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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염전에 들다 (연선옥)
2008-01-03 09:30:00 |
얼마를 대끼고 대껴야 흰 뼈 되어 만날 건가
투명한 허물을 끌고 여기까지 흘러온 지금.
남은 상처 자투리를 누가 또 들여다보나
떠밀리고 넘어지다 등에 감긴 푸른 멍울
한걸음 이어달린 길, 그길 하나 밀고 와서.
낮은 데로 에돌아와 오랜 날 빗장 잠그고
옮겨 앉은 짭짤한 바다 거친 숨 몰아쉬면
바람결 다듬고 벼려 스스로 낮추는 키.
어디쯤 붙잡지 못한 잔별 죄 쏟아지고
햇빛 가득 그러모아 제 가슴에 피는 꽃들
몸 바꿔 떠나고 있나, 비탈진 세상을 향해.
당선소감
끊임없이 우리말을 가꾸고 다듬고 아끼며 걸러내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만큼 보이듯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는 것만큼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부정과 긍정의 두 축에서 세상을 가르며 산다. 더러는 이해와 편리에 따라 스스로 만든 경계에서 혼탁한 마음을 키우기도 한다. 혼탁한 마음에서 맑은 글을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절차탁마의 글쓰기 작업은 또한 나를 가꾸고 다듬는 일이기도 하다.
내 가난한 언덕에서 불어주는 바람이 있어 행복하다. 좀더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하고 편협함으로 외면했던, 지난날 나를 스쳐간 그 모든 인연에게 미안하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베풀어주는 자연의 혜택에 감사한다. 내가 글을 쓰고 생각하는데 자극이 되어 준 것은 사람이었고 자연이었고 사물이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과 학우들, 그리고 설익은 내 작품에 대하여 늘 뼈아픈 고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힘이 되어준 열린시조학회 선후배들을 이제 한번 포옹해주고 싶다.
처음 시조를 만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변함없는 지도와 관심으로 이끌어주신 나의 스승 윤금초교수님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조금은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오늘 나의 겨드랑이에 새로운 깃털을 달아준 경남일보와 저의 부족한 작품에 힘을 불어넣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을 올린다. 한눈팔지 않고 우리 고유의 정형시, 시조를 위하여 정진하는 한 톨의 천일염이 되고 싶다.
/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심사평
때 묻지 않은 구성력 훌륭
앞으로 우리 시조문단을 개척해 나갈 역량 있는 신인을 찾기 위해 전국에서 응모해 온 작품 봉함을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개봉하였다.
시조는 많은 말을 함축으로 여과 하는 데서 시작한다. 시조가 가진 생명력은 개성과 정형적인 서정성에 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정서를 노래 하였는가, 참신한 제 목소리 인가, 장(章) 의식을 살리고 있는가, 연시조의 경우 각 수(首)와의 구성도는 어떠한가. 그리고 가능성 등을 심사관점으로 상기하면서 새해 새아침을 정갈하게 조명하고 싶은 심정으로 정독에 들어갔다.
우선 율격이 지나치게 산만한 작품, 고풍조의 작품, 같은 시어의 의미 없는 중복 사용 작품 등 일부를 제쳐놓고 보니 다른 대다수의 작품들은 수준작이 었다. 언젠가 빛을 볼 가능성이 엿보인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윤평수의 「저녁 놀」 이남순의 「판자촌 봄비」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 전흥미의 「주택개발공사현장」 이선의 「그 때 그 팽나무」 우은진의 「새것은 상처를 만든다」 연정현의 「외래 병동에서」 강봉덕의 「새벽 시장」 송필국의 「채미정에서」 등을 뽑아 들고 다시 정독했다. 모두 아까운 작품이었으나 앞에 예시한 심사 관점에 더 가까이 닿아 있는 작품으로 「저녁 놀」 「판자촌 봄비」 「염전에 들다」 이 세 편을 골라 최종심에 들어갔다.
윤평수의 「저녁 놀」은 두 수로 된 연시조이지만 장 의식의 깊이가 있고 정형적 서정성이 돋보였다. 이남순의 「판자촌 봄비」는 시조의 형식적 논리를 충분히 체득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첫째 수에서 셋째 수에 으르기 까지 주제를 이끌어 가는 간결한 저력을 보여 주었다.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는 생명 의식을 바탕으로 조명한 신선한 작품으로 보였다. ‘햇빛 가득 그러모아 제 가슴에 피는 꽃들’ 등 표현의 경지를 보였다.
당선작은 숙고 끝에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로 정하였다. 이 작품은 각 수의 역할과 주제적 구성도가 조금도 때 묻지 않았다. 당선자는 함께 낸 모든 작품에서 우리 시조 문단을 개척해 나갈 신선한 가능성을 믿게 해 주었다. 최종심에서 자리를 내 준 두분 작품은 놓치기 아까웠다. 당선자에게 축하 드린다.
/김교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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