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병원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와서 대변은 잘 봤냐고, 언제 봤냐고 묻는다. 매번 그렇지만 참다 참다 한마디 했다.
“아침에 그게 첫인사라면 하지 마세요. 이상이 있으면 제가 말을 하겠습니다.”
이상이 있어도 대학병원 응급실 가란 이야기 외엔 대처 방법도 없는 병원의 태도와 진료 정책에 나는 불만이다. 모든 것은 책임회피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자신들의 병원에서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은 그 어떤 의사도 바라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대하는 의미 없는 진료는 내겐 필요가 없다. 차라리 “아침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라고 묻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새벽에 얼굴을 보자마자 화장실 이야기는 무리가 아닌가 싶다. 뾰족한 수도 없는 데서 반복적인 의무적 질문은 상당히 거슬린다. 한 달에 반 번 찍는 X-ray도 찍지 말라 했다. 찍어봐야 뭐가 좋아지나. 방사능에 노출될 뿐 아무런 효과도 없을뿐더러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찍잖는가.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가끔 응급실에 실려 가면 피검사부터 CT까지 모조리 검사한다. 당연히 답은 안 나온다. 하지 말아야 할 진료를 다 한다. 오죽하면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응급실이 병원 먹여 살린다고 하겠는가. 인수치를 낮추는 약이라 먹었던 약이 나의 치아를 세 개나 부러뜨렸다. 지금은 입에도 안 대지만 여전히 처방을 내린다. 그러면 나는 그 알약을 빼고 먹는다. 왜? 매우 정상적인 치수를 유지 하고 있으니까. 그 알약 덕에 다음 주에 하지 말아야 할 임플란트 예약이 걸려있다. 환자가 간경화라면 모조리 같은 처방을 내린다. 특정 병명이 나오면 처방의 기준서가 있어 그대로 처방하고 환자의 개개별 상황을 검사하지 않는다. “응 그래? 너 간경화지? 이거 먹어!”하는 식이다. 단순히 감기만 걸려도 사람 따라 다른데 어찌 그리 통일되어있는지 답답하다. 코로나에 걸려도 멀쩡한 사람이 있지만 죽는 사람도 존재한다. 왜 개별진료는 불가한가.
그건 그렇고
외래를 갔다가 교수가 말하길 병을 위한 약은 2~3% 정도의 효과만 주는 것이라 했다. 나머지는 먹는 음식과 환경이 치유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식단에 대해 조심하고 있다. 확실히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처방이고 회복을 당기려면 운동이 좋다. 땀을 흘리지 않는 운동이 가장 좋다. 약에 의존하면 할수록 몸은 쳐지고 무능력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근육이 풀리고 힘이 없으며 쉽게 피곤해진다. 그런데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또 처방받으러 가는 것이 우리나라 환자들의 암울한 현실이다. 약품 하나하나의 성분은 본인이 알아야 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은 위험하다. 대부분 병원은 약국과 이해관계가 있고 매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다니는 치과나 대학병원 신장내과는 처방을 되도록 피한다. 말기인데도 신장내과는 한 번도 내게 처방전을 발행한 적이 없다. 오로지 음식 처방이다. 이후의 수치들은 정상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치아 역시 튼튼해졌다. 사무실에 어떤 이가 “그래도 의사가 생각이 있으니 약을 주는 게 아닌가요?”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대꾸도 싫다. 본인 생각이 그렇다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될 일이다. 반드시 하나하나 약품의 성격과 효능을 알아보고 섭취할 일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필요 없는 약품이나 건강 기능 개선 약품 등에 노출되어 있다. 100세 넘는 노인들이 TV에서 광고하는 오메가3 먹고 장수하던가? 먹어야만 하도록 광고하고 방송하며 먹지 않으면 마치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는 형식의 아침 방송이 줄을 잇고 있다.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에 등을 지고 약품을 종류별로 먹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면 답답하다. 잘 먹고 운동하면 그만인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스스로 환자를 만들어 내고 있고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약품에 취해서 산다. 약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알고 먹으란 이야기다. 간이면 “간류”, 위장이면 “위장질환류”로 단순 구분해 발행하는 처방전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개별 특성이 모두 다르며 부작용 역시 다르다. 가장 똑똑해야 하는 것은 환자고 그만큼 몸에 실수했으면 상응하는 공부를 해야 할 일이다.
그건 그렇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화성의료복지시회적협동조합”이라는 긴 이름의 사무실에 다니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는 시간은 대부분 이곳에서 일한다. 홈페이지도 제작해주고 페이스북이나 사무실 네트워크 등 컴퓨터 관련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물론 자원봉사다. 이 조합은 병원도 운영하지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간병인 활동이다. 저소득층과 독거노인을 위한 방문진료나 가사간병을 시청 등과 협의로 활동하고 있다. 다니다 보면 대부분 노인은 수십 종의 알약을 보관하고 먹고 있다. 마치 낫기라도 하듯이. 가슴이 아프다. 그 나이에 약이 흡수되어 효능을 낼 수도 없고 극복은 불가하다. 생로병사 아니던가. 그러나 하느님 믿듯이 약을 신봉하고 기를 쓰고 먹는다. 당뇨나 혈압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필요 없는 약이다. 내가 퇴원할 때 혈압이 90을 넘기기 힘들었다. 서재 옆에 붙어있는 화장실도 비틀거리거나 네발로 기어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120에서 140을 오간다. 약을 먹고 나았다고 보는가?
그건 그렇고
오래전부터 방송과 언론을 매우 싫어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TV를 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태풍이나 날씨를 보도하는 뉴스는 가끔 본다. 나는 아직 코로나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 초에 코로나에 걸렸는데 잘 먹고 편히 지내다 나았다. 약도 먹지 않았고 그저 잘 먹었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잃는 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회적으로 미접종자에 대해 차별하는 태도를 보면 성질이 난다. 가뜩이나 성질 더러운 놈이 오죽하겠나. 사망자에 대해 노인이라는 둥 기저질환자라는 둥 떠들어 대지만 아니올시다다. 개별진료를 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같은 약품을 주입 하는 데서 오는 불상사다. 허무하지 않나? 양파만 먹어도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 있잖은가. 왜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가. 그것은 일본인이 심은 단체주의 때문이다. 너도 맞았으니 나도 맞아야 별난 놈 취급받지 않으니까. 특정 업체가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막대하다. 그러니 보상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기업이라는 것이 이윤 없이 돈을 쏟아부어 선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약을 개발하나? 언론은 그대로 받아적고 주사 맞으라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TV에 나오는 사망자 통계 수치따위를 신봉하는가?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이미 아는 사람은 안다.
그건 그렇고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자. 아니 방안을 둘러보자. 먹고 있는 약에서 기능성 약품까지 한번 세어보자. 약이 많아 마음 놓이나? 이젠 약을 버리자. 인체는 자신의 치유 능력이 있고 약은 미미한 도우미일 뿐이다. 몸은 우주이며 이미 경험 풍부한 선조들이 말한 바른 삶에 역행할 때 틀어진다. 약 먹다 헤롱 거리고 그도 못 하면 강제로 주삿바늘 꽂고 있다가 하늘로 가지 말자. 행복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틈새를 노리는 약품에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먹거리와 숨쉬기를 즐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