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 중에서 단연 특이한 신이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 로마의 바쿠스 Bacchus)이다. 디오니소스란 말 자체가 '불완전한 신'이란 뜻을 지니고 있음도 색다르다. 그는 왜 이름에서조차도 온전한 신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일까?
디오니소스는 하늘의 신 제우스와 테베시 건설자 카드모스의 딸 세멜레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지만 태생부터 골절이 많았다. 세멜레가 제우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질투심에 불탄 헤라는 계략으로 그녀를 없애려 했다. 세멜레 미모가 워낙 뛰어난 탓에 제우스 관심이 지속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헤라는 세멜레를 부추키어 제우스가 변신한 모습으로 참아왔을 때 부탁이 있다며 꼭 들어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연인의 달콤한 목소리에 취해 스틱스 강에 가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맹세했다.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세요." 제우스는 그 부탁을 들어준 직후의 참상이 떠올라 거절하고 싶었으나 이미 신으로서 맹세해버린 터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순간 제우스를 상징하는 번개가 번쩍임과 동시에 세멜레는 불에 타죽고 말았다.
슬퍼하는 와중에 문득 태아가 생각난 제우스는 헤라 몰래 세멜레 몸속에 있는 아기를 꺼내어 자기 넓적다리에 집어넣었다. 얼마 후 아이는 제우스의 넓적다리를 뚫고 세상에 나왔으니 바로 디오니소스이다. 특이하게도 어머니 자궁과 아버지 넓적다리에서 생명을 얻고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운명적으로 자연 섭리에서 살짝 벗어난 삶을 암시받은 셈이었다. 제우스가 산의 님프들에게 디오니소스를 맡겨 기르게 한 까닭에 그는 염소로 변신한 채 숲을 어머니의 품처럼 여기며 성장해야했다. 어른들의 불장난이 한 아이의 정신을 불안한 상태로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디오니소스는 호메로스의 책에는 등장하는 않는다. ‘Dios’라는 단어는 ‘zeus’와 ‘Nysan(인도의 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 신과는 사뭇 달랐다. 올림포스의 경우 빛 그 자체였다. 명료한 형상 속에서 등장하는데, 그것은 그리스적인 합리성의 뿌리가 된다. 형상은 개별화를 수반하며, 제한을 통해 개별자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즉 형상-제한-개별성의 흐름이 이어지는데, 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신이 바로 아폴론이다. 아폴론이 빛을 상징하고, 질병과 치유의 능력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질투 많은 부인 헤라의 눈을 피해, 스승인 실레노스(Silenos) 밑에서 자라났다. 이는 결국 디오니소스가 ①신과 인간의 결합에서 태어났으며, ②수난 ③부활, 그리고 ④ 어떤 하나의 개별성에 갇히지 않는 변모의 신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즉 명료함, 혹은 명징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모호함, 도취(술)의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다.
올림포스 신의 영역이 빛, 한정/제한, 개별성, 남성성, 고귀함, 귀족적 이상을 상징한다면, 디오니소스는 어둠과 모호함, 무한정성, 무차별성(개별성의 지양), 여성성, 평민적 삶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Anthesteria
Lenaia
농촌의 제전. 초겨울 11월에서 12월에 열렸으며, 소녀와 여성들이 주관
Eleutheria
도시 중심 제전. 폴리스의 정치적 생명력을 북돋음. 남근 숭배로 변모
축제 공간의 이동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간다. 이는 정치적 중심 공간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며, 디오니소스 축제가 서민의 대변자로서 활용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합리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총체성, 평민적 삶을 대변하는 신으로서 디오니소스 축제가 이 시대의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 전체의 교육과 계몽의 장으로 활용되면서 결속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당시 제전 집행자(Choregos)는 3명의 비극 작가를 선정했는데, 이들은 3편의 비극과 1편의 사튀로스 극을 썼다. 극의 내용은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음란하기도 했다. 도취와 이야기가 디오니소스 축제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한편 한·중·일 3국의 경우 '공유하는 절대자'가 없다는 점은 동일성 지향이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