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시(序詩)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 고려대학교 교수 / 옮김)
네가 누구라도, 저녁이면
네 눈에 익은 것들로 들어찬 방에서 나와보라;
먼 곳을 배경으로 너의 집은 마지막 집인 듯 고즈넉하다:
네가 누구라도.
지칠대로 지쳐, 닳고닳은 문지방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너의 두 눈으로
아주 천천히 너는 한 그루 검은 나무를 일으켜
하늘에다 세운다: 쭉 뻗은 고독한 모습, 그리하여
너는 세계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 세계는 크고,
침묵 속에서도 익어가는 한 마디 말과 같다.
그리고 네 의지가 그 세계의 뜻을 파악하면,
너의 두 눈은 그 세계를 살며시 풀어준다. . . .
Entrance
Rainer Maria Rilke (Translated by Edward Snow)
Whoever you are: in the evening step out
of your room, where you know everything;
yours is the last house before the far-off:
whoever you are.
With your eyes, which in their weariness
barely free themselves from the worn-out threshold,
you lift very slowly one black tree
and place it against the sky: slender, alone.
And you have made the world. And it is huge
and like a word which grows ripe in silence.
And as your will seizes on its meaning,
tenderly your eyes let go.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