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렇고 46호 : 병실에서 끼적임
여섯 번째다. 여섯 번째 쓰러졌다. 원인도 모른다. 간경화나 투석 문제로 혈액과 CT 검사를 해도 원인이 나오질 않는다. 한가지 짚이는 데가 있으니 바로 오징어다. 젓갈이기보다는 무와 섞여 있는 생채다. 익히지 않은 게 문제였다. 무생채와 섞여 구분이 안 갔고 게다가 참기름을 넣으니 더욱 모를 수밖에…. 의사가 그리도 날것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너무나 먹고 싶었나 보다. 채소까지 익혀 먹으라 했는데 아예 회를 먹은 셈이니 쓰러지는 건 당연지사. 이참에 외래를 가서 심정지를 물어봤는데 의사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냥 심장이 멈추는 현상이라 한다. 그런 소리는 초딩도 한다. 대학병원도 답답할 것이다. 또 119에 실려 올까 봐, 그러다 어느 순간 갈까 봐 우려되겠지. 이제 응급실 의사가 아는 척을 한다. 나도 낯이 익다. “이분 또 왔네!”하는 식이다. 툭하면 쓰러져 오니 언제 세상을 뜰지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회복지사가 밤새도록 무슨 고생인가. 하지만 묘하게 불안함은 없다. 투석하는 병원에선 창피하니까 오징어 먹고 실려 간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말이 되나? 오징어가? 먹고 싶어 먹었다. 냉장고를 열고 손에 그냥 잡히는 게 그것이었다. 무생채와 똑같은데다 씹다 보니 물컹했지만, 맛은 있었다. 아마 어려서부터 다리 많은 애들과 친하지 않았나 싶다. 돈만 생기면 엄마한테 꼴뚜기젓을 사달라 조르던 때가 생생하다. 밥상엔 늘 꼴뚜기젓이 올라왔고 그 좋다던 산해진미는 쳐다도 안 봤다.
그건 그렇고
응급실 광경은 언제나 흥미롭다. 욕설이 난무하기도 하고, 엉엉 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좀 젊잖은 편이지만 젊은이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안절부절 의사만 찾아다닌다. 그렇지. 나도 처음엔 그랬지. 시간은 사람을 다독일 줄 안다. 시간은 묘약이며 인내심을 길러준다. 하지만 응급실이라는 건 아주 가끔 또는 인생에 한 번 정도 오가는 곳이지 나처럼 포장마차 드나들 듯 오가면 곤란하지 않나? 그래도 요양병원에서 본 것처럼 조용히 장례식장으로 가는 환자는 아직 못 봤다. 하루가 지나고 의사는 귀가해도 좋다는 반가운 소리를 한다. 백날 검사해봐야 모르겠고 교도소도 아니고 응급실에 계속 방치할 필요 없지 않은가. 집에 와 누우니 늘어진다. 모든 걸 놓고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빙글빙글 돌던 천장이 조용하다.
그건 그렇고
묘한 게 하나 있는데 노래 한 곡이 질릴 때면 새로운 노래가 나와 내 가슴을 울리거나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지겨울 때가 없다. 신기하다. 새롭게 흥얼거릴 노래는 어디선가 훅 튀어나온다. 지금 투석 중이지만 이어폰을 끼고 이 글을 쓰고 앉았다. 잠을 자는 시간, 특히 투석한다고 억지로 자는 저 순간이 내가 죽어있는 시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난 올빼미 생활을 접고 아침에 심하게 일찍 일어난다. 그리곤 잠들지 않는다. 아깝기 때문이다. 투석실에 99% 이상은 시작과 동시에 잠을 청하며 눕는다. 난 싫다. 잠들면 다시 못 돌아올 것 같아서? 아니다 의외로 할 일이 많아 되도록 깨어있으려 애를 쓴다. 다시 한번 죽음에 관하여 심도 있게 생각해 본다. 가까워지는 죽음의 경계선. 특히나 툭하면 쓰러지는 요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의미 없이 지나쳐버리던 것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나 할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건 그렇고
집에 귀신이 사는 것 같다. 몸이 허하면 귀신을 느낀다고 했나? 아무도 없는데 새벽에 소리가 난다든지 현관에 불 들어오는 것도 고쳤는데 계속 제 혼자 깜박인다. 그렇다고 귀신과 연관시킨다는 건 우습지 않나? 어떤 사람은 귀신을 만나면 고스톱도 친다는데 난 상상만 해도 잠이 안 온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있어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문득 뇌리를 스치며 기가 찬 건 내가 6층에 산다는 것이다. 공중에 뜨지 않는 이상 가능한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귀신 이야기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극장에서 쪽 찐 머리의 한복을 입고 영화를 보는 여자에게 몇 시냐고 물어보니 뒤를 사~악 돌아다 보는데 앞에도 쪽 찐 머리에 비녀를 꽂고 있다든지 등등. 아내와 어머니, 누나와 형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내 주변에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여하간 부스럭 소리만 나면 예민해진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믿거나 말거나.
그건 그렇고
월수금 오전에 4시간씩 투석한다. 정말 감옥 같다. 명절도 휴일도 없는 월수금의 노예다. 내가 이 지경까지 오리라 상상도 못 했다. 건강했고 거구에 근육을 단련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100세 노인네가 됐다. 아내가 하늘로 가고 나는 희망을 잃었으며 술에 밥까지 말아 먹는 지경까지 갔다. 알코올중독센터에서도 오고 시청, 읍사무소, 복지관 등 줄줄이 집에 다녀갔다. 처음엔 문도 열어주지 않았지만 한겨울에 문밖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는 걸 보곤 마음을 열었다. 그들 덕에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1년간의 결과는 회복 불가라는 판정이었다. 어차피 어느 날 갑자기 갈 거면 준비를 하는 편이 평화롭다. 대학병원에서도 복지사가 근무하는데 그녀를 통해 연명치료거부서를 쓰고 담담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그 뒤로 건강도 좋아짐을 느끼니 좋지 아니한가. 수천 년간 인간은 선택을 해왔고 그 인류 중 나는 술을 선택했다. 지금의 모습은 100% 내 선택이 만들어낸 내 모습이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쌓아 온 내공이 약하다면 대부분 나쁜 선택을 한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의미 없다.
그건 그렇고
몇 년 전 어머니가 떠나고, 누나가 하늘로 가고, 아내도 가고, 올 초엔 소식 끊겼던 하나 남은 형마저 갔고 난 자식도 두질 않았다. 자식이 있다면 이지경이 됐겠는가. 몇 년간 나는 모든 지인을 끊었고 그로 인해 마음 나눌 사람이 내겐 없다. 그나마 간병인과 복지사들이 보호자를 자처하고 병원에 데려간다. 하기야 그들이 없었으면 내가 이리 끼적일 일도 없었겠지.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원인이 외로움이라는데 난 별로 외롭지 않다. 그럭저럭 잘살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다. “성질이 더럽다.”라고 느끼시는 분들은 아파서 그러려니 하시길….
그건 그렇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목발을 사고 그다음 지팡이를 선물 받았다. 지금은 지팡이를 놓고 편의점을 홀로 다녀올 수도 있다. 많이 넘어졌고 지금 나의 대퇴부에 나사들이 뼈를 이어 고정시키고 있다. 멀리는 못 가도 성당까지만 가도 성공 아닌가 한다. 신부님도 수녀님도 보고 싶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지만, 목표가 생겼으니 좋다. 얼마나 즐거운가. 성당까지 가는 길은 지금은 정글처럼 울창한 둘레길로 변해있다. 반드시 걸어보리라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자동차도 되찾고 싶다. 모든 일에 초점은 행복에 맞추어져 있다.
그건 그렇고
추석이 다가온다고 복지사들이 먹거리를 가져와 줬다. 혼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먹겠냐마는 어쨌든 추석 기분은 난다. 다들 선물 세트를 준비하는 듯한데 나도 저 때가 있었지, 하며 픽 웃고 넘긴다. 기분을 전할 사람도 만날 친구도 없다. 요즘 마음의 문을 열고 친구를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휴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지치게 할 줄 알았지만, 홈페이지도 관리하기 시작했고 독서도 하며 먹거리도 찾아다니며 즐겁게 삶이 변해가고 있다. 이럴 땐 참으로 주변인들에게 또 하늘에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나만 편하면 됐지 하고 시나브로 지난다. 신앙을 떠난 지 꽤 됐지만 생각난 김에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22.09.12. 10:15 風文 윤영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