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 경의 해제
1. 노자 사상의 배경
누가 나더러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세 권만 들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주역]과 [논어]와 [노자]1)라고 말하고 싶다. [노자]는 한문으로 쓰여진 저작 중 가장 심오한 철학서의 하나로 동양인뿐만 아니라 서구인에게도 관심과 연구 대상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역대 전문가들의 노자 주석서는 중국의 경우 600여권에 달하며 영어 번역판만 해도 44종에 달한다. 그 외에 연구 논문은 전세계에 수십만 종이나 되어 정확히 집계하기란 불가능하다. 이것만 보아도 학자들이 얼마나 노자 연구에 열을 올리는가 짐작이 갈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의하면 노자 [도덕경]의 저자인 노자는 초의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라 한다. 그의 성인 이, 이름은 이, 자는 담이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자가 백양, 시가 담이라고도 한다. 또는, 성이 노, 이름이 담이라는 설도 있으나 사기의 기록이 가장 정확한 듯하다. 그는 주의 장서실의 관리로 재직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서쪽의 관문을 지날 때 관의 영 윤희의 부탁으로 5천여 자의 저술을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불과 5천여 자에 지나지 않는 이 책은 문약의풍 즉 '문장이 간결하고 뜻은 깊다'고 했다. 옛날부터 노자 [도덕경]의 성립과 그 저자에 대해 학자들은 많은 의문을 제기해 왔다. 학자에 따라서는 [노자]를 춘추시대가 아닌 전국시대의 저서로 단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풍우란의설) 심지어 한 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오늘날에 와서 이 문제의 진위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저서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짧은 글이긴 해도 도가라는 하나의 학파가 내놓은 도가 사상의 총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골자는 이미 노자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여러 문헌의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내린 결론이다. 노자 도덕 경이 나오게 된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는 중국적 사고의 모델이 마련되던 시대이다. 봉건제도에 의해 그 종주국으로 대접받던 주왕실도 춘추시대에 와서는 각국의 제후들이 자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강화에 열중하게 되자 점차 권위가 흔들리게 된다. 이 시대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문화가 이행되는 시점에 있었다. 철제 농구의 사용은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으며 이재에 뛰어난 자는 부를 축적하여 거부가 되기도 했다.2) '부를 축적하는 데 농은 공보다 못하다'는 이 시대 사람들의 말은 상공업의 발달을 증언해 주고 있다. 주 왕실은 쇠퇴하고 봉건제는 해체되고 있었다.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제후들은 약육강식의 투쟁을 벌이게 된다. 춘추시대의 140여 나라가 말기에 12국으로, 전국시대에 와서는 다시 7개국(진, 위, 조, 제, 한, 초, 연)으로 압축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제후들은 자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지모와 수완을 갖춘 인재를 구하고 있었다. 이에 독서인 출신들이 대거 기용하게 된다. 혈연, 지연의 구애를 받지 않고, 고정된 신분 사회는 밑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춘추 말에서 전국시대에 걸쳐 수많은 사상가가 출현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서 였다. 이른바 제자백가, 백가쟁명의 시대이다.
이 시대 지구의 반대편에서 생활하던 그리스인들은 자연에 대한 경이감에서 철학의 발단을 열었다. 그들의 자연 철학은 소피스트3)와 소크라테스에 의해 인간에 대한 관심사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자연 철학과 인간학은 애초부터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천도와 인도를 하나로 보고 형이상학적 사고의 바탕을 만들게 된다. 노자가 나온 배경은 이와 같다. 이 책은 모든 지식과 지혜를 터득한 사람의 사색이요, 거대한 대륙적 지혜의 총화이다.
주 1) '늙은 선생님'을 뜻하는 존칭, 노자, 장자의 '자'는 스승을 의미함. 2) 화식 열전 참조. 이것은 사마천의 사기 제69권에 수록된 고대 중국의 경제 상황에 관한 기사로 거부들의 열전이고, 고대 중국 경제사 연구의 기본 사료이다. 3) 수사학, 웅변술, 토론의 테크닉 등을 가르쳤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의 일파(BC 5세기경)로서 궤변학파로 불리기도 함. 진리의 상대성을 역설하여 현대의 실용주의 철학과도 맥을 통하고 있음.
2. 노자의 본체론 노자가 도덕 경으로 명칭 화된 것은 전한 시대 말부터이다(마서륜의 설). 상편은 1장에서 37장까지요, 하편은 38장에서 81장까지이다. 상편은 주로 도론 즉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었고, 하편은 주로 덕론 즉 인간 윤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도론과 덕론은 확연하게 분리된 것이 아니고 상. 하편에 다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도에 대한 개념 분석으로 시작해 볼까 한다. 도란 형체도 빛깔도 소리도 없는 어떤 존재이다. 도는 만물의 근원이지만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만물이 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형상 없는 형상으로 홀로 존재한다.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곳에나 있다. 그것은 초감각적 실체이기 때문에 이름이 없다. 도라는 명칭도 편의상 붙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막연히 그것을 크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크다는 말은 무한이란 뜻이다. 우주 만물의 배후에는 우주 만물을 길러 내는 어떤 신비한 존재가 있다. 그것은 또한 만물을 생성, 변화, 소멸시키며 무물의 상으로, 고요하고 적막하여 언어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고 공을 이룩하고도 공명을 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물을 기르면서 군림하지 않고 대립 속에서 대립을 초월한다. 이 노자의 도는 유가의 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가에서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의 도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의 도리, 도덕, 처세훈이다. 이에 반하여 노자의 도는 만물을 생성, 변화, 발전, 소멸시키는 형이상학적 실체를 언급한 것이다. 그것은 역의 태극에 비할 만하다. 그는 도의 현상 세계 생성 원리를 삼변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도로부터 충허의 일기가 발생하고, 이것이 음양으로 분화된다. 이것은 다시 교감 화합하여 형기질을 구성하게 된다. 이 삼자가 구비되어 만물이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도는 부정적 서술에 의해서만 표출된다.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므로 이 비존재는 초존재이며 동시에 근원적인 존재이다. 노자는 천지의 본체를 곡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곡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신비스러운 암컷이라 한다. 현빈, 즉 신비스러운 암컷의 문을 천지의 근본이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아무리 써도 힘들어하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무의 효용을 강조한다. 그릇이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내부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의 용도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의 구실 때문이다. 이것은 유는 무에 의지하여 무를 기다려서 비로소 유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때의 무는 단순히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무가 아니고 미와 작용을 지닌 것이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성되고 유는 무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무는 나타나지 않은 본체 즉 도요, 유는 천지로서 구체화, 형상화되고 있다. 도란 물 자체로서 영원불변의 힘으로 두루 보편적으로 작용하며 조금도 위태함이 없는 것이다. 도는 만물의 본체요 하나로서 절대이며 그와 필적할 상대가 없다.
그것은 만물의 근본원리로서 무형, 무색, 무취이다. 그것은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라고 한다. 그것은 들으려고 해도 들리는 법이 없다. 그래서 희라고 한다. 그것은 손으로 잡으려고 해도 결코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미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셋을 통틀어 하나라고 한다. 노자는 도를 초월적 내재자로 보고 그것은 극에 달하면 되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도는 시공을 초월하며 만물의 보편성으로 깃들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3. 노자의 윤리론
중국인들은 표면적으로는 유가의 도덕률을 으뜸 삼아 왔으나 그 이면에 있는 도가적 경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유가가 사회적 위계질서와 수신제가에 의한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데 반하여 도가는 무위자연의 대도에 인간성이 합일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노자는 도가 허정무위하므로 그것의 소산인 인간의 성정도 허정무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혜와 기교를 탈피하여 순박한 도의 섭리에 귀일하는 것을 윤리의 이상으로 삼았다.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는 법이 없다.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의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8장). 그는 강한 것에서 약함을 보고, 약한 것에서 도리어 강함이 있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유약과 소극과 수동을 중요시한 그는 암컷의 입장의 유리함을 강조한다. 이것은 빼앗겨서 뺏는 기술, 즉 약자가 결국 이니시어티브를 쥐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유연한 나무는 꺾이지 않고 탄력성이 있어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처세를 부드럽게 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골짜기처럼 낮은 위치에서 갓난아이의 순진 무구의 상태에서야 도를 체득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상덕을 지닌 사람은 시비와 선악의 상대적 차원을 넘어 자연에 되돌아가서 허정과 무위와 덕을 이룩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노자의 무위는 글자 그대로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즉 하는 일 없이도 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는 인간이 순박한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을 강조하여 이것을 흔히 산에서 갓 베어 낸 통나무의 경우에 비유한다. 즉 이와 같은 순박함을 감히 신하로 부릴 자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는 도의 무위함을 체득한 유덕자의 무작위, 무심을 갓난아이의 무욕과 무심에 비유한다. 갓난아이는 무심, 무욕하므로 즉 마음을 비우고 바라는 것이 없으므로 대립하는 상대가 없는 것이다. 그는 정사, 시비, 선악, 미추는 상대적 개념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얼핏 보아서는 모순되고 대립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살펴보면 같은 뿌리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그의 무위, 무지, 무욕의 사상은 상대적, 일시적 가치 추구에 집착된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성 본연의 상태로 복귀시키는 데 있으며 인간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였다.
사람들은 상대적, 일시적 가치판단에 구속되어 싸움과 혼란으로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자는 이와 같은 병폐를 시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자, 검, 불감위 천하선을 인생의 삼보로 삼고 있다. 즉 자애와 검소와 겸손을 생활 지침으로 강조한 것이다. 그는 자연의 법칙인 큰 도가 없어지므로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 나오게 되고 가족간에 화목이 되지 않으므로 효도니 자애니 하는 것이 있게 되었다고 지적하며, 윤리 면에서 유가와 다름을 분명히 했다. 은원에 대한 견해도 공자와 노자는 입장을 달리한다. 일찍이 공자는 '곧음으로 원한을 대하고, 덕은 덕으로 갚아라' 하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추상같은 춘추 필법의 주창자요, 포폄사관의 효시인 공자다운 말이다. 이에 반하여 노자는 '원한은 덕으로 갚아라'1)고 교훈하고 있다. 일부 서양 학자들은 이와 같은 노자의 교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윤리가 자기확장적 경향이 강한 데 반하여 노자의 윤리는 자기 억제적 성격을 본질로 한다. 그러므로 그의 교설은 그리스도의 설교와는 의미를 달리한다. 노자의 도가 윤리와 공자의 유가 윤리 사상은 음과 양처럼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 지식인들에게 깊고 풍부한 정신적 바탕을 마련해 준다. 이 두 사상은 오케스트라의 리듬과 멜로디처럼 어느 한쪽이 없었다면 초래되었을 치명적인 획일화에서 벗어나 사상의 깊이와 폭과 다양성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주 1) 유가의 정명주의에 의해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를 말한다. 교훈주의적 사관의 일종임.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여 비행을 규탄함. 고대의 사서 춘추 등에 잘 피력되어 있다. 공자가 춘추를 지으니 난신 적자가 떨었다는 맹자의 말은 이것을 의미한다. 송대의 주희는 통감 강목에서 강대국 위를 비정통으로, 약소국 촉한을 정통으로 기록한 것도 이 사관의 좋은 예가 된다.
4. 노자의 정치철학
대저 천하가 혼란하면 경세제민의 방책으로 여러 부류의 정치 철학이 나오게 마련이다. 노자의 정치철학은 유가의 그것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유가는 예악에 치중하며 정명주위로써 난신 적자가 날뛰는 난세를 바로잡을 것을 역설하였다. 공자 자신은 정권을 담당하면 명분1)을 바로 잡을 것을 급선무로 한다고 말한다. 공자의 정명주의는 명실일차론이다. 즉 이름과 사물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만의 임금이 아닌 아름다운 임금이 진정한 군주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의 요체를 '군군신신부부자자'의 여덟 글자로 압축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의 뜻이다. 난세의 문제를 풀어 가는 노자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노자는 무위와 치로써 정치의 요결을 삼는다. 무위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체념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을 깨닫고 그 법칙을 인간 윤리와 정치철학에 응용하자는 것이다. 그는 강조한다. '큰 나라를 다스림에는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하라'2)고. 이 말은 되도록 간섭과 규제를 풀고 자율에 맡기는 것이 정치의 요결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백성들이 위정자의 가렴주구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의 외침이기도 하다. 노자는 춘추 전국의 난세에 태어나 당시의 극악한 정치형태를 목격한 사람이다. 그는 무위자연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아 태고 무위의 경지에 복귀하여 순박한 생활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인위적인 법률과 제도 행정 등은 유해한 것으로 보고 비난하였다. 그는 백성은 지혜가 많으면 다스리기 어렵고, 지를 버리면 나라에 이익이 된다고 역설하였다. 이것은 문명이 진보할수록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욕구도 증대할 것이요, 여기에 시비와 선악의 가치 척도로써 분쟁을 일삼을 것을 내다보고 하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어떤 독선적인 집단이 정의와 선에 대한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는 단두대로, 허위는 옥좌에...'라는 절규는 이유 있는 항변인 것이다. 노자는 이와 같이 문명 진보에 의한 인간의 간지의 증대와 거기서 오는 폐단을 막아 보자는 의도이다. 그는 말한다. 성인이 치국하는 도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비우게 만들되 그들의 배는 부르게 만들며, 그들의 의지력은 약화시키되 그들의 육체는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백성을 무지 무욕의 상태에 두게 한다. 그러므로 지혜와 수완을 갖춘 자가 있을 지라도 감히 재주를 부리지 못하게 한다. 무위 즉 작위 함이 없는 다스림에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3) 노자는 이상 국가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나라가 작고 백성의 숫자가 많지 않으면 이를 감화시켜 다스리기 쉽다. 백성들은 순박하고 사치를 모르는 습성을 익혀 좋은 기물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곳에 애착을 가져 이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나물밥을 달게 먹고 베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순박한 풍속을 즐길 것이다. 이웃 나라와 경계를 마주해도 늙어 죽을 때까지 왕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노자의 유토피아이다. 즉 순박한 촌락 공동체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허정무위설은 중국 고래의 철학적 전통과 맥이 통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논어에 등장하는 14은사의 언동은 다분히 도가 적이다. 즉 초의 광접여나 미자편(논어 제18)에 나오는 장저, 걸익, 하조장인 등의 냉소적이고 둔세적 언동은 도가적 인생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노자의 철학은 유가와 더불어 중국적 세계관의 정형을 이루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의 학문은 한 초에 와서 '황노학'으로 성장하며 진평, 조참 등은 한의 재상으로서 노자의 무위 이치의 정신을 잘 살려 치적을 올린 바 있다. 이것은 진나라가 법가를 기용하여 그 제도 행정이 너무나 백성들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을 감안한 조치이기도 하다. 한무제때 동중서의 건의로 유학이 정치 이념으로 정착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도가적 경향이 여전하여 무위 이치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5. 현대인과 노자
선철이 남긴 철학적 지혜중 노자의 교설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사상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고도 산업 사회인 오늘까지 면면이 최고 지성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것은 인간성에 호소하는 영원한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에 순응하고 자연의 순리에 이탈하지 말라는 그의 주장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세 속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 말이 하나의 시대 착오로 들릴지도 모른다. 노자 자신도 이 점을 의식한 듯 '나의 말은 아주 이해하기 쉽고 또 실천도 용이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며 능히 실천하지도 않는다'고 탄식하고 있다. 노자는 인간이 서야 할 궁극적인 삶의 자세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모든 일은 명료하게 보이는 것이다. 욕심은 편견을 낳고 있다. 그것으로는 사물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없다. 노자의 교설은 현대의 산업 사회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서양의 과학 문명은 논리의 필연성을 지나칠 정도로 추구하여 사물에 대한 해부와 분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자연을 개발해 왔다. 그들에겐 자연이란 정복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자부심 아래 자연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판단에 집착하여 욕망 추구의 투쟁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적자생존을 금과옥조로 삼던 그들이 식민지 쟁탈전에 혈안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당시의 그들은 '동양은 동양이요 서양은 서양이다. 이 둘은 영원히 만나지 않으리라'(키플링의 시에서)를 노래부르며 자신들의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과시하였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도 자신의 세계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것은 현대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동양의 지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20세기의 최고 지성들인 야스퍼스, 하이덱거, 슈바이처 등이 노자 교설에 깊이 매료되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제 곧 21세기에 진입하는 우리들은 고도의 과학 문명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생활이 과거의 농경 사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풍족하고 안락한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합리주의에 의해 성취된 근대 과학 덕분이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항상 흘러 넘치는 자를 응징한다고 했고, 주역에서는 높이 지나치게 올라간 용은 후회함이 있다고 했다. 현대 사회는 물질문명에 따른 비인간화, 민족간의 분쟁, 공해 문제 등의 병폐로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와 존망에 관계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자연관, 인생관 등에 근본적인 반성이 따라야 할 것이다. 참을 지키고 순박함으로 돌아가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현대 문명의 위기 해소에 어떤 하나의 해답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