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사(野菜史) - 김경미(1959∼ )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개를 아주 싫어하는 선배가 있었다. 이유인즉슨, 개는 역진화했다는 것이다. 가축은 먹이를 스스로 구하지 않는다. 개, 소, 돼지, 닭, 말 등은 먹이와 야성(野性)을 맞바꾸었다.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면서, 그만큼 약해졌다. 가축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광우병 같은 것으로 인간을 공격한다. 채소라고 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