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식사 - 황지우(1952∼ )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라면도 라면이지만, 짜장면이 있다. 중년의 사내가 밖에서 혼자 먹는 짜장면이 있다. 짜장면 위에 눈물이 몇 방울 떨어져 면발을 더 빨리 비벼대지 않았던가, 고개를 더 깊이 숙이고 후루룩 들이켜지 않았던가. 아, 그럴 때 내 입은, 내 몸은, 내가 이 따위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상스러웠던가. 나는 내가 얼마나 두려웠던가.
<이문재 시인>