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강 같은 평화 2 - 장경린(1957∼ )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안경알을 깼다 항암제를 투약하면서도
도수를 높여가며 집착하던 안경이었다
점점 흐려지는 세상을
그저 그러려니 밀쳐두고 살았다면
암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아쉬워하면서
깨진 안경알을 치우다가 손을 베었다
스스로 불러들인 암과 타협해서
마음의 초점이나 잘 맞추고 지냈다면 편했을 텐데
한 치라도 자식들을
가까이 끌어당겨 보고 싶었던 것일까
도수를 높여가며
점점 멀어져가는 生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던 것일까
어머니를 한동안 따뜻하게 왜곡시켜주었을
깨진 안경알을 보며
마음의 초점이 흐려져 상이 잘 잡히지 않는
눈 대신에
베인 손가락에 침을 묻혀
깨진 안경알 조각들을 더듬더듬
민방위 훈련 소집이 해제될 무렵, 남자들은 한숨을 폭∼ 내쉰다. 여자, 여성, 여인은 사라지고, 딸, 아내, 어머니만 남는다. 남자들은 그즈음, 잃어버린 것을 찾듯이 어머니를 찾는다. 나는 삼십대 후반부터 고향집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김용녀씨 댁이죠~’ 그러면, 어머니의 첫마디는 늘 ‘너, 또 술 마셨구나!’였다. 어머니는 7년 전부터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전화 걸 데가 없는 어버이날 아침이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