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 길에서 나는 우네 - 고재종(1957~ )
사과꽃 환한 길을
찰랑찰랑 너 걸어간 뒤에
길이란 길은 모두
그곳으로 열며 지나간 뒤에
그 향기 스친 가지마다
주렁주렁 거리는 네 얼굴
이윽고 볼따구니 볼따구니
하도나 빨개지어선
내 발목 삔 오랜 그리움은
청천(靑天)의 시간까지를 밝히리
길이란 길은 모두
바람이 붐비며 설렌다네
사과꽃 진 자리가 사과꽃 피었던 자리다. 사과 열려 있는 자리가 사과꽃 진 자리다. 사과 열매 네 복사뼈만 하겠다. 왜 모든 길은 사랑이 떠나간 길로 우르르 쾅쾅 몰려갔다가, 고개 숙인 채 돌아와야 하는 것인지. 돌아오다 코피가 나야 하는 것인지.향기로 남는 사랑이 있다. 그런 향기는 푸른 하늘까지 밝히는 빛으로 거듭난다. 꽃 집착하지 말아라. 꽃 지지 않으면 열매 맺히지 않는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