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대는 어떻게 해서든지 직장을 다니고 월급을 받고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몸을 다쳐도 밴드 하나 붙이고 연고 조금 바르고 출근했다. 나의 가정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며 내가 벌어야 가족이 살기 때문이었다. 비굴해도 눈물을 닦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다르다. 나의 인생, 나의 존재가 가장 소중하다. 생각해 보라. 내가 없으면 부모도 없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 무엇이 의미가 있나. 어른은 젊은이들이 잘 정착하고 먹고 살기 편하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되려 윽박지르고 싹수없다고 손가락질한다. 수천 년간 같은 말이 있다.
“요즘 젊은것들은 글러 먹었어.”
이 말은 앞으로도 유행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잘한 것이 뭐 있다고 나이를 무기로 젊은이들을 욕하나. 온전히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어 물려 줄 의무를 모르나? 평화를 물려 줄 의무를 잊고 사는 건 아닌가 한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고공 하는 물가의 협박을 아는가.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아는가? 나이만 처먹으면 어른인가?
자살률 1위의 대한민국이 살펴보니 청년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독사는 노인들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런 희망도, 외국으로 이민도 못 가는 처절한 청년들을 아는가. 그 훌륭한 머리들을 잃지 말자. 우리나라 민족은 비상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거대한 강대국이 쳐들어와도 이 땅을 지켜왔던 민족이다. 세대의 붕괴는 없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청년들이 더 잘 해내고 있다. 어른들이 상상도 못 하던 아이디어가 봇물 터지고 있다. 지원을 누가 해야 하는가.
꼰대들의 인생은 저물어간다. 이 청년들의 꿈을 돕자. 인간은 자기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동물이다. 그 근본에서 출발해야 한다. 강압적인 교육은 반발을 유도한다. 도움을 청하는 청년들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 어느 사람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만 잘 먹고 잘살다 가면 되니까. 바꿔야 한다. 생각을.
집회를 보자. 2024년 집회는 시위가 아니라 축제다. 노동가요는 사라졌다. 우리 민족은 어려움을 기쁨으로 표현해 왔다. 장례식장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화투치고 웃는 문화다. 독립군이 웃으며 전투한 것은 일본 놈 머리를 누가 많이 가져오나 술 내기를 걸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기쁨으로 극복하는 민족이다. 그것이 흥이고 삶의 기(氣)다. 지금 보이는 촛불집회는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아름답고 흥에 겹다.
어른은 결국 꼰대로 남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의사소통이 현재는 불가할 지경이다. 왜냐면 당신이 꼿꼿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쳐 나이 먹을수록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왜 그리 굳어 있나. 40 넘으면 생각이 굳는다.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내가 이리 살았으니 이 길이 온전하다고 믿는 것이다. 편안함을 추구하고 거기에 안착한다. 그 누구의 말도 귀에 거슬린다. 어떤 사람은 ‘삶의 기술이 있는데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시당하고 있다. 어른이 변하지 않으면 청년은 힘들다. 시대는 하루가
멀다고 바뀐다. 어른들이여. 적응하라.
어른의 모습이 사회의 모습이어야하는데
아이들이 어른보다 어른같으니. 정신차리자어른이~
월요일에 저희 지휘자님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지휘자님이 20대에 큰 수술을 하며 입원해있을때
핀란드신부님께서 써주신 글이라고 들려주셨어요
30년이 넘었는데 그 영어로 써주신 걸 더듬더듬 해석해서 외우고 계신다는 군요
'고통을 나누세요
그러면 그 고통은 옆사람에게 믿음이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은 여러사람에게 신뢰가 될 것입니다.'
각자의 몸과 생활이 고통이 있겠지요
누구와 나눌까를 찾는 마음이 '선행'의 시작일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고통'이 다른사람에게 희망이 될수도 있고
그러면 그게 선행이 되는 기적이 일어날수 있다는 뜻으로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