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 김종삼(1921~84)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물 몇 해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김종삼 시인은 장편(掌篇)이란 연작 시를 몇 편 남겼다. '민간인'처럼 어떤 상황만 간결하게 드러낸다. 시의 화자는 침묵하고, 관찰자는 냉정하고, 시어는 일절 군더더기가 없다. 그의 시 대부분은 압축 파일이다. 그래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짧은 장편(掌篇)이 장편(長篇)으로 확장된다. 이 시는 그 어떤 분단 문학, 그 어떤 전쟁 영화 못지않게 길고 깊다.
고향이 북쪽이 아니더라도 환갑 언저리에 있는 초로의 전쟁 세대에게 이 시의 독후감은 더욱 난감하리라. 60년이 지나서도 민간인의 수심(愁心)을 아는 사람 많지 않다. 내일 새벽, 전쟁이 일어났다. 오늘 아침, 우리 군.관.민(요즘은 안 쓰는 말이지만)은 월드컵 축구 때문에 졸린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