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오언심이지, 심이행, 천하막능지, 막능행, 언유종, 사유군,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지아자희, 측아자귀, 시이성인피갈회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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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째 장
직역
나의 말은 매우 쉽게 알 수 있고, 매우 쉽게 행할 수 있다. 하늘 아래가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우두머리가 있다. 무릇 오직 알지 못함이다. 이런 까닭에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드물다. 나를 본보기로 삼는 자는 귀하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갈포를 입고 옥석을 품는 것이다.
해석
도는 아주 쉬운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쓰레기로 넘쳐난다. 아주 쉽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탄식을 하고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은 아주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앞서려고하지 뒤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 선다고 한다면 그와 다툴 사람이 없다. 경쟁자가 없다. 유아독존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온전히 보전 할 수 있다. 타고난 그대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화려한 턱시도를 입지는 못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보물을 가지고 다닌다. 그 보물은 알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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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나의 말은 아주 이해하기가 쉽고, 또 아주 실천하기도 쉽다. 그런데도 이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실천하지도 못한다. 말에는 만물의 원리가 있고, 일에는 주관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므로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이는 드물지만 나를 모범 삼는 이는 존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있지만 그의 품속에는 보배를 품고 있는 것이다.
주
종: 근본, 근원, 원리, 도. 군: 주재자, 주관하는 사람, 임금.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궁극적인 원리를 지칭하고 있음. 칙: 본받다, 규범으로 하다, 모범으로 삼다, 법칙으로 하다. 칙으로 발음함. 피갈회옥: 몸에는 거친 베옷을 입고 품속에는 보배를 지니고 있다는 뜻임. 도를 체득한 성인이 일개 서민으로서 허름한 차림으로 살아가므로 세인들이 그의 참된 진가를 알지 못한다는 뜻임.
해
나의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실천하기도 쉽다. 그것은 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도의 자연스러움을 본받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말과 일에는 원리가 있고 근원이 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근원을 캐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도를 아는 이는 드물다. 만일 그것을 알고 본받게 된다면, 그는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일개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가므로 세인들은 그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옥에 흙이 묻어 있으므로 행인들이 그저 예사로운 돌덩이 정도로 알고 주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범속한 사람들은 사물의 이면과 그 본질을 캐고자 아니하고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노자는 진리를 깨달으며 홀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독과 비애를 피력하고 있다. 노자 서에서는 이와 같은 감회를 독백 조로 기술하고 있는 장이 많다.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관심에는 달관한 그도 인간적인 슬픔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대목은 논어(헌문편)에도 나온다.
공자께서 한탄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이 말을 들은 자공이 말씀드렸다. "왜 선생님을 몰라준다고 말씀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으리라. 일상생활의 비근한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차근차근 하늘의 이법에 통달하게 되었으니 나를 아는 것은 저 하늘일 꺼야!" 한평생 자신의 정치철학을 채택해 줄 밝은 임금을 만날 수 없었던 공자의 탄식과 무위자연의 도를 현실 정치에서 단 한 번도 펼쳐 볼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노자의 비애에서 현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그들의 고독과 좌절감은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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