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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에서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
뒤축의 무게로 새벽 수차를 돌린다
바람은 빈 가슴 지나 먼 바다를 일으키고
지친 오후 밀어내고 살풋 잠이 들자
잠귀 밝은 수평선 해류 따라 뒤척이며
뒤틀린 창고 이음새, 덴가슴도 삐걱인다
남편은 태풍 매미에 귀항하지 못했다
소금기 절은 목숨 몇 잔 술로 달랠 때
눈시울 노을로 번져 잦아드는 썰물빛
설움으로 풍화된 닻 말없이 내려두고
무명의 소금봉분, 메다 꽂힌 삽자루여
가슴엔 뱃고동 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
▲ 김남규씨◆당선소감… 시조로 소외된 사람들 어루만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5년 전이었습니다. 대학교 중간고사 대체로 나간 시조백일장에서 난생 처음 쓴 시조로 우연히 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습작하고 있는 시조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시가 스스로 걸어서 제게로 온 듯합니다. 밤마다 수없이 울음을 삼켜가며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포기를 생각했었지만, 이제야 왜 제게 시조가 걸어왔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날의 힘겨움을 시조로 이겨내라는 이지엽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가진 자와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역사라면, 못가진 자와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선생님께서 늘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소외된 자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며 지금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자의 아픔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중한 작업이 그들에게 뜨끈한 밥 한공기 되진 못해도,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 방울은 될 수 있으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봅니다.
저에게 문학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경기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님들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그리고 제가 이 땅에 굳건히 서있을 수 있게 해주는 가족들과 이지엽 선생님,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광을 돌리며, 끝으로 아직 너무나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1982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
▲2003년 제 4회 전국 가사·시조 창작공모전 일반부 우수상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년 재학중
▲ 이근배 시인◆심사평… 빈틈 없는 구성… 시적 감도 높여줘
새벽의 언어를 캐기 위하여 밤을 밝혀온 생각들이 시조의 높은 가락을 뽑아 올리고 있다. 신춘문예의 벽을 오르기 위해 모국어의 틀 속에서 오늘의 삶을 깎고 다듬는 손길들이 섬세하고 맵차다. 더욱 반가운 것은 응모작품들이 거의 고른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음이다.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구성요소를 잘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자재롭게 글감을 찾고 거기 맞는 가락을 짜내는 일에도 능숙한 작품들이 많았다.
‘염전에서’(김남규), ‘눈속의 새’(황성곤), ‘그 해 겨울 갯벌에서(송이나), ‘감나무 합창’(한을비), ‘풀씨이야기’(유순덕), ‘겨울 쑥부쟁이’(임채성)등이 마지막까지 밀고 당기었다.
‘눈속의 새’는 새 맛내기로는 단연 앞섰다. 그러나 관념의 과잉이 의미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는 미흡했다. ‘그 해 겨울 갯벌에서’는 우선 제목이 주는 추상성이 걸린다. “그 해 겨울”이면 “갯벌”의 지명도 따라야 하지 않을까? 평시조의 시행을 산문형으로 이어나간 것도 거슬렸다. ‘감나무 합창’은 너무 정직하게 형식미를 지킨 것이 오히려 시를 답답하게 가두고 있다. 시조의 형식은 고체가 아니라 액체임을 깨우치기 바란다. ‘겨울 쑥부쟁이’는 시를 구성하는 맛이 탄탄하다. 그러나 진술적 낱말들이 자주 튀어나온 것이 시의 감도를 떨어트리게 했다. 치열한 다툼 끝에 ‘염전에서’에게 낙점을 주었다.
당선작은 왜 시조를 쓰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찾아낸 글감에 대해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말을 꿰고 있다.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의 첫 수 초장에서 “가슴엔 뱃고동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의 마지막 수 종장까지 소금밭을 배경으로 “서산댁”을 내세운 삶의 포착을 외연성과 내포성이 알맞게 결구하여 시조가 갖는 시적 감도를 높여주고 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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