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 천양희(1942~ )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어둠 속을 더 잘 보려고 눈을 감는다
눈은 얼마나 많이 보아버렸는가
사는 것에 대해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사람인 것에 대하여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눈은 얼마나 많이 잘못 보아버렸는가
거대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몸으로 살지 못한다. '눈'으로 산다. 거대 도시는 시각에 의한, 시각을 위한, 시각의 제국이기 때문이다. 막강해진 시각 권력은 청각.미각.촉각.후각을 변방으로 내몰았다. 식민화했다. 해서, 나는, 눈을 '감는다'라고 쓰지 않고 눈을 '끈다'라고 쓰려 애쓴다. 전원을 끄듯이 두 눈을 꺼보자. 눈을 끄고, 저 나머지 감각들의 안부를 물어보자. 플러그를 뽑고 몸의 근황을 살펴보자. 인위적으로, 지속적으로 눈을 끄자. 그래야 바람과 어둠, 삶과 사람을 볼 수 있다. 말할 수 있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