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표 운동화 - 안현미(1972∼ )
원주시민회관서 은행원에게
시집가던 날 언니는
스무 해 정성스레 가꾸던 뒤란 꽃밭의
다알리아처럼 눈이 부시게 고왔지요
서울로 돈 벌러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갔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
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이 휘날려도
끝내, 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표 운동화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날
언니 따라 시집가버린
뒤란 꽃밭엔
금방 울음을 토할 것 같은
고추들만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요
입학식·소풍·운동회·학예회. 초등학교는 어머니와 함께 다녀야 했다. 번듯한 집안 자식들이야 그런 날이 기다려졌겠지만, 그런 날이면 얼굴에 그늘이 지는 아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내내 ‘혼자’ 다닌 아이들에게 그 시절 받은 선물은 대개 상처다. 기차표 운동화를 받았다면, 평생 어떤 구두도 그 운동화를 뛰어넘지 못한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