 경계를 알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세상사에 동요되지 않았으나 아직 부동의 경지는 아니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니며 시원하게 떠돌다가 보름 뒤에 돌아왔다. 그는 복음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았다. 비록 걸어 다니는 것은 면했다고 하지만, 그대로 의지하는 것이 있었다. 만일 천지의 바른 것을 타고, 육기*의 분별을 다스리면서 무궁에 노는 사람이라면 또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래서 '지인은 내가 없고, 신인은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고 한 것이다.
*****************************************************************************
북명의 곤이라는 고기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몇천 리인지 모를 만큼 컸다. 곤은 변신하여 붕이라는 새가 되는데, 이때 몇천 리인지 알 수조차 없는 그 몸뚱이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면 하늘은 검은 구름에 덮인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어 바다가 거친 계절이 되면 붕새는 남명, 곧 천지를 향해 날았다. 온갖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 <제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남명으로 떠날 때의 붕새는 바다 위 3천 리를 날개로 치고 날아오른 다음, 바람을 타고 9만 리 높이에까지 솟아오른다. 그리하여 남명까지 여섯 달 동안을 쉬지 않고 날아간다."
땅 위에는 아지랑이가 끼고, 먼지와 생물들의 숨결이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하늘은 그저 새파랗게만 보인다. 그것은 하늘빛이 원래 푸르러서가 아니라 다만 끝없이 먼 거리가 하늘을 파란 빛으로 보이게 할뿐이다. 마찬가지로 9만리 상공을 나는 붕새의 눈에는 이 땅위가 다만 파란 빛으로 보일 것이다. 또한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마루 틈새에 고인 한 잔 물에도 겨자씨 따위는 떠 있지만, 거기에 잔을 띄우면 그만 바닥에 닿고 만다. 물은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커다란 날개를 펴려면 큰 바람이 필요하다. 9만 리 높이까지 날아오르면 붕새의 날개는 강한 바람의 힘에 의지하게 된다. 바람을 탄 채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나는 붕새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은 없다. 그리하여 붕새는 줄곧 남명을 향해 나는 것이다. 그러나 매미와 발의새(작은 비둘기)는 그런 붕새를 비웃게 마련이다.
"느릅나무 박달나무 가지에 날아오르는 것도 힘에 겨워 제대로 가지 못한 채 떨어지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멀리 남쪽으로 9만 리나 날아가려고 하는 저 새의 기분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교외로 나가는 정도라면 하루치 식량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백 리쯤 되는 길을 떠나는 사람은 하루 전에 쌀을 찧어놓아야 한다. 만일 천릿길을 떠날 사람이라면 석 달 전부터 양식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러니 매미나 발의새 따위가 무엇을 알겠는가? 작은 세계에 사는 것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세계가 있는 것이다. 시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짧은 시간을 사는 것들은 오랜 세월을 알 길이 없다. 아침에 돋아났다가 저녁이면 시들고 마는 조균(하루살이 버섯)으로서는 하루가 얼마나 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 철을 사는 매미 또한 1년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짧은 세월이라고 말한다. 옛날에 초나라 남쪽에 있던 명령이라는 나무는 1천 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더했다. 또 대춘이라는 나무는 1만 6천 년에 하나씩 나이테를 더해갔다고 한다. 이런 것들에 비한다면 수백 년을 살았다는 팽조가 부러워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가련한 것인가!
은나라 탕왕과 그의 신하 극과의 문답에도 붕새가 언급되어 있다. 땅(궁발)의 북쪽 끝에 어두운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그것을 천지라 한다. 거기에 곤이라는 고기가 사는데, 등의 너비는 몇천 리나 되며, 그 길이는 얼마인지 알 수조차 없다. 또 거기에는 붕이란 새가 있다. 크기는 태산만 하다고나 할까? 날개를 펴면 하늘이 검은 구름에 덮인 듯하다. 붕새는 바람을 타고 빙빙 돌면서 9만 리 높이로 날아오른다. 앞길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붕새는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남쪽의 남명을 향한다. 참새가 비웃으며 말한다.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우리는 기껏 날아봐야 몇 길도 못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고 만다. 그래서 이렇게 쑥대 사이를 푸드덕거리며 뛰놀고 있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저런 힘든 일을 하다니 정말 알 수가 없구나."
크고 작은 것의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지식을 길러 관리가 된 사람, 공을 세워 한 고을의 원이 된 사람, 재능을 인정받아 대신이 된 사람, 덕이 높다 하여 임금의 자리에 있는 사람, 그들 역시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따지고 보면 이 참새와 다를 것이 없다.
송나라의 영자는 그들을 속된 무리라고 비웃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방 같은 것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자신과 남, 안과 밖을 분명히 구별해서 영예로운 것과 욕된 것이 자기에게 본질적인 것이 못 됨을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세속에 초연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참다운 자유를 얻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하늘에서 놀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표연히 땅 위로 돌아왔다. 그렇듯 그는 세상사에 속박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바람의 힘을 빌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 역시 참다운 자유를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 천지 자연에 몸을 맡기고 만물의 육기에 따라 무궁한 세계에서 소요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참다운 자유의 존재인 것이다. '지인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신인은 공적을 생각하지 않으며, 성인은 명성에 관심이 없다.'고 한 말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 북명: 명은 '까마득하게 끝도 없는 바다'라는 뜻으로 명으로도 쓴다. * 곤: 장자의 우의적인 표현. 큰 고기의 이름, 혹은 '고기 새끼'라고도 한다. * 붕: 장자는 '매우 큰 새'라고 표현했으나 봉의 옛 글자라는 설도 있다. * <제해>: 책 제목으로 해석했으나 가공 인물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 팽조: 전욱의 현손으로, 은나라 말엽까지 767년을 살았어도 늙지 않았다고 한다. * 탕왕: 하나라의 폭군 걸을 내쫓은 후 은왕조를 세운 성군. * 극: 탕왕 때의 현인이라고 하나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 영자: 도가의 학자였던 송견을 지칭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욕심을 배격하고, 싸워서는 안 된다는 비전론을 주장했다. * 열자: 열어구. <열자>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존 인물인지는 확실치 않다. * 육기: 천지간의 여섯 가지 기운. 곧 음, 양, 풍, 우, 회, 명을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