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에 의지하다가 하도 이가 아파서 얼마 전 이를 뽑으러 치과에 갔다. 난생 처음 가보는 치과라 얼마나 공포에 질렸겠는가. 의사가 독 잔을 든 계모로 보이고 간호사들이 마녀로 보였다. 의료용 의자에 앉아 치과 도구들을 보는데 모조리 고문 도구로 보이고 마취 주사를 놓는다는데 독극물 주사로 보이는 게 아닌가. '이대로 격동의 내 삶은 끝나는 것인가. 아~ 아름다웠던 내 인생이여. 하느님, 부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착하게 살게요.’하고 기도하는데
“가도 좋습니다. 물고 있는 솜은 5분 뒤에 버리세요.”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뭘. 하기는 했수?”
“진료 끝났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나? 뭘 한 건지 아프지도 않더란 말이다. 평소에 하지도 않던 기도를 지레 겁먹고 그땐 왜 그리 열심히 했는지. 뭘 만지작만지작하던데 기가 막히게 잘 뽑더란 말이요. 허허.
그건 그렇고,
우린 때때로 벌어지지 않는 일 가지고 고민부터 시작한다. 실제 벌어질지 예상은 하지만 아직 벌어진 건 아니잖나? 왜 지레 걱정을 할인까지 받아 가며 사서 하는지 답답하다. 저런 걱정의 결론은 대부분 나쁜 결론에 다가서기 마련이다. 좋게 결론 짓는 경우는 드물다. 엄마한테 가져가면 줘 터질까 봐 성적표 들고 벌벌 떠는 인간부터 전쟁 난다고 라면을 어마어마하게 쟁여 놓는 사람도 있다. 유비무환이라는 좋은 말도 있지만 지나친 건 문제가 있다.
그건 그렇고,
인간은 어떤 한계점에 도달하면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 해박해지고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며 그저 그런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다. 멈추면 고정화되고 그 고정관념에 쌓여 모든 걸 결정한다. 살면서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지식 따위를 지혜로 착각하고 결정한다.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스스로 세운 기준에 빗대 나이를 무기 삼기도 하며 빠른 판단을 한다. 올바른 판단도 있지만 남들이 볼 때 세상은 급변하는데 나는 제자리인 경우를 보게 된다. 인생은 보험회사에 제출하는 결정된 서류가 꾸미지 않는다. 판단의 기준은 변해야 하고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계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유연할 필요가 있다. 그저 고정된 지식과 경험으로 바로바로 결정하면 할수록 더욱 굳어지어 가는 동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몇 년 전만 해도 외상이 됐었다. 술 한잔하고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면 장부에 주인장이 적어 놓는다. 그런데 요새는 돼지털인지 디지털인지 때문에 외상에 어려움이 있다. 고단해지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정나미 떨어진다. 돼지털@@@
그건 그렇고,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횡단보도, 버스정류장 등 길거리에서 스마트폰들 보느라 자라목을 뽐냈었는데, 책을 읽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뉴스가 나오자 유심히 봤더니 종이책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다. 구세대는 아닌 것 같은데 나도 화면보다는 종이책이 더 좋다. 냄새도 좋고 책장 넘기는 재미도 있고 돈이나 은행잎이 나오면 더 좋다. 나는 이사하면 제일 먼저 성당을 살피고, 술집을 하나 찍고, 도서관을 찾는다. 워낙 외출에 어려움도 있지만 한번 앉으면 잘 일어서질 않는다. 그래도 책을 빌리고 반납하려면 도서관까지 가야 하니 운동도 되고 좋다. 나선 김에 그간 못 갔던 곳도 두루 거쳐 집에 온다. 천상 범생이다.
그건 그렇고,
가끔 술 생각이 나는데 먹지는 못하고 남이 마시는 거 쳐다본다. 참 주접도 주접이지 뭘 보겠다고 남 술 마시는 걸 보고 앉았나. 어쨌든 식당보다는 술집에서 나오는 안주가 기가 막힌다. 예전에는 안주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술은 못 먹고 분위기를 맞추다 보니 안주에 관심을 두고 신중하게 시킨다. 오늘 알탕에 꼬치 몇 가지를 먹었는데 참... 거... 기가 막히게 맛있더란 거다. 안주세계의 드넓은 인자함에 고개를 숙인다. 안주의 세계는 드넓고 아름답다. 아구 좋아라.
그건 그렇고,
책을 고른다고 모조리 다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모조리 듣는다고 다 재밌지는 않다. 가끔 얻어걸리는 책 한 권과 노래 하나가 요즘 나를 즐겁게 한다. 그 설레는 낚시질에 재미 들였다. 책도 논문이나 그거 비스름한 거 읽다가 고루해져 이젠 재미 위주로 책을 고르고 노래도 심각성이 태풍급 먹구름에서 밝은 노래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한 곡 얻어걸리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그 노래만 듣는다. 많이 읽어 볼수록 많이 들어볼수록 얻어걸리는 횟수가 는다. 당연하지 않나? 천상 범생이다.
그건 그렇고,
지인이 며칠 전에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오늘 낮에 찾아가 봤다. 방 세 칸에 화장실이 두 개다. 대통령이 사냐고 물어보려다 참았다. PC를 하나 세팅해야 한다고 부탁이 들어왔다. 아마 이 동네에서는 최고의 PC가 되지 않을까 설렌다. 잘 설치해주고 미소 짓는 하루가 오기를 기다린다. 내가 세팅한 PC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기분이 좋다. 누구에겐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나를 보며 자신을 스스로 토닥인다. 아주 미미한 도움은 아주 큰 기쁨이 되기도 한다.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고 울지 말자. 내가 가자.
그건 그렇고,
요즘 하루가 일 초다. 노래도 흥얼거리며 아주 빠르게 지난다. 방금 일어나 하품 한 것 같은데 어느샌가 노을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저 붉은 색은 하루를 잘 보냈다는 의미겠지. 하루하루 누군가에게 도움도 되고 도움도 받고 울고 웃고 서서히 정돈되면서 빠르게 지나는 요즘이다. 직업도 없는 놈이 뭐 그리 바쁜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살았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지. 발버둥 칠 시간에 웃고 살자.
그건 그렇고,
오늘은 꽃집에 들르는 날이 아닌데 나간 참에 다녀왔다. 내일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새로 온 꽃이 있나 궁금해서, 그리고 부탁한 약재도 좀 구하러 다녀왔다. 이리저리 매만지며 꽃병에 꽃을 꽂았다. 어찌 저리 예쁜가. 한참을 바라본다. 꽃보다가 날 새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