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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악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꽥!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1939)
- ▲ 일러스트 양혜원
정지용(1902~1950)은 불과 11세에 이웃 마을에 사는 은진송씨(恩津宋氏)의 딸을 맞아 결혼했다. 요즘 사람들이야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조혼이 드물지 않던 당대에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장남이 태어난 것은 시인의 나이 26세 때다. 3년 뒤에 차남을 얻고, 그 뒤로도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더 두었다. "일찍이 나의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잃었다"라는 언급을 보면 홍역 따위로 죽은 자식이 더 있으리라 추정된다. 시인은 아이를 잃은 슬픔을 녹여 〈유리창〉이라는 명편을 빚기도 했다.
이 동시는 《아이생활》 146호(1939년 5월호)에 발표한 동시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은 농업 노동의 근간이다. 해바라기 씨를 심는 일은 아이들에게 놀이로서 그 노동을 겪게 한다는 뜻이 있다. 참새, 바둑이, 괭이, 청개구리들은 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놀이와 삶의 조력자다. 씨를 묻고 다지는 데 바둑이와 괭이도 일손을 보탠다. 아이들은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세상의 일들이 협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청개구리가 싹이 났나 엿보러 온다. 씨 묻은 데를 엿보는 청개구리를 아이들이 엿보고, 또 그 아이들을 아빠가 엿본다. 청개구리가 놀라서 소리를 꽥 지르고, 아이들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겠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아빠의 사랑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1939년이면 장남 구관이 11세, 차남 구익이 8세, 3남 구인이 6세, 장녀 구원이 5세 때다. 시인은 올망졸망한 이 아이들에게 읽어 주려고 여러 편의 동시를 지었다. "별똥 떨어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별똥〉)와 같은 동시는 함축적으로 인생의 한 진실을 아릿하게 드러낸다. 바다를 가리켜 "푸른 도마뱀떼같이 /재재발렀다."(〈바다 2〉)고 썼듯이 정지용은 시를 이미지 예술로 끌고 갔다. 금강산과 한라산 같은 명산을 시로 옮긴 시집 《백록담》은 산수화첩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동시도 아버지와 아이가 담 아래 텃밭에 해바라기 씨를 심고 싹을 기다리는 정경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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