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집 - 이창기(1959~ )
치매로 실종된 쌍둥이 할아버지에게
눈에 익은 과수원 길 한 세트
아무렴 그렇구말구
생일도 잊은 채 고추 따는 아이에게
반가운 친구 한 다스
아무렴 그렇구말구
글 모르는 김서방 회갑 잔치에
글자 없는 책 한 마지기
아무렴 그렇구말구
자식 잃고 먼 길 떠난 친구 부부에게
답장 붙은 편지 한 축
아무렴 그렇구말구
멀리 벨로루시에서 시집온 심약한 소냐에게
약국에서 산 희망 한 갑
아무렴 그렇구말구
친구 중에 '선물의 여왕'이 있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천하의 백수인데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선물 공세다. 브로치, 장미 한 송이, 붕어빵, 읽던 책, 그림엽서, 음반 등등. 받기만 하고 건넬 줄을 모르던 나도 몇 번 당하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선물의 여왕에게 전염된 것이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윙크 같은, 안부전화 같은, 세뱃돈 같은 '큰 선물'들이 자주 오갔으면 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