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없수? 경전이나 당신의 도를 이룬 선지자 같은 인물 없냔 말요. 뭔 선사 같은 거 말요.”
“말씀 많이 들으셨나 봐요?”
“뭔 말씀이요. 회원접수하고, 회원증 받고, 돈 내라는 말씀 말요?”
“실례 했습니다.”
“뭔 실례요? 들어오쇼. 소주나 한 잔 합시다.”
“네?”
“진정한 도에 대해 100분 토론 한 번 합시다. 이래봬도 내가 계룡산에서 2천 5백년간 공자랑 이메일 주고받으며 논어를 공저했던 사람이요.”
설레설레 뒷걸음치더니 그냥 가버린다.
뒷걸음친다는 것은 스스로가 사이비종교인임을 시인하는 것이거나
나를 맛이 간 놈으로 쯤으로 본 것이다. 소주 대신 커피를 권할 걸 그랬나 싶었다.
이른 아침 회사원들 실어 나르는 미어터진 지옥철.
연일 쳇바퀴가 실어 나른 피곤함에 몇몇을 빼곤 대부분 졸고 있다.
그 틈으로 목청 좋은 사람 하나 비집고 나오더니 붉은 십자가 들어 올린다.
"불신지옥! 예수천국!"
졸던 사람들이 눈을 뜨더니 곧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숙취를 빌어 성경으로 판소리 중인 전도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는 붉은 십자가를 내 코앞에 바짝 갖다 대고는
"사탄! 사탄! 사탄은 물러가라!" 발악을 한다.
열차가 멈춰서고 문이 열리자 나는 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며
"이웃을 사랑하라!" 일러줬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그도 깨우쳤을 것이다.
지옥철 안 이곳저곳에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부엌문 열리더니 여자목소리가 난다. 그녀는 이미 집안으로 들어와 방문 앞에 서있다.
"사거리 교회에서 나왔는데요,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
나는 부스스 일어나 내려간 팬티를 주섬주섬 올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침대 속에 나란히 누워 받는 감동적인 전도를 원합니다. 옷 벗고 들어오시죠."
전도자는 문발이 휘날리도록 집밖으로 내달린다.
나는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무단침입으로 고발하진 않았다.
찻잔을 가지러 부엌으로 가는데 TV속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할아버지 목이 잘려서 피가 나요" 하며 운다.
뒤돌아보니 전도자들이 단군동상의 목을 잘라 옆에 던져놓고 가슴에 사탄이라 적은 뒤
붉은 물감으로 피가 철철 흐르는 행위예술을 하고 간 화면이 보였다.
단군동상의 목을 칠 기술과 힘이 있다면
금수강간 왜놈들이 박아 놓은 쇠말뚝이나 뽑지 그러나 싶다.
그 날 등교하던 어린 아이들은 이웃을 사랑했던 아이들이었다.
눈이 채 녹지 않았던 때
50년 불교인생 살아오신 어머니는 무당년이란 폭언 속에 주인집 집사에게 쫓겨났다.
엄동설한 복덕방엔 나온 집은 없고 시골로 시골로 시골로 내려가
군부대 앞 곰팡이 벽지로 우울한 방 하나 얻었다.
나는 한동안 "집사년! 집사년!" 하고 떠들었지만 어머닌 그러지 말라 했다.
나는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니를 쫓아낸 주인집 집사 여자를 죽이진 않았다.
나는 새벽에 차분히 반야심경을 들으며 우울할 땐 크리스마스 캐럴을 치료제로 쓴다.
묘하게도 술 마실 땐 'Nana Mouskouri'의 'Amaizing Grace'를 종종 듣는다.
어머니는 매년 성탄절이면 모세가 바닷길을 여는 영화를 본다.
모세를 따르는 핍박받는 백성이 바닷길을 탈 없이 건너길 매년 기원하면서 말이다.
어머니 계신 곳엔 말 많은 윗집 아주머니가 산다.
윗집 아주머니 주일예배 갈 때 타는 버스를 어머니는 절에 갈 때 같이 탄다.
버스가 하루 네 번뿐이라 돌아 올 때도
윗집 아주머니와 옥수수나 눈깔사탕 나눠 먹으며 같은 버스를 타고 온다.
오는 내내 부처나 예수 이야기는 없다. 그저
올해 고추농사가 잘 됐다던가 저녘엔 누구네 집에서 밥 먹자는 이야기들 뿐이다.
이웃 사랑이란 종교와 관계없이 이미 몸에 배어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예절을 뜻한다.
배려와 예절이 갖춰졌을 때만이 이웃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것이며
배려와 예절이 갖춰졌을 때만이 신으로부터 종교를 믿을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혹, 당신이 믿는 종교가 있다면
고결한 당신의 영혼을 그 어떤 존재에게도 헌납하지 말아야 하며
고결한 당신의 영혼을 당신이 믿는 종교로 다듬어
고결한 타인의 영혼을 다솜스레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고결한 타인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알아야
고결한 당신의 종교가 빛나는 것이다.
이런 영혼을 갖고 사는 이웃이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이웃이며 그것을 신앙심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