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렇고 (사랑)
도서관을 갔는데 새로운 책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이야! 이게 웬 떡인가. 그런데 책들이 지난번과 달리 새롭게 정렬돼있었다. 아마도 갈래순, 가나다순 같은데 답답함이 일었다. 어떤 책은 책의 제목순으로 되어있고 어떤 책은 작가 이름순으로 되어있지 않은가. 화가들 전시회도 아니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어 말 좀 하려 직원 책상으로 가는데 그 직원이 어떤 할아버지 앞에서 얼굴이 붉어져 쩔쩔매는 것이 아닌가. 슬쩍 보니 할아버지는 한문으로 책이름을 적어왔는데 직원이 한자를 모르는 거였다. 그냥 할아버지께 여쭈면 될 듯싶었는데 적어온 한자가 복사 용지의 절반이다. 할아버지가 읊으면 직원은 한글로 받아 적고 있었다. 직원이 한 명이다 보니 내 뒤에 줄을 선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직원은 1초가 1시간이었을 것이다. 도서관에, 그것도 책을 수납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한자는 알아야 하잖나? 대한민국 정부가 관리하는 도서관의 수준이 이 모양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
할아버지도 예의가 없는 것이다. 한글로 적어오는 것이 가문에 먹칠하는 짓인가? 본인의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은 경로우대로 설명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얼마 전 지하철에서 양보 안 한다고 앉아있는 사람 따귀를 후리는 할아버지와 뭐가 다른가.
그건 그렇고...
“의료보험료를 악질적으로 장기체납한 자로 각종 통장은 물론 부동산 등의 압류 그리고 강제징수절차 및 갖고 있는 거 몽땅 경매처분에 들어간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의 편지가 한 장 왔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대체 뭘 가져가겠다는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압류하러 오면 소주 한 병만 사주고 가라 할 참이다. 국민연금은 형편이 안 되면 1년씩 연장이 가능하나 이 의료보험은 좀 살벌하다. 사정 좀 이야기하려 전화를 했더니 씨알도 안 먹힌다. 혹시나 이 컴퓨터를 홀랑 가져갈까 걱정도 되나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하며 소주 뚜껑을 딴다.
그건 그렇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떡볶이를 한입 잘라먹고 두리번두리번 한다. 다시 포장마차로 들어가더니 또 떡볶이를 이쑤시개로 찍어 밖으로 나오더니 한입 잘라먹고 두리번두리번 한다. 불안해 보여 물었다.
“꼬마야. 편하게 먹지 왜 그렇게 불안하게 먹냐?” 그랬더니,
“학원 버스와요. 놓치면 큰일 나요.”
“뭐가 큰일인데?”
“엄마한테 죽어요.”
나는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뭔 놈의 나라가 애들 떡볶이도 편하게 못 먹게 하는 교육환경을 갖고 있나? 대여섯 놈들이 무거운 가방은 걸친 듯 만 듯 매고 사막의 몽구스마냥 불안하게 떡볶이를 먹나 이 말이다. 허리춤 오는 꼬마들은 학원버스가 오자마자 후다닥 사라졌다. 뭐? 선진국? 국민소득 1인당 2만 불? 아이들 떡볶이 하나 먹는데 비무장지대 수색대를 방불케 하는 나라가 선진국인가?
그건 그렇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 나름 새 책인 평론서를 침을 질질 흘리며 음탕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탁상시계가 삐삐하면서 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단추를 눌러서 소리를 재웠는데 갸우뚱했다. 고장난지 오랜, 대충 1년 반이 넘도록 소리도 못 내던 놈이 왜 오늘 우냐 이거다. 당연한 듯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나는 왜 무의식적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을까. 육감? 예지능력? 아니다.
사람은 특별한 현상 또는 문득 불길한 마음이 들었을 때 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부터 떠올린다. 그것을 우리말로 아낀다(愛)라 한다. 나는 사랑의 어원을 사(思)+낭(娘)으로 본다. 사량(思量)도 설득력이 있지만 낭(娘)을 어머니로 본다면 더 넓은 의미가 아닌가 한다.
......
공부하자.
2008.10.31 19:32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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