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부존도이귀덕.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고도생지, 덕축지,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복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원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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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한째 장
직역
다시 한번 고민해볼것.
도란 그것이 태어남이오, 덕이란 그것이 쌓아 감이요, 물이란 그것이 형체를 이룬 것이다. 세라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온갖 것이 도를 높이 여기고, 덕을 귀하게 하지 않음이 없다. 도의 높음과 덕의 귀함은 대저 명령이 아니고, 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란 그것이 태어남 이오, 덕이란 그것이 쌓아 감이라고 한 것이다. 그것을 자라게 하고, 그것을 기르며, 그것을 멈추게 하고, 그것을 독하게 한다. 그것을 길러주고 덮어 감싸준다. 낳았으나 가지지 않고, 되게 해주어도 기대지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다스릴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고 한다.
해석
도는 생명력이다. 모든 만물이 이 도에서 나온다. 덕은 얻음이다. 모든 만물들은 얻음으로 자란다. 양분을 얻지 못한다면 생물은 죽는다. 사람을 보라. 음식이 없이 다른 것들을 먹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죽는다. 얻음. 의식에도 얻음이 있다. 자라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끊임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정도 얻음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 멈추어 버린다. 그럼 죽는 것이다.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도는 생명력이오. 덕은 사물이 태어 나기 위해서 얻어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속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도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가 된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고, 덕은 어머니의 정혈을 얻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도와 덕이 아니다. 최소한의 느낌이라고 있어야 알 수 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형이다. 형체가 아니다. 형이다. 그림자 같은 것이다. 아이가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느낌이 와야 한다. 이 형보다 발전이 된 것이 성이다. 이루어 진 것이다. 아이가 태어 난 것이다. 이때 부터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 첫 과정이 호흡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는 호흡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 호흡이 자신이 개체로서 처음으로 얻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호흡을 중요시 한 것이다.
노자는 사물이 처음 출발하는 점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끝에서 파고 들어가야 한다. 도는 그냥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처음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세이다. 단전히 고정되어 있는 집합체이다. 어미에게서 나왔지만 우리는 어미의 자궁속의 일을 알지 못한다. 거대한 나무를 보라. 그럼 우리는 그것이 어떤 나무인지 안다. 그러나 그것이 새싹일때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아는 것은 힘이 든다. 땅속에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를 보고 그 나무의 첫 출발점을 유추할 수 있다. 그 나무가 아직 싹도트기 전의 상태에서 이것이 어떻게 자랄지 지켜 보면 노자의 말을 수긍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마 다 자란 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에 대한 추구는 그대의 현존에서 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근원에 도달 할 수 있게 된다. 도는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도의 증거이다. 더 이상은 필요치 않다. 도가 다른 만물을 낳았는데 나는 낳지 않았는가. 아니다. 도는 그대를 낳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를 높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을 먹이고 살려준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스스로 먹고 살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대가 만든 것이 있는가. 지구는 그대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라. 지구는 그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도가 만든 것이다. 그대의 식탁에 있는 음식들은 그대가 만든 것이 아니다. 농부가 만든 것도 아니다. 도가 만든 것이다. 전 우주의 과거가 만든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라.
도는 근원이다. 모든 만물이 도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이 도를 높이 여기는 것이다. 낳았지만 형체는 없다. 씨앗이다. 아직 이미지가 없다. 구별할 수 없다. 이제 조금씩 이미지가 생긴다. 씨앗이 발아를 한다. 그때 가 덕이다. 그리고 씨았이 땅위로 드러났다. 형체를 조금씩 갖추기 시작한다. 이때가 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에 새싹만 보고 그것이 어떻게 자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힘들다. 새싹은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다자라면 세를 이루게 된다. 자신의 영역권을 가진다. 이때에 이르러 하나의 사물이 이루어 졌다고 하는 것이다.
도는 근원이다. 그렇기에 도를 높이는 것이다. 덕은 토양이다. 사물이 사물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규율로 그러한 것이 아니다. 나면서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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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도가 만물을 낳고 덕은 그것을 기르고, 물체마다 형태를 이루게 하며 힘으로 그것을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만물은 어느 것이나 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덕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은 누가 명령을 해서 시키는 일이 아니건만 언제나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길러 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생장시키고 육성케하며, 안정시키고 돈독하게 하고 키워 주고 감싸준다. 도는 만물을 낳고도 제것으로 하지 않고, 그렇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키워 주면서도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이라고 한다.
주
도생지: '도가 그것을 낳고', 여기서 지는 대명사로 만물을 지칭하고 있음. 축: 기르다, 사육하다. 세: 힘, 형세. 정지독지: 그것을 안정시키고 돈독하게 한다, 정은 정과 같고 독은 독을 뜻함. 정은 형태를 부여하는 것, 독은 바탕을 이루게 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많음. 양지복지: 길러 주고 감싸주다. 복지는 돌보아 주다, 감싸주다, 비호하다의 뜻임. 현덕: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 현은 검다는 뜻 외에도 아득하다, 맑고 고요하다, 신비하다, 불가사의하다의 의미가 있음.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도와 덕의 존귀함과 겸허함을 칭송하고 있다. 천하 만물의 생성은 다 도 즉 자연의 이법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것의 성숙이 도의 작용인 덕에 의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존귀한 일을 하는 도와 덕은 스스로 존귀하다고 내세우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존귀한 것이다. 도와 덕은 만물을 생성화육하는 데 명령을 내리는 일이 없다. 그것은 간섭이니 통제니 규제니 하는 말을 모른다.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할뿐이다. 도와 덕은 만물을 감싸주고 보호하건만 그것을 제것으로 한다든가,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랑하는 일도 없다. 우리는 이것을 도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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