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비명 - 함형수(1914~46)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경건하게 살려면, 유서를 써 보라는 권유가 있다. 나는 유서가 버거워, 묘비명을 중얼거리곤 한다.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썼다. 나는 '나와 함께 살아온 죽음, 나와 함께 잠들다'라고 정해놓았는데, 멋을 부렸다는 생각이 든다. 덜 살아 그렇다. 참, 수목장이 있지! 온 곳으로 돌아가는. 청정한 나무를 비명으로 삼는.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